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reeO Apr 05. 2018

사랑의 모습

시골의 잡종개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가?

요즈음처럼 태양이 쨍쨍한 날이었다. 2015년, 예전 회사에 다닐 무렵이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 맞은편에서 한 아저씨가 내려오고 있는 것을 봤다. 한 덩치 하는데다 수염까지 기른 어른이,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얼굴로 울고 있었다.

그 사람은 꽃다발처럼 소중하게 싸인 무언가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나는 금방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 챌 수 있었다. 포대기 아랫부분에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하얀 털뭉치가 비어져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서러운 얼굴로 우리를 지나쳐 갔다.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었다.

반려동물들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그만큼 그 삶의 시작과 끝에 우리가 많은 축복과 사랑의 염원을 담기에 그런 표현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들의 짧은 생은 짧고, 오히려 그렇기에 길고도 긴 사랑의 온기를 우리에게 남긴다. 익숙하게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털뭉치의 따뜻함에 위로를 받은 적 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아마 영원히 사랑을 모를 것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지만, 어린시절 제법 많은 개를 키워왔었다. 시골과 도시의 동물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달라서, 지금의 반려동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내용을 알게 되면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시골의 반려동물은 달리 말하면 가축이다. 가축은 밖에서 두고 사육하는 짐승이지, 집 안에 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옆집 바둑이가 아무리 똘똘하고 애교가 많아도, 그 개와 주인 사이에는 인간과 짐승이라는 벽이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격이 높아져도, 내 가족이라는 범위 안에는 절대로 들일 수 없는 카스트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애견, 애묘인 혹은 기타 다양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은 엄연히 배려와 애정의 대상이며, 자신의 혈육에 준하는 존재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도시의 개와 시골의 개가 무엇이 다른걸까. 시골개는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 없는걸까.

최근 애견 행동교정 전문 사육사인 강형욱씨의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시골에 있는 개들의 문제행동을 교정하면서, 주인들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떻게 교감하는지 가르쳐 줬다. 개한테 무슨 관심을 그렇게 쏟느냐던 시골 사람들도, 하나 둘 강의에 참석하더니 어느 새 마을 회관을 가득 채웠다.

흔히 보이던 잡종 똥개가 반려동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함께 산책하고, 주인의 배려와 칭찬에 기뻐하는.
종을 초월한 소통이 주는 즐거움, 교감과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강형욱 훈련사가 가르쳐 준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반려동물들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보다 더 큰 것, 사랑을 주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왔다는 걸 알았다.

사랑의 온도는 받을 때 보다 줄 때 더 뜨겁다고 한다. 우리의 긴 삶 속에서, 타인을 위해 예비된 사랑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같은 인간에게 베풀 사랑도 모자란데, 종 조차 다른, 온전히 내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어쩌면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생명들.

그런 생명들에게 또다른 종류의 사랑을 베푸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인간에게 더 큰 축복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작은 털뭉치 하나는 담아 두었으면 한다. 언젠가 우연히 찾아온 작은 생명에게 줄, 새로운 사랑의 모습을 위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