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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Jan 08. 2019

신발 속의 물집

발바닥을 위해 준비된 고행

순례길을 걸을 때 가장 흔한 부상은 물집이다. 일반 사무직 직장인이 하루에 걷는 거리는 잘 쳐줘봐야 5km 내외다. 그런데 갑자기 5~7kg의 배낭을 메고, 20~30km의 거리를 주파하란다. 그것도 매일. 게다가 잘 닦아진 도로도 아니다. 잔디, 흙, 모래, 아스팔트면 감지덕지다. 진흙탕과 굵은 자갈 경사로, 바위산 등 별의별 지형을 다 돌파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첫날부터 800km의 코스 중 가장 험난한 피레네 산맥부터 시작하니, 출발한 날부터 계속해서 물집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어떻게 보면 훈장 같은 것이지만, 나는 사양하고 싶었다. 내 발도 기꺼이 그 바람에 응해줬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게 두세 개 잡혔던 물집은 터지지도 않은 채 사라졌고, 그 이후로 900km 내내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물집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기능성 빵빵한 등산화도 아니고 튼튼하고 무겁기만 한 가죽 트레킹화였는데 말이다.
덕분에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밴드와 연고, 소독약 같은 것들은, 마지막까지 공간만 차지하는 게 역할의 전부였다.

이렇게 나와는 별 관계가 없었던 물집이었지만, 출발 전 자료 조사를 할 때 엄청나게 다양한 물집 케이스를 봤었다. 

 알다시피 물집은 걸을 때 피부와 신발의 마찰로 인해 생긴다. 그 정도는 신발마다 다르고, 사람 마다도 다르다.  10원 50원짜리 동전들부터 시작해 발바닥 거의 전체를 덮은 거대한 종류까지.
그 정도로 물집이 웬만큼 크게 생기면 정말 걷기 힘들어진다. 표피가 벗겨진 연약한 진피가 양말을 사이에 낀 채 신발 밑창에 비벼지는 상상을 해보라. 그것도 7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배낭이 몸무게에 더해진 채. 

그래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기본적으로 물집 대처를 위한 응급 키트를 가지고 있다. 색색의 바늘부터 시작해, 소독약과 다양한 사이즈의 밴드와 패치들. 그렇다고 생기는 물집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조금 준비가 부족하거나 난코스를 지나다 보면 어김없이 발바닥 한 편의 쓰라림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물집이 너무 심해 발바닥이 벗겨지다시피 한 사람들은 발이 나을 때까지 며칠씩 쉬거나, 아주 가끔 순례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마찰 자체는 어찌해 볼 수 없다. 신발을 신고 걷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은.

마찰, 그러니까 물집의 원인인 발과 신발 사이의 마찰은 단순한 원인과 결과다. 목적지를 결정하고 어딘가로 향하는 이상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는 현상.
나는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삶을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어쨌든 우리도 이런저런 모양의 인생 속에서 이런저런 지형과 갈등해 가며 걷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통 없는 삶의 방식은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거나 며칠 쉬는 수밖에. 돈이 있다면 버스를, 아니면 좀 더 호화롭게 택시를 타고 건너뛸 수도 있겠다.
그리고 딱 그뿐. 종점에 빠르게 도착한 사람에겐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좌석이 얼마나 푹신했는지, 흘러가는 경치가 어땠고 얼마나 쉽고 편리했는지 정도. 

반면에 사양하지 않고 걸었던 사람은 같지만 전혀 다른 길을 지나갔을 테다.

뜨고 지는 해의 색이 어땠는지는, 그 길을 그 순간에 지나갔던 이만이 안다. 걸음을 거듭할 때마다 멀어지며 머리 위로 떠오르던 아침해를. 안개비가 걷힌 후 풀꽃에 엉긴 이슬 사이로 빛이 어떻게 맺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산등성이를 타고 넘실대던 구름도, 발 밑에서 흩어지는 먼지와 자갈도. 함께 걷는 사람들의 웃음과 친절까지.

물론 아픔도 빼놓을 수 없다.
물집이 얼마나 쓰라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가야 하는 길은 얼마나 먼지. 어깨끈 밑으로 삐걱대는 빗장뼈가 하루를 통째로 망칠 수 있는 것도 처음 알게 된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그늘도 없는 평야를 쉬지 않고 걷는 일은 또 어떤가.
하지만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모든 건 같은 곳에서 온다는 걸. 아픔과 기쁨을 떼어놓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는 걸. 

그리고 마침내는 그 아픔과 기쁨 모두가 하나로 녹아들어 그리움으로 변해가는 것을.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무거운 신을 걷고 걸었던 순례길이 가벼운 샌들 같은 해방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또 언젠가는 이 순간조차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임을 안다. 그러니 굳이 지금의 물집을 사양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과 맞바꿔 더 많은 풍경과 사람들, 여정이 끝나 신발을 벗어던지는 기쁨을 얻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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