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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Jan 10. 2019

길 위의 생들

눈길을 끄는, 살아있는 동물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을 접하게 된다. 이동하는 거리가 거리인 만큼 사물, 식물, 동물, 인물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지나치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접점이 생긴다.

사람은 아예 다른 주제다 보니 차치하고, 내게 그 길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동물들이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개와 고양이부터 시작해, 한국에선 흔히 보기 힘든 말, 당나귀, 한우와는 품종이 좀 다르던 소들. 이외에도 종류를 알 수 없던 도마뱀, 이름 모를 산새들과 야생 토끼들을 수 없이 볼 수 있었다.


산과 들, 물과 바다를 지나치면서 만났던 다양한 생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가 특히 재미있다고 느꼈던 건 페로몬이 넘치는 라틴계 남자 같은(?) 개와 고양이들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동물을 바라보고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나, 반려동물들이 어떻게 다뤄지는지에 따라서, 그들이 인간을 대하는 형태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에 영향을 받고, 유사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었을 때 보편적인 성향을 드러내듯이, 순례길에서 만났던 개와 고양이들 또한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길을 걷다 만난 녀석들은 우선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흥미가 생겼다 싶으면 어슬렁거리며 슬쩍 다가와선 코를 한두 번 킁킁거린다. 거기서 좀 더 관심을 끌 만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자기 갈길을 간다.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안보다 밖에서 보내다 보니, 사람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이 사람에게 좀 더 흥미가 생겨도 보채거나 달라붙지 않는다. 여유롭게 몸을 비비거나 마음대로 자신을 쓰다듬고 만지게 내버려둔다.


마치 '내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잘 보라고' 같은 태도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주인과의 놀이에서는 에너지가 넘치니, 그야말로 마초적인 매력의 귀염둥이들인 것이다.


주인이 없는 떠돌이 개나 길고양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코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는 두지만, 크게 무서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귀찮아 하면 귀찮아했지.

한 번은 떠돌이 개에게 과자를 나눠주기도 했는데, 내 팔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과자를 바닥에 놓아줄 때만 슬쩍 다가와서 집어먹곤 했다. 불안하게 눈치를 보지도 않았고, 허겁지겁 씹어삼키지도 않았다.

마치 내가 그 녀석에게 동정을 베푸는 게 아니라 같이 식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개와 고양이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페인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비쳤다. 사람을 피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만나지 못해 안달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공존이란 오히려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의존도 두려움도 없이, 서로의 영역을 적절히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굳이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문화를 대입하여 어디가 옳으니 그르니 잘잘못을 따지고 싶진 않다. 알다시피 모든 문화란 그런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맥락이 존재하니까.

다만 우리가 동물들과 형성할 수 있는 올바른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로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야생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다양한 동물들이, 그 본질을 내려놓고 인간과 교감하고 삶의 한편을 내어주는 장면을, 누구나 몇 번씩은 봐왔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종을 초월해서 그런 관계를 쌓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 이유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특별함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길 위에서 만났던 많은 동물들이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었듯이, 우리도 또한 서로를 비추는 좋은 거울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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