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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Jan 13. 2019

하루의 일과 #1

순례길 24시

내가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은 하루의 일과였다. 어디서 출발해서 어떻게 도착하고, 그 가운데 있는 애로사항이나 소소한 즐거움들. 하지만 의외로 그런 내용을 다룬 콘텐츠들은 많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른 체력과 장비를 가지고 있으니 표준을 내기는 쉽지 않아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인데 그 정도도 없을까 싶었지만, 진짜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써보고자 한다.


어떤 일이든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습관과 요령이 생기게 마련이다. 당연히 처음과 끝이 같지 않고, 내가 걸은 순례길 또한 그랬다.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을 구간별로 나눠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는게 더 의미가 있었기에 시간에 따른 체감을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하루의 시작은 알베르게에서 부스럭대는 소리들과 함께 시작한다. 이르면 새벽 5시 경, 좀 늦어도 데드라인인 7시 즈음에 순례자들은 대부분 알베르게를 떠난다. 아무래도 도미토리 형식의 숙소다 보니, 독실이 아닌 이상 아침의 소란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순례 초기에는 나름대로 체력도 어느정도 여유가 있고, 눈치를 보는 편이라 나름대로 조용한 편이지만, 2주만 지나도 모두가 자기 할일에 집중할 뿐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뜬 이후엔 선택지가 두가지로 갈린다.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느냐, 아니면 준비를 끝내놓고 나서느냐.

대부분은 준비를 끝낸 후 식사를 하는 걸 선호한다. 여유를 부리다간 순식간에 태양이 떠오르고, 낮은 각도라도 금새 피부가 따끔거릴만큼 햇살이 매섭기 때문이다.


침낭부터 시작해 침대 주변에 널어두었던 세탁물 등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은 후 세안을 마쳐 식당으로 향한다. 초보자때는 속을 든든히 채우는 것이 걷기에 좋을것이라 생각하고,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나서곤 했다. 하지만 몇 번 빈 속으로 걷다보니, 오히려 그게 더 가볍고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대신 한 두시간만 지나도 배가 급격히 고파지는게 문제지만.

그래서 절반 정도를 걸은 시점에는 빵 한두조각과 과일 조금으로 아침을 때우고, 간식을 자주 먹는 것으로 타협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숙소에서 아침을 먹는다면, 대부분의 숙소가 아침식사로 빵과 치즈, 잼, 버터, 주스, 우유 등을 제공한다. 그 전날 숙박을 등록하면서 아침권을 함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식비는 3~5유로 내외.

메뉴가 푸짐한 경우 계란과 과일, 베이컨, 소시지 따위도 함께 제공하는데, 베이컨과 소시지는 꽤 짠편이어서 많이 먹기는 힘들다. 

뷔페식으로 제공되기도하고, 단순히 한 접시의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딱 상상할 수 있는 비주얼의 맛이고 음식이라, 특별하게 묘사할 거리가 없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면 하루의 일정을 시작할 준비가 된다. 만약 대도시에서 묵었다면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볼 수 있다. 주변에 순례자가 보이지 않더라도 길바닥에 박힌 조개껍질 모양의 이정표나 표지판, 페인트로 그려진 노란 화살표 등을 통해 얼마든지 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때때로 난해한 구간이 존재하기에 지도 어플과 순례길 가이드 어플리케이션은 필수다. 나는 Buen Camino, maps.me 어플을 유용하게 사용했고, 아직도 내 휴대폰 안에 여전히 설치되어 있는 상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작은 마을은 10여분 정도면 충분하고, 대도시라면 시 외곽의 공업지대와 을씨년스러운 재개발구역 등을 지나쳐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버려진 구역들에도 흥미를 가지는 편이다. 내가 여행자로서 스페인에 왔지만, 단순히 아름답고 좋은 것들만 보는 것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하고, 그렇게 버려지거나 사람들이 떠나갔던 자리도 나에겐 스페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여행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고, 나는 여행을 통해 내가 인지하는 삶의 테두리를 넓혀가는 것을 원하기에 그것이 내게 관심의 대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좋은것이 있을 수도 있고, 나쁜 것이 있을수도 있지만, 그 사이의 진폭이 크면 클수록 나는 보다 풍부하게 세상의 깊이를 인지한다고 믿기에.

물론, 너무 바닥을 쳐서 목숨이 위험하거나 인류애가 사라질 정도라면 고민을 좀 해 봐야하겠지만.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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