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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봉 Jun 24. 2021

투사로 나를 본다.

 거울이미지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인정해 주지 않은 모습을 타인에게 투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그 모습으로 불쾌한 기분을 느꼈을 때 어릴 적 내 부모가 인정하지 않은 모습을 타인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거울 이미지라고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보살핌이 있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아기를 사랑으로 보살폈다면 아기는 이 세상을 사랑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라볼 수가 있다. 그러나 아기를 두려움으로 보살폈다면 아기에게 이 세상은 안전하지 않고 불안한 세상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에 이 두려운 세상이 억압되어 있다. 이 두려운 세상은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대를 잇게 되고 해결될 때까지 카르마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카르마는 해결되지 못한 무의식이 다음 생에도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카르마라고 한다.


주말 친정에 다녀오면서 차를 운전하던 신랑과 싸움을 하게 되었다. 신랑은 운전하기 전 차의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상태였으며 계속 깨끗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나 보다. 그러나 아이들이 탄 차는 순식간에 더럽혀 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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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를 먹다 아이들이 과자통을 쏟은 걸 본 신랑은 노발대발했으며 신랑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본 나는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 내 상처 지점이 있었다.  

어릴 적 내 부모님 또한 차 안에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을 싫어했고 차 안이 더럽혀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특히 아빠의 경우 방에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도 극도로 싫어해서 어린아이에게 초코파이를 사 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차 안에 과자 부스러기를 흘렸을 때 아빠의 살기 어린 눈빛을 신랑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신랑이 운전 중이었고 도망가고 싶고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었으나 달리는 차 안이라 나의 두려움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을 느낀 나는 회피하지 않고 투쟁했고 분노했다. 



누가 청소하라고 시켜서 한 것도 아닌데 왜 아이들한테 화를 내? 이렇게 화낼 거면 다음부터 자기 혼자 차 타고 다녀~ 괜히 기분 좋게 차 타서 먹을 것도 못 먹게 할 거면~






아이들은 흘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픈 신랑과 그걸 지켜보며 무서움에 벌벌 떨던 목소리를 크게 내며 지지 않았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던 신랑에게 화를 낼 거면 청소하지 말라고 했다. 지나간 쾌쾌 묵은 얘기까지 꺼내며 나를 공격하려던 신랑은 그렇게 잘나서 집도 그렇게 더럽게 해놓느냐고 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땐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청소해서 누구에게 칭찬받으려는 것이냐 따져 물었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은 것들을 타인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칭찬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원은 어릴 때 내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은 그 감정을 무의식에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어릴 적 상처 받은 내 무의식이 억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한다면 다른 사람이 무얼 하든 관대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냥 내 마음 한켠에서 올라오는 이 불편함들이 해소되어 자유롭고 싶다. 그저 내 아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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