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귀납법과 연역법은 기초적인 논증방법 중 하나이다. 연역법은 이미 참이라고 알고 있는 사실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추론해 내는 방법이고 여기에는 명제논리, 술어논리 등의 검증된 도구가 사용될 수 있다. 귀납법은 반복적으로 관측된 사례를 바탕으로 특정한 명제를 추론하는 것이다. 다음 예시를 살펴보자.
a) 모든 사람은 죽는다.
b)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c)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a)와 b)를 전제한다면 c)는 명백하게 도출된다. 그렇다면 다른 예시를 살펴보자.
a) 이 까마귀는 검다.
a-1) 다른 까마귀는 검다.
...
a-99) 100번째 까마귀는 검다.
b) 모든 까마귀는 검다.
위 논증은 다소 의심스럽다. a) ~ a-99)가 모두 참이라고 하더라도 검지 않은 까마귀가 한 마리만 관측된다면 b)를 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관측하지 않은 대상 중 검지 않은 까마귀가 존재할 가능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귀납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된다. 역사적으로도 귀납의 타당성에 대해 논쟁이 있어왔고, 칼 포퍼(Karl Popper)등은 귀납을 논증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귀납논증은 연역논증과 함께 물리학, 화학, 경제학 등 광범위한 학문 영역에서 명제를 도출하는 핵심적인 논증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귀납논증에 치명적인 허술함이 있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논증 방법으로 채택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우선 얼마나 많은 사례를, 얼마나 '잘' 선택하여 관찰했는지에 따라 귀납의 강도를 분류할 것이다. 관측 횟수를 중심으로 다음 예시를 살펴보자.
1) 까마귀를 324마리 관찰했는데 모두 검은색이었다.
2) 백조를 600마리 관찰했는데 모두 흰색이었다.
3) 트럼프카드상자에서 카드를 꺼내 26장의 카드를 뒤집었는데 모두 검은색 카드였다.
4)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김철민 씨"라고 23번 불렀는데 부를 때마다 반응했다.
우선 1)과 2)를 비교해 보자. 까마귀는 324마리를 관찰하였고, 백조는 600마리를 관찰하였다. 1)과 2)중 어떤 문장이 더 설득력 있는 문장이라 볼 수 있는가? 600번의 관찰을 한 경우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를 편하게 "귀납의 강도가 높다"라고 약속하자.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제 3)과 4)를 비교해 보라. 비록 3)이 귀납의 강도가 더 높음에도 다음번 뒤집을 카드가 검은색이라고 추론하는 것보다 4)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김철민 씨'일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상적으로 3)과 4)를 읽을 때 이미 특정한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3)에서는 트럼프 카드 52장 중 26장은 검은색, 다른 26장은 빨간색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4)에서는 보통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반응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굳이 속이려 들지 않는다는 경험적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귀납의 강도를 분류할 때는 변인의 통제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변인을 적절하게 계량화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 참으로 받아들이는 '일상적인 사실'의 대부분이 귀납적 추론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순간을 생각해 보자. 아기는 처음에 부모님이 "아빠, 아빠"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다음은 말을 따라 해본다. 그러면 자신이 '아빠'라는 단어를 말할 때 아빠가 반응하는 것을 또 반복적으로 관찰한다. (또한 이 경험을 통해 귀납적 학습방법이 유효하다는 것을 귀납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우리의 언어는 이렇게 구성된다. 비록 청년이 사전을 통해 단어를 학습하는 과정은 연역이라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적절한 반례가 될 수 없다. 청년도 처음 말을 배울 당시에는 귀납을 통해 언어를 배웠을 것이며, 이 언어를 바탕으로 사전의 글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귀납으로 검증된 과학적 명제들을 쉽게 의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과학 실험들, 특히 '법칙'이라고 칭하는 것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보다 더 엄밀한 방법으로, 더 많은 귀납적인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만유인력법칙'을 적절한 예시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만유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실험을 통해 귀납적으로 검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유인력법칙에서 파생된 다른 이론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셀 수 없을 만큼 간접적으로 귀납되었다. 앞선 표현을 빌리면 강한 귀납논증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이를 부정하려면 일관성의 원칙에 따라 언어에 대해 의심을 해야 한다. 개인이 학습한 언어는 일반적으로 실험을 통해 검증한 원리보다 더 약한 귀납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참으로 간주하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를 부정한다면 어떤 명제도 참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므로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검증된 귀납 명제는 참으로 받아들여야 타당하다.
3.
귀납법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더라도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귀납추론을 하기때문에 귀납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