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 후기

10월 14일의 기록

by 무웉

그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하다가 다시 펜을 들었다.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끔찍히도 아팠다. 목감기에 걸린지 꽤 됐는데도 좀처럼 낫지를 않고 오히려 감기의 정중앙으로 돌진하는 것 같았다. 혀의 한 구석에는 자그마한 혓바늘이 자라났다. 크지도 않은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 혀 전체를 아프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긴, 편도도 크지 않은데 내 컨디션을 완전히 해저로 끌고가고 있었다. 보통 일기는 불침번 책상에서 쓰게 되는데 금요일 불침번 때는 여러 장의 편지를 쓰느라 시간이 없었다. 몸이 좋지 않아 편지조차 쉬엄쉬엄 써야했다. 분명 5살만 젊었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마침내 너와 함께할 수 있었다. 함께 발을 맞추어 걷고, 맛있는 카페음료를 마시고, 적당히 술을 마시다가 나란히 앉아 야경을 보고, 또 내 어깨에 네 고개를 살짝 올려놓고. 그 모든 것이 마치 한겨울에 동남아 여행을 갔다 온 듯이 너무나 꿈같았다. 토요일 일요일에 적응이 잘 안 되었던 만큼 한겨울로 돌아온 지금도 잘 적응이 되지는 않는다. 주말의 그 기억은 글로 차마 표현하지 못할만큼 풍부하고 살아움직이는 무언가다. 글로 쓰는 것은 새를 케이지에 가두는 것보다도 잔인한 일일 것이다. 반면 오늘은 저녁 8시까지 훈련을 하다가 8시 30분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받아 연락도 하고 세상과 소통했다. 물론 아예 핸드폰을 못 받을 줄 알았다가 받은 것이라 의외에서 오는 행복으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힘든 하루였다. 딱히 한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지치는지 알 수 없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도 나를 기다릴 너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힘들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이웃집 토토로' DVD가 있었다. 하늘색과 흰색 그리고 빛을 반사하는 연두가 있는 초여름의 냄새가 좋아서, 그리고 푹신해보이는 고양이버스와 토토로가 좋아서 과장 없이 백 번 정도는 봤던 DVD이다. 이제 어른이 된 내 손에는 DVD 대신에 편지가 들려있다. 읽기 전에는 항상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무대 세팅이 완료되고 편지를 읽으면 그날의 네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하얀 치맛자락을 날리며 추는 춤은 금방 끝나지만 공연장에서는 여름 냄새가 꽤 오랫동안 난다. 그리고 이 공연, 정신만 집중한다면 몇번이고 다시 볼 수 있다. 꿈에서 깨는 순간에 꿈의 내용을 대부분 잃게 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내용을 뇌가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꿈은 그렇게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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