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을 채우는 충만함.
그 누구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할 때
혼자 견뎌야 할 때
내 안에 있는 엄마를 불러보면 좋겠다.
어색하겠지만
해보면 좋겠다.
엄마처럼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을 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나를 안다는 건
나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고
나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고
세상과 연결되면
우리는 자신이 이땅에서 해야 할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깊이 알아간다.
글을 쓰면서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보호막을 입고 살았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만든
상상의 세계에서
필요도 없었고
유용하지도 않았던
나의 갑옷을
천천히 벗겨내린다.
행동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습관적으로
자동반사적으로 했던 행동에
버퍼링이 걸리고
느려진다.
조금씩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길을
내 삶에 내기 시작한다.
글은
내 안을 채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재료다.
텅빈 그릇인 내 안에
사랑의 언어, 소망의 언어로
채울 때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
쾌락, 돈, 물질 같은 외부적 자원으로
충만함을 누리는
이 시대에
글쓰기는
한계가 없는
돈도 들지 않는
내적 만족감의
원천이 된다.
인간은 언어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남의 말도 영향력이 강력한데
당신 안에서 나오는 말은 그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내 안을
채우는 언어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내 안을
사랑과 소망의 언어로 채우기 시작할 때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영양제를 먹듯
비타민을 먹듯
내 마음을
사랑과 소망의 언어로 먹여보기를.
그것이 나를 알고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닐는지.
나를 돌보는 또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오랫동안 양재역 근처에서 살았는데
마음이 어려울 때마다
그곳에 가서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
눈에 익은 간판들과 나무, 거리의 풍경들을 그냥 본다.
내게 익숙하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데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에 힘이 난다.
언젠가 tv에서
연예인 최강희씨가 친한 지인분의 집을 청소해주는 것을 보았다.
청소를 하며 즐거워하는 최강희씨를 보니
저 사람에겐 청소가 자기를 돌보는 행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 말고도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반려견, 정원, 집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상담을 하며
사람을 만날 때
그것이 곧 나를 돌보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왜 상담을 하며
치유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을 보며
나를 보았고
그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은
곧 내가 나아지는 것과 같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하는 것.
그저 하는 것.
그때 당신의 얼굴에서
빛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을
사람들은 알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