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리아의 꽃다발
밴쿠버에 와서 플로리스트의 꿈을 꾸었다. 거리에서 보면 그냥 흔한 동네 꽃가게 같지만, 아침마다 활짝 피어난 꽃들과 진열대를 정리하는 소리, 수줍게 꽃을 고르는 손님들의 얼굴을 보다 보면 이 공간엔 분명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마리아였다. 조용하지만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녀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회계학을 전공하고, 자영업도 했다는 그녀의 이력은 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선 누구보다 노련하고 세심한 플로리스트였다.
마리아는 말한다. 이 꽃집이 자신의 첫 플로리스트 경력이라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모든 게 낯설었지만, 그때 그녀를 이끌어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폴란드 출신의 한 플로리스트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듯, 이제는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고, 다른 시간을 살아왔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꽃을 만지며 하루를 보낸다.
가게가 한가할 때면 우리는 종종 긴 대화를 나눈다. 언젠가 마리아가 내게 물었다.
“너는 밴쿠버에 이민 올 계획이야?”
“아니, 잘 모르겠어. 아마 비자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꽃과 관련된 일을 할 거야?”
“글쎄, 한국은 꽃 시장이 너무 포화상태라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전엔 어떤 일 했었는데?”
“음… 엔지니어. 5년 정도. 전공도 그쪽이었고.”
마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엔지니어는 급여도 높고 안정적인 직업이잖아. 그럼 한국 가면 다시 그 일 하고 싶어?”
“아니, 다시 하고 싶진 않아. 그때는…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꽃을 계속 만져. 너는 이 일을 즐기잖아. 그게 보여.”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은 무게감이 있었다.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살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해. 인생은 정말 짧아. 나는 18살에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이혼하고, 캐나다로 이민 와서 벌써 이 나이가 됐어. 눈 깜짝할 사이야.”
마리아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삶의 조각을 함께 바라보고 나눌 수는 있다는 걸,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배웠다.
그녀의 말처럼, 인생은 짧고,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도.
꽃집의 하루는 여전히 분주하고, 꽃은 매일 피고 진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간다. 꽃을 만지는 손끝보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게 옆에서 조용히 말 걸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게 또 다른 행운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