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배운 슴슴함

나다운 삶이란 뭘까(1)

by 트루먼 초이

그날의 슴슴함을 잊지 못한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소바의 맛.

강렬한 자극 없이도 깊이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수.

그 슴슴함은 지금 내 삶의 지향점이다.


#1/5

오키나와를 가본 적이 있는가. 일본이지만, 일본과 다른 남쪽 나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양의 섬을 가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곳에 혼자 갔었던 적이 있다. 그저 노을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눌렀던 스카이스캐너. 그렇게 얻게 된 아시아나 티켓.


사실 100% 충동은 아니다. 나는 보고 싶은 게 있었다. 고래상어를 보고 싶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멍을 때리는 게 내 목표였다.

수족관 가서 멍 때리기. 그 외에는 계획이 없었다.


#2/5

오키나와 2박 3일 여행 동안 정말 많은 콘텐츠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냥 그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오키나와행 아시아나 비행기에서 나는 한 아이의 부모와 눈인사를 참 많이 했다. 그 아이가 계속 울었기 때문이다. 정말 쩌렁쩌렁하게도 울었다. 아이의 부모는 연신 미안해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갓난아기. 나도 언젠간 저런 순간이 오겠지? 아이가 귀엽다기보단, 그 상황이 불쾌하기보단 진짜로 그저 신기했다.


그렇게 도착한 오키나와. 일본어도 모르는 스스로가 모노레일 티켓을 끊었다며 뿌듯해하던 것도 잠시. 나는 오키나와의 뜨거운 태양 아래 백기를 들었다. 진짜 너무 더웠다. 작열하는 태양을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했다.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그렇게 해변과 노을을 찾으러 다녔다. 오키나와 선셋을 검색하며 무작정 시내를 걸었다. 나름 멋 부린다고 선택했던 검정 데님 바지, 3일 전의 나를 후회하며 묵묵히 걸었다.


무작정 떠난 해변 찾기, 그 여정 속에 즉석으로 사 먹어본 얼음컵 속 하이볼. 그 청량감을 잊을 수 없다. 그때였다. 나에게 선사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느꼈던 순간이. 살짝 쓴맛 뒤에 찾아오는 청량감. 짜릿했다.


두 시간 반을 돌아다니며 결국 바다를 찾았다. 에어팟을 잠시 빼고 주변의 소리를 들었다. 피서를 즐기는 가족, 학교 끝나고 놀러 온 중학생 친구들, 서로에게 기대고 있던 커플, 그리고 나. 혼자인 게 어색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이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잠시 그런 모습을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혼자임을 스스로 선택한 게 무서우면서도 후련하면서도... 아무튼 그랬다.


#3/5

고래상어를 보러 가는 둘째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는 1일 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땐 혼자 앉아있는 것이 좀 어색했다. 혼자 오셔도 된다는 광고는 거짓말이었을까. 나 빼고 다들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혼자인 상태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저 고래상어를 보고 싶다는 일념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만자모를 포함한 오키나와의 절경들을 구경하다 보니 츄라우미 수족관에 도착했다. 날씨는 참 좋았다. 수족관은 해수면부터 심층의 바다까지를 나선형의 계단 식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코스로 구성됐다. 작은 물고기부터 신기하게 생긴 친구들도 보다가 마침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고래상어를 발견했다.


살면서 그렇게 큰 존재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멍 때리며 약 한 시간 정도 그곳에만 있었다. 버스투어 일정상 시간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존재 앞에서 저절로 모아지는 손, 그리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 내가 만들어온 나의 가면이 잠시 무력해지는 공간. 살면서 기회가 된다면 그 고래상어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오키나와에 다시 갈 것 같다.


#4/5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음식은 스테이크, 타코 라이스, 오키나와 소바이다. 그중에서 오키나와 소바는 약간 특이하다. 오키나와 소바는 면이 하얗다. 면이 메밀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런데 왜 소바냐고? 그것까지는 모른다. 그렇게 부르고 싶었나 보다. 특이해서 기억에는 잘 남았다.


구성이 진짜 특이하다. 국수 요리치고 고명이 정말 적다. 국물과 면, 고기만이 눈에 띈다. 그런데 맛을 보면 참 신기하다. 국물이 정말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았다. 가다랑어포인가? 싶게 만드는 생선 육수의 깔끔한 맛이 먼저 느껴진다. 그리고 비린 맛 대신 깊이감이 두 번째로 느껴진다.


짜지 않고 달지 않으며 맵지 않다. 맛이 참 정갈하다. 하지만 국물을 마실수록 슴슴한 깊이감이 생각난다. 슴슴하기 때문에 오키나와 하이볼이랑 페어링이 좋다. 오키나와 하이볼도 똑같다. 달지 않고 톡 쏘기만 하는 하이볼이다. 알코올 맛과 탄산감, 그리고 약간의 레몬향. 슴슴한 국수와 밋밋한 하이볼. 둘 다 튀지 않아서 페어링이 좋다. 잘 어울린다.




#5/5

그날의 슴슴함을 잊지 못한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소바의 맛. 강렬한 자극 없이도 깊이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수.


슴슴함은 평온이다. 고요이며 안정이다. 쿵푸팬더 2에서도 위기에 직면한 포가 마음속 평온을 되찾으며 셴의 대포알을 막아낸다. 마치 구슬을 받듯이 포탄을 받는다. 셴은 포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을 때 트라우마처럼 기억하던 문양의 주인공이었다. 판다 마을을 급습한 장본인이었다. 위기상황마다 트라우마를 꺼내며 포의 정신을 파괴하는 악당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는 트라우마 속에서도 평온을 되찾았다. 붉은빛이 가득한 전장의 바다 위에서 그는 평온했다. 슴슴했다.


살면서 매콤해지거나 달콤해지는 건 의외로 쉽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때로는 매콤해지면서도, 또 다른 이들에게는 달콤한 존재가 된다. 사람이기에 도파민을 좇고 도파민에 반응한다. 슴슴함을 추구하는 것은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일반적으로는 구미가 잘 당기지 않는다. 마치 평양냉면보다는 시원한 물냉면이나 매운 불냉면이 더 선호되는 것처럼.


그렇지만 가끔은 슴슴한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키나와 소바 같은 슴슴함. 자극을 초월한 고요의 상태.

오키나와 소바의 슴슴함은 지금 내 삶의 지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