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경찰은 떠 나기 전 우리에게 조언을 하였다. 팡이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는 (REFUGE) 여성쉼터에 가서 생활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경찰들이 떠난 후 나는 팡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팡은 여전히 우리 집에서 당분간 머물고 싶다 했다. 나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란 얘기를 해 주었지만, 나는 왜 팡이 우리 집에서 나와 있고 싶어 하는지를 알기에 이해가 되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 선 타국땅에서 그것도 백인들만 살고 있는 이 깡촌에서 같은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진 아는 이라고는 내가 전부였던 그녀에게는 내가 아주 커다란 의미였고 존재였을 것이다. 당분간 그렇게 팡과 그녀의 아들은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직접 집주인에게 세를 얻어 살고 있는 처지였기에 나는 집주인을 찾아가 식구가 늘었음을 미리 보고 했다. 오래도록 비어있던 산 밑의 집이라지만 그래도 우리 세 식구에게는 과분한 크기의 훌륭한 집을 그것도 거의 무료다 싶을 정도로 살게 해주고 있는 집주인에게 나는 알리는 게 도리다 생각했고, 좁은 산골의 빠른 소문 덕에 이미 집주인도 팡이 우리 집에 기거하고 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했다. 집주인과 팡의 죽은 남편이 친구였었다는 말과 함께 얼마든지 지내고 싶으면 있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집주인의 감사하고 인자한 허락이 떨어진 후 팡과 나는 이제는 아무런 걱정 없는 그런 검은 머리 자매, 두 싱글맘으로서 같이 살아갔다. 물론 대화할 때마다 번거로운 몸짓은 필요했지만 나 역시도 그녀가 우리 집에서 나와 지내게 된 것이 좋았다. 이제 겨우 산촌 생활을 시작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눈치와 깡으로 버티기로 맘을 먹었던 긴장 가득한 그 산촌 생활에 있어서 팡은 그렇게 나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서로 의지를 한 것이다. 비록 각자의 출신국은 다르지만 우리가 같은 동양권이라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했다. 내가 아침에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이 끝나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팡은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 정말 그녀는 누구 못지않게 부지런하였고, 그녀가 준비해 놓은 태국 요리를 보고 있자면, 그녀는 마치 요술쟁이 같았다. 휴일에는 같이 장을 보러 인근 도시까지 내차를 같이 타고 가서 그녀는 태국장을 보았고, 나는 한국장을 본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작은 돌절구를 사서 무엇이든 돌절구에 넣고 찧어 만들던 태국 샐러드를 잘 만들었다. 그러면 나도 한국식 감자와 달걀 샐러드를 만들어 서로 자기 나라 것이 맛있다고 우기기도 하였다. 그녀는 김치를 만들 줄 알게 되었고 나도 간단한 샐러드와 똠양쯤은 만들 줄 알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시간을 내어 centrelink (보조금 관련 정부 기관)를 통해 팡과 아들이 제대로 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고, 그로인해 팡과 아들이 지내는 데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집에만 머무는 것에 지루했던 팡도 나를 따라 일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몸은 항상 소금에 절은 배춧잎 같았지만 그래도 외롭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여섯 살짜리 동갑내기 두 어린 개구쟁이 동생들과 지내느라고 나의 큰 아들은 가끔 피곤한 얼굴을 하였지만 두 어린 아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서로 붙어서 항상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몸짓이 필요 없이 간단한 단어나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읽어 내리는 경지까지 다 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엉켜 기어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야 마는 잡초들 같았다.
우리가 뒷 산 낮은 턱을 갈아서 뿌려놓은 모닝 글로리와 민트, 코리안다(고수), 깻잎 그리고 파 가 싹이 올라올 쯤의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다. 한대의 작은 트럭이 우리 집에 올라왔다.(우리 집은 지대가 약간 높은 산 중간쯤에 위치해 있어서 나는 주로 '올라온다' 란 표현을 쓴다) 그는 죽은 팡의 남편의 큰 아들이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가 들려 있었고 그 가방에는 팡이 미처 챙기지 못했던 팡과 그녀 아들의 옷가지와 소지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집과 땅은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기는 했지만 워낙 외진 산골이고 별로 쓸모없는 땅이 크기만 커서 선뜻 사려는 사람이 없다 했다. 이대로라면 언제 팔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그래서 팡에게 제안을 하려고 한다 했다. 일단 얼마에 팔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현제 시세로 환산한 금액에서 법적으로 팡과 아들의 지분을 계산한 금액을 미리 줄 테니 그 금액을 받아들이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사실 나야 당연한 것이었고 팡조차도 그 집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지냈음이 분명했다. 나도 그 아들의 말을 팡이 알아들을 수 있게 팡에게 쉽게 다시 설명했지만 팡은 그 동그란 눈만 깜박거릴 뿐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오히려 내게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라고 묻듯 팡은 나를 바라봤고, 팡의 남편의 큰 아들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일단 팡이 생각하고 결정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옳다고 그에게 말을 했고, 아들은 알았다며 들고 온 몇 장의 서류를 꺼내 놓았다. 생각해 보고 동의하면 같이 변호사에게 가서 사인을 하자란 말과 함께 그는 우리 집을 떠났다. Financial Agreement와 몇 장의 땅 시세를 명시한 서류 같아 보였지만 나와 팡, 우리 둘은 서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전문용어로 써져 있던 그 서류들은 더 이상의 영어사전으로도 해결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더 이상은 내가 나서서는 안 되는 사안임이 분명했기에 나는 가급적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집주인을 떠 올렸다. 물론 그가 죽은 팡의 남편과 친구이기도 했지만 그의 직업이 (conveyancer) 부동산 전문 사무 관련을 하고 있었으며, 얼마 전 나의 이혼 서류도 그가 검토하여 조언을 받은 바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팡에게 그에 대해 설명을 하였고, 그에게 가서 서류를 보이라 말해 주었다. 팡은 그러자 하였고, 우리는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십여분 거리의 집주인집을 찾아갔다. 평소 그의 집에서 사무를 보고 있는 그는 팡이 설명도 하기 전 그 서류를 받아 들고는 팡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챈 눈치였다. 나의 임무는 거기까지 인 듯했다. 나는 어수선한 아이들이 집주인과 팡의 대화를 방해하기 전 대화가 끝나면 전화를 하라고 팡에게 일러두고 서둘러 아이들만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후 오래지 않아 팡은 집주인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주인의 말인즉, 그 서류는 집주인도 이미 보았고, 그렇게 하라고 팡의 남편의 아들에게 제안을 한쪽이 그 집주인이었다 한다. 그 동네에서 땅이 팔린다는 것은 언제쯤일 것이라는 기약이 없는 것이고, 또 땅을 빠른 시일 내에 서둘러 팔기 위해 헐값에 내놓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집주인의 아이디어에 그 아들이 동의를 한 것이었다 한다. 서류에 제시된 금액은 현재 시장에 올라온 시세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고 팡과 아들의 지분을 정확히 계산하여 1 cent 도 틀리지 않게 책정된 금액이라 했다. 그에게서 차분한 설명을 들은 팡도 그렇게 하겠다 마음을 먹었다 한다. 그리고 집주인이 하는 말이 만약에 팡의 남편의 자식들이 나쁜 사람들이었다면, 땅이 팔리지 않는다면서 시간만 질질 끌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들은 빨리 팡과 그들의 어린 이복동생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는걸 덧 붙였다.
며칠 후 변호사와 그 집주인이 동석한 자리에서 팡은 서류에 사인을 하였고, 그녀는 그렇게 자신과 아들의 지분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제일 먼저 고향에 가고 싶다 하였다. 호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호주로 돌아올 것이라 했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아홉 달 동거는 끝이 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였듯, 나와 우리 두 아이들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헛헛함으로 한 동안 힘들어했다. 한동안 팡은 가끔 그녀 특유의 코 맹맹이 목소리로 내게 국제전화를 걸어와 그녀와 그녀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었다. 그렇게 점점 소식이 뜸해지면서 나도 팡을 떠 올리는 일이 드물어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녀가 산촌을 떠난 3년이 조금 넘었을 때 팡이 다시 산촌으로 나를 찾아왔다. 예전의 그 까무잡잡하던 피부의 팡이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세련된 옷차림으로 나를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큰 키의 까무잡잡하고 아주 건강해 보이던 젊은 남자와 같이였다. 그들은 태국에서 만나 결혼을 하였고, 호주의 시내 어딘가에 태국음식점을 차리려 한다고 하였다. 그 남자는 태국에서 요리를 하던 실력있는 태국 요리사라고 팡은 내게 소개하며 자랑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팡은 눈치를 보며 뿌리를 내려야 하는 잡초가 아니었다. 그녀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꽃이 되어 활짝 만개해 있었다.
지금의 팡은 누구라도 알만한 태국 음식점을 서 너개를 가진 사업가가 되었고, 다시 결혼한 남편과 두 딸을 더 낳고 너무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쩌다 내가 그녀의 특별한 날 초대가 되어 그녀를 찾는 날이면,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직접 작은 돌절구를 가져다 놓고 내가 좋아하던 나만의 그 샐러드를 만들어 주곤 한다. 이제는 영어를 나보다 더 잘해서 그녀 특유의 쾌활함으로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둥근 얼굴로 달 같이 웃으며 주변을 밝힌다. 생각해 보니 물 호스를 천천히 감으며 생각에 젖어 있던 그때 그녀의 얼굴도 이미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