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심연 앞에서, 빛을 보다

하이데거의 ‘불안’을 넘어 ‘영원’을 잇대어 사는 법

by 파로파로


어느 날 문득, 늦은 밤 천장을 바라보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 나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지는구나."

우리는 일상에서 애써 죽음을 외면합니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내일의 계획을 세우고, 적금을 붓고, 사소한 일에 화를 냅니다.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뉴스 속 사건이거나, 아주 먼 훗날의 불운 정도로 치부되곤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가장 확실한 사건이며, 우리 모두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이 불편한 진실을 꺼내어 우리 눈앞에 들이밉니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건넵니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라. 그래야만 당신의 삶이 진짜로 시작된다."


저는 오늘, 이 차가운 철학자의 통찰 위에 따뜻한 신앙의 언어를 덧입혀보려 합니다. 죽음이라는 절대 고독,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그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타인의 삶을 흉내 내는 우리 (Das Man)

하이데거는 우리의 일상적 모습을 '세인(Das Man, 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의 눈치를 봅니다. 남들이 가는 맛집에 가야 하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안심합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는 말 뒤에 숨어, 나의 고유함을 마비시키는 상태. 하이데거는 이를 *비본래적(inauthentic) 삶'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죽음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오락에 몰두하거나 일에 파묻힙니다. 죽음이라는 불안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가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이유 없는 불안감(Anxiety)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2. 죽음, 나를 단독자로 세우는 힘

하이데거에게 죽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정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사건'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 나 대신 밥을 먹어줄 수도, 나 대신 일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나 대신 죽어줄 수는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철저히 혼자입니다. 바로 그 순간, '세인'들의 평판이나 세상의 유행은 무의미해집니다.

죽음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죽음으로의 선구, Vorlaufen), 우리는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남들 흉내 내느라 낭비할 시간이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이데거는 이 질문을 통해 우리를 '결단하는 실존'으로 이끕니다. 유한하기에,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 뿐이며 치열하게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3. 하이데거가 멈춘 곳, 신앙이 시작되는 곳

하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은 여기서 멈춥니다. 그에게 죽음은 넘을 수 없는 벽이며, 인간은 그 벽 앞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깨닫고 돌아설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이 정말 끝인가? 만약 그 벽이 벽이 아니라, 문(Door)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Chronos)의 세계에서 영원(Kairos)의 세계로, 즉

'하나님 나라'로 진입하는 관문입니다. 하이데거가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가르쳐주었다면, 신앙은 죽음을 통해 '삶의 영원성'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믿는 사람의 최선은 '후회 없는 삶'이지만, 죽음 이후의 하나님 나라를 믿는 사람의 최선은 '거룩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4.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Already and Not Yet)

우리는 죽어서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죽음 이후의 소망을 현재로 당겨와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이데거적 허무를 넘어선 우리는, 이제 '종말론적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혹은 오늘 밤 주님이 나를 부르시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치열해집니다.


•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라고 하지만, 우리는 가져갈 수 없는 것을 위해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 세상은 '네가 주인공이 돼라'라고 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왕국을 알기에 기꺼이 섬김의 자리를 택합니다.


•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5. 마치며: 메멘토 모리, 그리고 마라나타

하이데거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말했고, 성경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Maranatha)'라고 답합니다.


이 두 문장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때, 우리는 그 비워진 자리를 사랑과 사명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춰 서서 죽음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은 우울한 상상이 아니라, 내 삶의 영점을 조절하는 가장 지혜로운 시간일 것입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심는 당신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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