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싸라리'인이유

by 싸라리

나는 나의 필명은 물론이고 이메일, 카톡, 스벅의 사이렌 오더에도 "싸라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싸라리"는 센티멘탈적인 이름이지만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포스팅 글이 늘어나면서 글을 흥미롭게 읽어 주시는 분들이 극소수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몇몇은 싸라리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곤 한다. 이름이 싸라리인 이유, 나의 far faraway story를 꺼내보려고 한다.


아빠의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지금도 그렇듯 공무원이라고 하면 '안정적이지만 박봉이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외 일탈을 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의 직군이다. 그렇다 보니 전주 이 씨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조선왕조가 500년으로 끝마친 데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세종대왕의 자손이라며 족보를 펼쳐놓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뿌듯함에 사로잡여 목소리를 높이곤 했었다. 그렇다. 씨족의 뿌리는 금수저인데 대한제국 이후로 금수저가 땡가당~하고 부러졌다.


나는 대학시절 부모님께 1년간 휴학 후 영어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휴학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빨리 졸업해서 좋은 직장 다니다가 시집가야지 라는 전형적인 여자의 삶을 살 것을 강요받아왔다. 나의 돈줄인 아빠가 돈을 내놓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직장에서 일을 하며 월급을 저축했다. 성질 급한 나는 몇 개월이라도 경험해보고자 몇 개월치의 생활비만 모아서 일단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났다.


내가 브리즈번으로 갔을 때는 2002년이었다. 한창 한일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떴던 때였다. 홍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 선수의 골을 보며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좋아하고 며칠 후에 비행기를 탔다. 이후의 월드컵은 방구석 1열 관람객이 되었다. 내가 대학시절 그토록 원했던 영어연수를 조금이라도 체험해보고 싶어서, 영어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호주 문화를 체험하고자 홈스테이를 신청해 호스트 패밀리와 한 달간 생활했다.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당시 많은 학생들이 현지에서 ANZ BANK의 계좌를 만들어 돈을 보관했다. 나도 몇 달간 생활할 자금을 호주 달러로 환전해서 현찰로 들고 있었기에 항시 불안했기 때문에, 계좌를 만들고 입출금 카드를 신청했다. 은행에서는 입출금 카드는 일주일 안으로 거주하는 주소지로 배달된다고 했다. 입출금 카드가 나오면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입금할 셈이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 카드는 오지 않았다. 불안했다. 한국도 아닌 해외이고, 내 집도 아닌 홈스테이 가정에서 아무리 가방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들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카드가 집으로 오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계좌는 만들었으니 입금을 하기로 결심하고 급전 일부만 남긴 채 약 200만 원 넘는 돈을 몽땅 들고 시티로 나갔다. 학원 수업이 끝난 후 중간에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곧장 은행으로 향했다.


싸라리 : 나 오픈 어카운트는 했고 캐시 카드가 일주일 지났는데도 안 왔어. (돈 꺼내며) 돈 디포짓 좀 해줘.

은행원 : 알겠어. 여권 줘봐.

싸라리 : ..............(당황)

은행원 : 여권 없어?

싸라리 : 여....권은 안 가져왔고, 그...때 오픈 어카운트 할 때 받았던 문...서는 있어. 여기 봐봐. 이걸로 어......찌 안될까?

은행원 : 응. 안돼. 내일 여권 가지고 다시와

싸라리 : ...........

은행원 : 여권 없으면 안 된다고. 다시와.


로컬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나의 신분을 증명할 길은 여권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바보같이 여권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나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자책하다 기분까지 우울했었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고 마음을 접고 기분 전환할 겸 가볍게 윈도쇼핑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채 1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래도 집에 빨리 가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한 후 버스 티켓을 꺼내려고 가방을 열어 지갑을 찾았다. 내 손은 가방 안에서 허공만 허우적 대고 있을 뿐 당최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가끔 책 속에 지갑이 끼어 있어 놀라는 경우가 있었기에 가방을 활짝 열어 가방 안 물건을 몽땅 꺼내서 확인했다. 없었다.지갑이. 깜쪽 같이 사라졌다. 가방이 어디 찢어지거나 한 흔적도 없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온 신경이 돈에 가 있어서 힘들었는데 잠깐 1시간 정신을 놓은 사이 누군가가 내 가방을 열어 지갑을 가져갔다. 그놈인지 그년인지는 몰라도 내 지갑을 겟 한건 정말 땡잡은 날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은행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는 동안 누군가와 부딪친 적이 없었다. 쇼핑은 했지만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지 않았다. 가방이 열리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었다. 누군가가 솜털같이 다가와 빠따 바른 듯 지퍼를 열고 지갑을 꺼낸 후 세상 친절하게 가방 지퍼까지 꼭 닫아주었다. 지갑을 도둑맞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너무 놀랐지만 어이없었다. 현실을 인지하고 눈물이 나오기까지도 꽤 몇십 분이 걸렸다.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를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휴대폰이 없어 호스트 패밀리한테 전화를 하거나,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 날따라 수업 끝나고 시티를 배회하는 아는 얼굴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은행 계좌 만들 당시 100불을 입금했던 기억이 있어 어떻게든 해보자 싶어 은행으로 다시 갔다. 폐점 시간이라서 은행 문을 막 닫고 있었다.


싸라리 : 아까 나 여기 왔던 거 기억하지? 지갑 도둑맞아서 땡전 한 푼 없어서 집에 못가. 나 은행 계좌에 100불 있는데 그거 어떻게 찾을 수 없을까?

은행원 : 너 여권 없잖아. 그리고 지금 은행 문 닫을 시간이야.

싸라리 : ..............(좌절)

은행원 : 경찰서로 가서 도움 요청해봐.

싸라리 : 도와줘.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야.

은행원 : 쏴리. 안돼. (문 잠가버림)


경찰서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기로 하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갔다. 나와 같은 방향의 버스를 타는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구걸인데 쬐끄만한 동양 여자애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돈을 구걸하니, 이를 믿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호주였기에 동양 여자의 쫑알거리는듯한 외침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나름의 겉모습으로 선별해 가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을 되새기며 굉장히 멀쩡한 척했다.


나와 신세가 비슷한 학생에게 요청해보자 싶어 다가갔다.

싸라리 : 익스큐즈미, 나 지갑 도둑맞았어. 집에 못 가는데 버스비 좀 주면 안 될까?

학생 : 나도 돈 없어. 미안해.

학생은 돈이 없지. 도와줄 처지가 안되지 하며 애써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 보았다.

싸라리 : 익스큐즈미, 나 지갑 도......(둑)

행인 : (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버렸다)......


슈트 입은 신사는 다르겠지,,, 하며 호주 신사에게 다가갔다.

싸라리 : 익스큐즈미, 나 지갑 도둑맞아서 집에 못 가는데 버스비 좀 주면 안 될까요? (Feat 슈렉 고양이 눈)

슈트 입은 신사 : 놉!

도시남 다운 반응이었다. 그래도 내 말은 끝까지 들어주었다.


세상의 아줌마는 다 정이 넘치니 호주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싸라리 : 익스큐즈미, 나 지갑 잃어버렸어. 집에 가는 버스비 좀 어...찌 안될까요?

호주 아줌마 : 미안해. 안돼.

역시 차가운 반응이었지만 슈트 입은 신사보다는 따뜻한 대답이었다.


이렇게 한 열댓 명을 보내고 나니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버스비를 구걸하고 있는 내 모습이 서러웠다. 옛날 서울역 앞에만 가면 그렇게 지방에서 왔는데 가방을 잃어버렸다거나, 지갑을 도둑맞았다면서 기차표 살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던 사람들이 기억났다. 나도 매몰차게 돌아섰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후회가 되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했고 빛이 사라지니 어둠이 몰려오듯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몇 사람에게만 더 도움을 청해보았다.


20대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싸라리 : 익스큐즈미, (이때부터 서러움이 터졌다) (흐엉흐엉) 마이 퍼-ㄹ스 이즈 (훌쩍) 스톨린. 아이 돈 헤브 (훌쩍훌쩍) 애니 싱글 코인.

20대 여성 : ....... (눈물을 흘리니 안쓰럽게 쳐다봄)

싸라리 : 아이 헤브 투 고우 홈 (흐엉흐엉. 콧물도 먹기 시작했다). 벗트 (흐엉) 노우 버스 페어. 캔 유 플리즈(흐엉) 기브 미 썸 머니 투 테이 커 버스?

20대 여성 : 너 어디 살아?

싸라리 : 아임 리빙 인 4존

20대 여성 : 너 집까지 버스비 얼마야?

싸라리 : 1.70 (흐엉흐엉)

20대 여성 : (지갑 열어 동전을 찾으며) 여기. 버스비.

싸라리 : (기쁨의 목소리) 땡큐 (흐엉) 베리 베리 머치.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와 연필을 꺼내며) 캔 유 플리즈 라잇 다운 유어 네임 앤드 폰 넘버? 마이 홈스테이 패밀리 윌 콜 유 레이터 앤드 세이 땡큐.(훌쩍훌쩍)

20대 여성 : (펜과 종이를 건네 받고 쓱쓱 적으며) Sarah. 0***-***-***

싸라리 : 정말 고마워. 진짜로 (근데 정말 딱 버스비만큼 주는구나.... 하는 얄팍한 생각도 들었다)

20대 여성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긴 후 쿨하게 본인의 갈길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그녀의 이름은 Sarah였다.

클래식한 이름이면서, 나에게는 은혜로운 이름이다. 이때부터 나는 "사라" 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200만 원을 잃어버리고 '사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돈을 잃어버려 가슴 한편이 쓰라렸지만 작명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라의 애칭은 샐리(Sally). 내 한글 이름에도 'ㅅ' 들어가고, 이니셜은 'SY'라서 한글 이름과 나름의 개연성이 있는 이름이다. 이 이름을 사용하고 난 뒤로 영국계 사람을 만나면 나를 '사라'라고 부르고, 미국계를 만나면 '세라'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사라''세라'의 중간 교집합쯤처럼 들리는 '싸라'와 조선왕조 500년의 뿌리 '전주 이 씨'의 '리'를 붙여 '싸라리'가 되었다. { 사라∩세라 } + 전주 이씨=싸라 리


대영제국, 미합중국, 조선왕조

싸라 리, 3국을 통일하는 이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