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이 된 시후는 의젓해져 혼자서 샤워도 곧잘 하고 혼자서 컴퓨터 하고 TV 동물농장 삼매경에 빠져 논다고 했다. 그러다가 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가게로 쪼르르 달려와 엄마아빠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TV를 보곤 했다. 손님이 있을 때는 슬며시 밖으로 나가 야외탁자에 앉아 카드놀이를 하거나 친구랑 뛰어놀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상가에서 장사를 하기에 가게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랑 가게 앞에서 뛰어다니가 집에 가서 준비해 둔 저녁밥을 먹고 숙제를 하다 자는 게 시후의 하루 일과였다. 아예 가게에서 햄버거나 간단한 분식을 시켜 먹고 갈 때도 많았다.
가게 매출의 90%는 배달이지만 그래도 꼭 하루 적게는 10명 많게는 30명 정도는 홀에서 맥주나 소주를 마시며 세 시간 이상을 죽치고 있는 손님들로 가게 안이 제법 북적일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우리 가게에서 두 번째 옆가게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술냄새는 안 내는데 길바닥에서 자는 건지 의식이 없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11월 말이라 밤에는 공기가 제법 차가워서 자칫 잘 못하면 동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게로 뛰어가 카운트 위에 있는 휴대전화를 집어드려는 찰나 가게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리더니 수화기를 들자마자 시후의 발작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족발을 포장하던 남편이 "빨리 집에 가봐라.
이제 다 컸다고 한시름 놓겠다 싶으면 자다가 깨어 울 때가 가끔 있었다. 악몽을 꾸었는지 가게로 전화를 해서는 " 어.. 어.. 으.. 아.. 앙" 발작하듯 울어댔다. 시후야 왜 울어 엄마 갈 테니 울지 말고 있어. 부동산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자기가 119에 전화 좀 할래? 지금 그게 중요하니? 등신아 빨리 가 c8..
"시후가 잠자다 깨어나 운다고 지금 당장 죽니? "또 욕하니 인간아." "C발 빨리 가라고." 늘 이런 식이었다. " 길에 쓰러진 사람 119 신고하는데 1분만 하면 되는데 고작 잠에서 깨어나 우는 아이 때문에 외면한다는 게 말이 되니? 지금 상황이 쌍욕까지 하고 미칠일이냐고. 네 부모나 자식이 쓰러져 있는데 다른 사람이 아무도 신고 안 하고 지나치면 좋겠니? 너 같은 인간하고 정나미 떨어져 한시도 살 수 없으니 차라리 도장 찍어."
하고 소리 질렀더니 그래도 급한 성질머리에 손님이 있건없건 아내한테 쌍욕을 퍼붓는 남편이 이혼하자 소리에는 절대로 그러자고 대꾸를 하는 법이 없었다.
문제는 크게 흥분할 일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일상 언어로 쌍욕을 하는 게 버릇이 돼버렸다. 그 폭력성 언어에 빈번히 노출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각이 무뎌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될까 봐 무서워질 때가 있어 쌍욕을 하면 나도 같이 바락바락 악을 써대며 쌍욕을 퍼붓고 "그 따위로 상처 줄 거면 굳이 한집에 붙어 살 이유가 있니? 당장 이혼하자."라고 강하게 나가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혼하는 게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나처럼 자기한테 더 이상 찢길 곳이 없을 만큼 인격적인 난도질과 모욕을 당하고도 끝까지 버틸 여자를 만날 자신이 없는 건지.. 이혼이 두려운 건 나와의 헤어짐 자체보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친모인 나보다 더 잘하는 여자를 만날 자신이 없는 것일 테고, 나에게 가하는 비상식적인 행위와 언어폭력을 다른 여자는 한 달 아니 1주일도 견딜 여자가 없다는 걸 본인도 인지하고 있을 터였다.
걸어가면 4분 뛰어가면 2분 거리이고 아파서 숨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몇 분 빠르나 늦어나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이면 잠자다 깨어 울 때도 지났거니와 운다고 곧바로 달려가면 그 버릇을 고치기 힘들지 않겠냐는 생각에 미치자 은근 열받고 남편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집으로 가면서 119 구급대에 쓰러진 행인을 신고했다. 남편에게 말해봐야 "등신아 네가 안 해도 신고할 사람 있다."며 고함칠 게 뻔하기에.. 집에 도착하니 시후는 악몽을 꾸었는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울다가 나를 보자 안도하며 뚝 그쳤다.
3여 년 전에 이런 남편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에 경종을 울리고 버릇을 단단히 고쳐보고 싶어 아니 극단적으론 정말로 이혼할 각오로 친정 엄마와 남동생에게 부탁해 연기를 부탁한 적 있었다. 어느 날 급습해서 그동안 나에게 행했던 파렴치한 행위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너 같은 파렴치한 놈은 우리 사위로서 자격이 없으니 다시는 내 딸 볼 생각 마라." 라며 호통을 치고 돌아서는 엄마를 따라 짐을 싸들고 친정집에 가버린 적이 있었다. 뒷날 오후에 죽마고우로써 현재까지 절친인 남편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와서 날 설득하려 했다. 툭하면 쌍욕하고 인격을 짓밟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인간과는 더는 함께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전달하며 합의이혼 의사를 선언했다.
겁을 조금 먹었는지 내가 친정으로 온 지 3일 만에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행위에 대해 눈물로써 용서를 빌었다. 덜컥 용서를 하면 또 버릇이 나올 것을 우려해 지버릇 개 못주는 법이니 맞지 않는 상대 힘들게 맞추려 말고 그만 이쯤에서 끝내라며 종용했다.
남편의 표정은 교무실에 불러간 말썽꾸러기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기죽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사과를 하며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33년이 넘도록 박힌 버릇이 한순간에 고쳐지리라고 믿지도 않았다. 행여라도 샌드백 취급하며 화풀이 상대로 삼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득해지며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그의 표정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7년을 한 이불을 덮고 살아온 사이가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자체가 33년의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격이라 생각할 만큼 그는 작고 여린 내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경제권을 그가 다 쥐고 있어 당장 이혼을 하면 살아갈 일이, 그에게 거의 매일 당하는 언어폭력보다 나은 생활이 보장된다는 희망 또한 희박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부모님과 손아래 처남의 서슬 퍼런 으름장에 겁을 먹고 앞으로 나를 대할 때 함부로 했다간 지금처럼 경을 친다는 걸 인지하고 아량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단 1-2%라도 유순해지고 욕지거리도 세 번 할걸 한 번으로라도 줄어든다면 성공적이라는 기대는 은근히 품고 싶었다.
그러나 집으로 복귀하고 사흘은 욕이 튀어나올 순간에도 나의 눈치를 살피며 자제하는 노력은 보였다. 작심삼일은 괜히 생긴 사자성어가 아니었다. 그 이후는 도로아미 타불이었다. 지버릇 개 못주는 놈이었다.
어느 날 오후 가게에 출근하는 길이었다. 가게출입문 앞에 막 이렀을 때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찾아와 남편에게 말을 걸기에 나는 대화가 끝나면 들어가려고 밖에 서서 잠시 기다렸다.
"사장님 저번주에 제 아들을 119에 신고를 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 "아.. 네 옆가게 앞에 쓰러져 있던 분 어머니 되시는지요? " 네, 날이 추워서 그대로 시간이 지체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데 사장님 덕분에 구급대가 집으로 데려다주어서 무사했어요. 다행히 호주머니에 신분증이 있어 사는 곳을 조회했나 봐요." "아이고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신고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 아드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 네 그냥 모른 척 지나치지 않고 신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장님 복 많이 받으세요." 할머니는 아들 같은 사람한테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인사를 하고 가셨다. 코앞에서 남편의 언행을 지켜본 나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방금 그 할머니 저번주에 쓰러진 아저씨 어머니래? "응 몸이 좀 안 좋은 상태에서 술을 마셨대." " 당신 찔리는 것 없어? 119 구급대에 신고하랬다고 그렇게 나한테 쌍욕을 퍼붓더니 마치 본인이 신고한 것처럼 눈하나 깜짝 않고 능청스럽게 감사 인사를 받다니? 아이고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신고하는 게 당연하다고? 그 연기력은 대종상감이다. 참.. 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나 같음 제가 아니고 제 집사람이 신고를 했는데 아무튼 무사하다니 다행입니다."라고 사실대로 분명히 말하겠다. 당신 부모가 그렇게 치사하게 살라고 가르치디?" 이때다 싶어 남편의 가식적이고 비열한 행위에 마음껏 조롱을 날렸다.
우습게도 그렇게 안하무인이던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묵묵부답이었다. 그 후로 쌍욕을 할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무기로 종종 되갚아 주었다.
새 학기가 되었고 시후는 4학년이 되었다. 1학년때는 학부모 총회를 참석했는데 그 이후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 갔는데 솔직히 참석의 의미가 딱히 참석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중간고사를 한번 치렀는데 수학 시험이 60점이 나와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시후는 학원을 안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입시 지옥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았고 후에 초등교 시절을 떠올렸을 때 마음껏 뛰어놀았던 추억하나쯤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또 억지로 하는 공부보다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공부하길 바랐다. 해서 공교육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하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고학년에 진학했으니 슬슬 영수학원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후가 선생님이 개별적으로 학부모 상담을 한다고 가정통신문을 보내왔다. 다음 주 중에 편한 날에 오라고 했다.
상담시간이 점심시간이 오후 3시 반쯤 된 시각이었다. 음료수와 족발 대자 세 개를 포장해 학교를 찾았다.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