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을 읽고
이 책의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 직전에 놓인 환자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서 남긴 글이다. 이 글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꼭 배우고 가야 할 것들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반면 삶은 기회이고 아름다움이며 놀이임을 자각하며 살라는 삶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냉혹한 현실에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경쟁하며 비교당하고 시험을 통과하고 상급학교의 진학을 거쳐 마지막까지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직업전선에 골인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신입일 때는 상사한테 터지고 어찌어찌 버텨서 연륜이 좀 쌓이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 누르는 샌드백 신세로 허덕이다 제 발로 항복을 외치고 물러남으로 써 종지부를 찍거나 권고사직 대상자의 명단에 끼이는 비운을 맞기도 한다. 명퇴까지 버틸 수 있으면 그나마 운이 좋다. 그 피나는 인내와 노력과 좌절의 산물인 부와 지위와 명예가 있고 없음이 소위 성공한자와 패배자의 척도가 되는 건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한때는 잘 나가던 경찰서장 교장출신도 퇴직 후에는 부인의 눈치가 보여 무작정 집을 나서 공원을 배회하거나 경로당을 기웃거리다 막판에는 아파트 경비원 자리를 노린다. 사정상 벌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면 이해가 되지만 누가 봐도 모아둔 재산도 있고 자식들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 아등바등 살 이유가 없고, 이제 욕심을 좀 내려놔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는 분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동안 일 때문에 미뤄 두었던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즐기고 봉사도 하며 행복하고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음에도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고 알게 모르게 죄의식을 느낀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이지만 내세와 환생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세상은 배움을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공간이며 그 배움이 끝나면 누에에서 나비가 탄생하듯 우리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하여 자유로운 영혼으로 되돌아간다고 덧붙인다. 또 그 배움의 과목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시한부 삶을 앞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살라고.
하고 싶은 건 미루지 말고 당장 실행하라고.
일에 매달리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내려놓고 일이 아닌 즐겁게 놀이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눈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은 하나같이 가족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인색했던 것,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쏟아냈다.
회사일을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거나 업무 시간을 더 연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토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일에만 혼신의 열정을 쏟아붓는 바람에 진정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자책과 통한을 뱉어냈다.
우리는 늘 쫓기듯 살아간다. 하늘의 별도 마음 편하게 바라볼 여유조차 없다. 그렇게 사는 걸 당연하다 여기며 한가롭게 멍 때 리거나 여행 다니며 즐기는 사람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부류라 칭하며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잊고 살다가 황량한 들판이 어느새 녹음으로 덮이면 여름인가 하다가 거리의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면 벌써 가을이구나 하며 세월의 흐름을 체감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에야 비로소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소중한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를 뼈 저리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사건의 결과가 아니기에 환경에 좌우되지도 않으며 대단한 업적을 세우거나 남이 인정하는 성공을 해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외형적으로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췄음에도 행복하지 못한 건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아름다운 여의사는 환자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하고 사명감과 책임감도 투철했으며, 평소 기부와 봉사로 사람들의 평판도 좋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삶이 무의미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물질과 명예가 행복의 절대적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의 반증이다.
죽음이 경각에 닿은 사람은 늙고 병든 육신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며, 자신의 화려한 직업이나 명예도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저 순수하고 성스러운 영혼 그 자체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고 일침을 날렸던 그녀는 2004년 8월, 78세의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녀는 평소의 바람대로 지구에서의 생을 마감하고 영원한 안식처인 은하수로 춤추러 떠났다.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 그녀가 남긴 평범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 세기의 명언이 시간을 거슬려 귓전에 생생히 메아리쳐 온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날마다 기적을 이루고 있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매 순간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가슴 뛰는 벅찬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