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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Oct 03. 2024

1.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 일어난 이유(1)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기본 요소도 있겠지만, 정말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관계, 돈, 건강, 또는 목표와 가치관 등 각 개인의 인생이 저마다 다르듯이 필수 요소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얽혀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보편적인 가치 요소들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먹고 살아가려면 노동을 통해 정당한 금전적 가치를 얻는다. 이 간단한 논리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으로,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사항이다.

그러니 아무리 자유로운 사람이더라도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사회적 관계망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살아가야 한다. 그게 이 회색 도시의 논리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아니, 버렸다. 나는 역할 없는 잉여 인간이 되었다.


이른바 노동한다면 그 주체로서 창업자도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아직은 그 아래 종사하는 인구수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어떠한 노동 일자리를 개발하지 않아도 비교적 수월하게 사회적 역할을 얻게 된다. 그에 걸맞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면 말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진로를 꿈이라는 이름으로 정하고, 그에 걸맞은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설사 정말로 원하는 꿈이 없더라도 자신은 어릴 적부터 어떠한 꿈이 확고했고, 또 그 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해내야만 학교든 직장이든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성적, 논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너무나 당연하고도 이해 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어쩐지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 좀먹어온다. 누구도 나를 그 경쟁에 밀어 넣지도 않았건만, 실제로 숨이 막히지도 않건만, 마치 코앞까지 뿌연 안갯길에 한숨을 내뱉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분명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고 스스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그랬는데 막상 기준이 되는 것은 남들이 바라보는 나다. 그렇기에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한참 잘 달리다가도 넘어지는 순간 내 발에 걸린 돌부리, 홀로 달리는 내내 느낀 고독과 힘듦, 넘어져 다친 내 상처의 아픔은 오직 스스로만이 안다. 그 이유를 남에게 설명하는 순간 혹자는 이해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내 이유를 온전히 이해했을지는 미지수다. 같은 현상마저도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마련인데 구태여 설명을 덧붙여 나를 표현한다고는 한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나는 그의 관점에서 걸러져 평가되는 나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회의 객관적인 기준은 합리적이다. 같은 조건 속에서 평가된 성적, 자격증, 경력 등 나를 보는 사회의 눈은 언제나 같다. 그리고, 사뭇 건조하다.


아마 당신이 한참을 달리다 갑자기 멈추어 서 땅을 보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참 바라보거나,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벌레 따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면 달리던 이들은 당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다.


잘하다가 왜 그러는 거야? 뭐가 힘들어서 그래, 다들 힘들어도 그냥 사는 거야. 지금 나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지? 나가서 뭘 하려고. 내가 걱정되어서 그래.


내가 지내던 곳을 나오면서 들은 우려와 걱정은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각이다. 그들의 관점이고, 어쩌면 사회 전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앉은 자리를 박차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경력과 내 지난 인생을 정리하고 나왔다. 적어도 그곳이 아닌 다른 풍경, 다른 길이 자꾸 눈에 들어왔고, 여러 현실적 조건과 내 마음이 마침 그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퇴사 권유 글 따위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글이다.


나는 다만 어떠한 길을 가기 전에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총량을 알고 어떠한 역할을 맡았을 때 온전히 내 책임을 쏟아붓기 전에, 자신을 알고서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남이 보기에 알맞은 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나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언젠가 누워 내 인생을 회상할 나에게 후회를 주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그렇기 위해 나 스스로 선택한 내 인생의 공백이다.


새하얀 공백에 어떠한 색을 칠할지는 이제 곧 흘러가 버릴 발자취가 알려주겠지만, 기왕 어떤 색으로든 칠해진다면 청사진으로 그려볼 테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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