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살던 그림쟁이가 찾아낸 새로운 기회
나는 그림이 좋아서 미대를 간 전형적인 인프피다. 미대생들은 자발적 아싸 기질이 다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기빨린다고 궁시렁거리면서 혼자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주로 보인다.
맞다. 특히 순수미술 전공자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게다가 난 엄청 내향적이고 고지식하다. 근데 이런 내가 어쩌다가 미술학원 원장이 되었는지 겪어온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
20살이 되자마자 놀이동산 알바 로망에 사로잡혀 뭔가에 홀린 듯이 친구를 따라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진상 손님한테 제대로 걸려서 욕을 한 바가지 먹고 난 이후로 '내가 죽어라 그림 그려서 대학에 왜 왔냐...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자.' 마인드로 바뀌면서 아동미술 강사로 일하게 됐다.
용돈벌이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용돈은 거의 없었기에 알바를 필수로 해야 했다. 나는 성향상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은 정말 안 맞는 걸 느꼈는데 그나마 아이들과 수업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약간 유치하고 엉뚱한 나로서는 제격이었다. 알바를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지도하고 가르치는 교육업이 잘 맞고 보람을 느끼는 성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본업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내 그림, 내 작업으로 먹고살고 싶었다. 그림은 언제나 1순위였다.
24살까지 계속 아동미술과 관련된 알바를 하다가 3개월 정도 작은 미술 교습소에 대리 원장으로 일을 했다. 확실히 대리 원장은 이전과는 달리 할 것들이 많았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아이들 관리며 간단한 학부모 상담까지 해야 했다. 그래도 힘들진 않았다. 뭐 원장도 별것 없네?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그런 시점에 운 좋게 엄마가 운영 중인 교습소를 한번 니가 맡아볼래?라는 제안을 받았다. 미술을 전공한 우리 엄마도 그 해 작은 미술 교습소(학원)를 인수해서 운영을 시작했고, 5개월 정도 지난 당시 원생은 50명대가 될 정도로 꽤 잘 되는 상황이었다.
너 이제 곧 졸업하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불안감에 휩싸일 시기잖아.
교습소를 한번 운영해보는 거 어때?
나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수업에 대한 경력도 2년 정도 쌓였고 대리 원장도 해봤으니 할만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 말이 맞았다. 곧 졸업을 하고 이제는 정말 혼자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시기였다. 어차피 취업이 아닌 내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딱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기본적인 생활비와 미술재료는 언제나 필요했고 불안정하게 알바를 할바엔 내가 원장이 되는 편이 구미가 당겼다. 물론 나는 엄마한테 월급을 받는 형식으로 일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25살에 교습소 원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덕이었고 자금이 없던 나에겐 빠른 운영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나는 절대 금수저도 아니고 당시 교습소도 대출받아서 시작한 거였다. 엄마는 또 대출을 하여 다른 미술 교습소를 인수했다. 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거겠지만 우리는 당시 돈을 많이 벌어야 했다. 엄마와 내가 같이 학원업을 하면 서로 도울 수 있고 수익도 더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4학년을 복학하면서 나는 미술 교습소 원장님이 되었다. 그땐 몰랐다. 눈물이 마르지 않은 나날들의 시작이었음을...
초반엔 그저 아이들 수업에 집중했다. 해왔던 일이고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대로 수업을 짜면서 진행하니 재밌었다. 오늘은 어떤 수업을 할지 기대되는 날도 있었고 안정적으로 원생을 유지했다. 하지만 내가 못하는 게 있었다. 학부모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대리 원장도 해봤으니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학원에 픽업하러 오는 학부모를 마주할 때 묘한 긴장감이 흘렀고 정말 1분이 10분같이 느껴질 정도로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극 내향형이라 먼저 상대방에게 살갑게 대하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 수업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학부모 관리도 원생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렇게 나의 빈틈이 보이면서 하나 둘 원생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만둔다고 말하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 라며 그런가 보다 했다. 뭐 애들은 또 들어오겠지. 별 걱정을 안 한 것 같다. 그러다가 정말로 이상한 소문이 나서 순식간에 나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졌다. 원인도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몰랐다. 빠지고 또 빠지고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시작됐다. 50명대에서 10명대까지 줄어든 최악의 상황에서 나의 무능력을 체감하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정말 많이 울었다.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괜히 나대 가지고
학원을 한다고 했을까. 바보 같다. 한심하다.
나는 수업을 잘하는 교육가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돈을 잘 버는 사업가는 될 수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의 마음을 홀리는 영업력도 없었고, 말을 화려하게 할 수 있는 화술도 없었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먼저 내가 가장 자신이 없고 못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학부모 관리, 상담 및 마케팅 관리, 원생 관리 등
그 이후로 학원 운영과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서 읽어보았다. 아니면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얻기도 했다. 재정적으로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니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회복해보자,
딱 30명까지 모아보자는 마음으로 전투적으로 노력했다. 정말로 간절했다.
일단 기존에 다니고 있는 원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프로그램 연구에 몰두는 기본이었고 특별한 날엔 과할 정도로 재밌는 활동을 했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도 일일이 연락을 돌려 상담을 진행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전화만 하면 머리가 하얘졌기 때문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적어서 통화했다. 아이에 대한 사소한 부분까지 하나라도 더 챙기고 진심으로 다가갔다. 일부러 한번 더 전화하고 유난스럽게 어찌 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학부모에게 다가갔다.
이거였다. 이게 학부모 관리였다. 한 번도 학부모의 니즈를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가 그제야 깨달은 거였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말해야 하는 거구나. 그들이 원하는 게 이런 거구나. 이게 사업의 가장 핵심 요소였다. 상대가 원하는걸 내가 채워줘야 하는 것. 그건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깨달으니 홍보와 마케팅도 감을 잡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습소를 어필할 수 있을까? 미술학원을 다니고자 하는 학부모의 마음은 뭘까? 아이들의 마음은 뭘까? 그걸 파악하면서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들었고 블로그,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전화 상담이 부담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1:1 오픈 카톡방도 만들었다. 원생을 확보할 수 있는 뭐든 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을 꾸준히 하다 보니 한 명 두 명 늘었고 입소문도 점점 나면서 40명 가까이 회복되었다. 원생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는 한 발짝 성장했다.
망해가는 교습소를 다시 살리면서 많은 걸 배웠다. 아마 내가 교습소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사업에 '사'자도 모르고 그저 꿈속에 사는 그림쟁이가 되었을 거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 속에 살던 나였는데 나의 사업을 해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고민들을 하게 되었고 그 뜻이 확장되어 교습소 운영 노하우 전자책과 나만의 아동미술 브랜드를 기획하고 있다. 상대방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나만의 차별화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사업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며 꿈을 키우게 되었다.
나는 목표를 더 확장하여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해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난 그림으로 먹고살고 싶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뿌연 안갯속을 지나가다 보면 언젠간 도착하지 않을까?라는 전형적인 인프피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1인이었다.
하지만 계획이 선명해지면서 내가 할 일들이 분명해졌다. 예민 보스에 상처 잘 받는 인프피의 땡깡을 콘텐츠로 (유튜브 애니메이션) 승화시켰고, 남들이 이상하다고 한 내 그림을 아동미술 프로그램 자료로 승화시켰다. 학원 운영은 절대로 생각해보지 못한 나의 가능성을 끄집어낸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최근 몇 년까지 나는 막연하게 성공하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다 라며 살던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계속 이렇게 살다 간 이도 저도 안된 채로 나이만 먹어가겠구나를 깨달았다. 제대로 된 방향성만 잡는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기회(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걸 하루빨리 깨우쳐야 한다. 지금 시대엔 열심히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걸 영리하게 끄집어내서 사는 게 이득이라는 걸. 그리고 나같이 현실감이 떨어지는 인프피도 해내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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