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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30.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던 순례길 (5월 4일 목)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아스토르가 Astorga ~ 폰세바돈 Foncebadon     

  어제 머물렀던 알베르게(Albergue my way)도 대다수 사립 알베르게처럼 새벽 출발자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우리는 또 세탁실에 서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어제 못 본 아스토르가 대성당을 보았다. 조명을 받으며 서 있는 성당은 아름다웠고, 동화책에 나오는 성처럼 보였다. 

  마을을 벗어났는데 어슴푸레한 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구름이 보였다. 늑대가 울부짖는 영화 한 장면이 연상되며 기분이 오싹했다. 자세히 보니, 보름달 빛을 반사하고 있는 구름이었다. 새벽에 뜬 보름달과 보름달을 반사하며 빛이 나는 구름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 낯설고 신비했다. 잠시 후 보름달은 빠르게 서쪽으로 사라졌다. 

  보름달이 지자, 조금 후 동쪽에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동쪽 하늘에 있는 구름이 점점 붉게 물들자, 하늘 전체가 예술 작품이 되었다. 해가 높아질수록 하늘은 파랗게 보였고 낮게 깔려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던 구름은 붉은색에서 점점 회색과 흰색으로 바뀌었다.     


  한동안 메세타 고원 평지를 걸었는데 오늘은 산을 올랐다. 초반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는데 하늘이 흐려지더니 바람까지 불었다. 덕분에 힘이 덜 들었다.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모습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멋있다. 구름과 하늘을 바라보는데 왜 그런지 가슴이 뭉클했다. 산은 계속되었고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250km 남았다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두 발로 많이도 걸었다.   

구름, 햇빛, 산, 하늘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환상적이며 아름다웠다.

  목적지 폰세바돈에 거의 다 왔을 때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비였지만 흠뻑 젖기 전에 예약한 알베르게 (Albergue Monte Irago)에 도착했다. 체크인 후 샤워하고 정리를 마쳤을 즈음 비가 그쳤고, 근처 피자 가게로 갔다. 

  피자 가게에는 이무송 씨와 우리가 순례길에서 자주 만났던 재미교포 아저씨, 은퇴한 부부가 이미 와있었다. 우리도 피자를 주문하고 자연스레 합석했다. 그동안 걸으면서 자주 마주쳤고 같은 알베르게에서 지내기도 했던 순례자들이다. 

  재미교포 아저씨는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70대이고, 은퇴한 부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7월 초까지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연예인 이무송 씨는 일반 순례자들과 같이 걷고, 알베르게에서 함께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유명한 연예인은 순례길을 걸어도 독방을 쓰거나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과 함께 다니는 등 일반인과 다르리라 생각했던 편견이 깨졌다.      


  그동안 우리 생체 리듬에 맞지 않는 저녁 식사 시간 때문에 알베르게의 순례자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숙박하려면 알베르게의 저녁 식사를 꼭 사 먹어야 했다. 체크인할 때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밖으로 나가기 어렵고, 작은 동네라 다른 알베르게를 찾기도 힘들고, 식당도 없어 보여 그냥 숙박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곡물과 채소가 들어있는 국과 닭고기가 스쳐 간 밥이다. 식사 시간은 늦지만 소화되기 쉬운 음식이라 괜찮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늘 결심만 하지만)

  식사하는 동안 여주인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노래 부르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순례자들이 식사를 마치자, 여주인은 단순한 돌림 노래를 가르쳤고 순례자들은 즉석에서 배운 노래를 다 같이 불렀다. 반복해서 부르자 곡조가 익숙해졌다. 팀별 경쟁이 붙자, 순례자들은 손뼉 치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흥이 났다.

  남편과 나는 평소 조용히 지내며 노래방도 안 가고 유흥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이라 그런 상황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래도 함께 신나게 노래 불렀다. 목청 높여 노래하며 분위기가 뜨거워지니 즐거웠다. 순례길 중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주인의 아코디언 연주는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고 다 함께 부르는 돌림 노래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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