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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40.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 (5월 14일 일)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오 페드로우소 O Pedrouzo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알베르게는 아침부터 들뜬 분위기다. 20km만 걸으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걸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안달이 났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순례자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보이기 시작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더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흐리던 날씨는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맑아지며 해가 났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들어섰다. 순례자들은 대성당을 향해 또 부지런히 걸었다. 여기저기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있고, 순례자, 관광객이 뒤엉켜 거리는 꽉 찼다.  

    

  우리가 해냈다며 남편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리를 메운 사람들을 헤치며 계속 걸어가니 터널 같은 곳이 나왔고 전통 복장을 한 사람이 악기를 불고 있었다.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거칠고 큰 소리였다. 

  그 악기 소리를 듣는데 뭔지 모를 뭉클함이 밀려왔고 그 순간 눈앞에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이었다. 광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제야 800km를 걸어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다가왔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 나눴던 성당 단체팀(우리에게 불똥 떨어졌던 트렁크의 주인들)을 만났다. 수고했다며 껴안고 서로 완주를 축하했다. 기쁨을 함께 나누니 더 커졌다. 

  도착한 순례자들은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며 앉거나, 눕거나, 서거나 제각각 자신의 방식대로 기쁨과 감동을 만끽했다. 우리 부부도 바닥에 앉아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눕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감격을 나눴다.              

대성당 앞 광장에 주저앉아 800km 대장정을 마무리한 감격을 만끽하며 사진을 찍는 남편


  정신을 차리고 순례자 사무실로 가서 완주증과 거리 증명서를 받았다. 내 이름이 인쇄된 문서를 보니 800(799) km를 걸었다는 사실이 더 다가왔다. 오늘이 인천 공항 떠난 지 40일째 되는 날이다. 

  배가 고팠다. 근처 식당에서 스페인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빠에야와 포도주를 주문했다. 해물이 제대로 들어간 빠에야는 그동안 먹었던 음식에 비해 다소 비쌌지만, 오늘 같은 날은 기분을 내는 게 당연하다. 오늘 먹은 빠에야는 지금까지 먹은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포도주를 마시며, 40일간 남편과 함께하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뒤풀이했다. 대화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늘까지는 순례자로서 알베르게에 머물고 내일부터는 호텔로 옮겨 여행자처럼 지내기로 했다.     


  저녁에 대성당 앞으로 다시 나갔다. 성당 주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그때 도착하는 순례자들도 있다. 근처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기념품점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산티아고 순례길 패치도 샀다.    

  

  800km를 무사히 완주해서 흥분도 되고, 기쁘고, 뿌듯하고, 성취감도 느껴지지만, 완주한 것과 상관없이 순례길은 행복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책임감, 의무감에서 벗어나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여러 천사를 만나 순례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도움, 배려, 호의를 받았다. 오늘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보내는 느긋한 첫날밤이다.    

  

대성당 근처는 어느 때든 관광객과 순례자로 북적였고 감동과 감격의 분위기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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