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르미 Oct 28. 2022

영화 에세이, <브로커>를 보고 나서

“연약해도 어쩌겠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 가장 좋아하는 감독님의 신작


거의 2년 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님이 한국에서 새 작품을 촬영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다렸다. 캐스팅된 배우분들을 보면서 내 멋대로 상상해보고, 조합해보기도 했다. 작품이 올해 개봉 예정이란 소식과 함께 당연하게 칸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이번 영화 <브로커>로 송강호 배우님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는 송강호 배우님의 연기력이 칸 영화제에서 인정받는다는 게, 커다란 기쁨이기도 했지만 내심 불만도 있었다. '이제야..?'  개인적으로 사실 이번 영화 <브로커>보다 <기생충>에서의 송강호 배우님의 연기가  "시상식들의 구미"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기생충> 때, 상을 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이번 수상에 담긴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아무튼 6월 8일로 개봉일자가 확정됐고, 누구보다 빠르게 개봉일 당일 첫 타임 조조영화로 보고 왔다.


# 영상미술의 침착성


우선 고레에다 감독님의 영화적 이미지가 한국을 배경으로 재현됐다는 점에서 감독님만의 영상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눈이 굉장히 즐거웠다. 보면서도 설렜고, 나도 모르게 눈이 떨렸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엄청 세심한 이미지들이 마음을 진동시키는데, 그 진동이 끝나는 곳에서 전해지는 침착함이 날 침잠시킨다.


# 비교를 멈추기엔, 내 애정이 너무 강렬해


아무래도 항상 모든 감독들의 신작이 나오면 전작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고레에다 감독님의 전작이 워낙 센세이셔널했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더 기대감이 투영되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봤다. 개인적 취향의 완전체에 가까운 <환상의 빛>은 잠시 논외로 두고, <아무도 모른다>나 <어느 가족>에 닿기엔 이번 <브로커>의 틈은 조금 깊었다. <어느 가족>의 스토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쓰신 작품 같다는 느낌도 짙었다.


그럼에도 고레에다 감독님의 디렉팅이 여실히 잘 드러나는 부분인 '아역배우와의 케미스트리'는 <아무도 모른다> 속의 케미스트리를 떠오르게 했다. 아역배우의 연기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나왔던 형 코이치와 동생 류노스케가 자연스레 연상됐고, 특히 동생 류노스케랑 여러 방면으로 겹쳐 보였다. 이번 <브로커>를 보면서 느꼈다. 천진난만과 순수를 이길 연기는 없는 게 이번 계기로써 확실시되었다. 연기임을 알지만, 연기임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특별함이 담겨있다.


어떤 부분이 아쉬웠을까, 굳이 나 스스로에게 따져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님의 작품에 딴지를 걸기 위해서는 적어도 더 끈질기게 추궁해야 한다는 나의 '덕질 소명감'때문이다.


# 스토리의 부지기수성


사실 고레에다 감독님의 전작들은 보통 스토리가 꽤 단일한 편이다. 리얼리티에 누구보다 날이 선 감독이라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는 스토리가 단일하다는 말은, 스토리의 진폭이 그리 크진 않다는 말이다. 그 말은 즉슨, 스토리가 아닌 또 다른 리얼리티로써 존재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님의 의지와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작품은 스토리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기보다 관객이 떠다니는 먼지가 되어 한 사건을 관찰하는 느낌이랄까. 이는 감독님의 장점이자 감독님 특유의 연출의 힘이다. 스토리가 아닌 또 다른 리얼리티로써 존재하는 영화, 나도 모르게 내 기억 속에서 사건화 되는 또 다른 사건들.


아무튼 그러다 보니 감독님이 여러 가지 인물의 스토리를 융합하려고 하실 때 단점이 드러난다. 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런 단점이 잘 가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영화 <브로커>는 '가족'이란 공동체로 스토리를 묶기엔 인물의 축들이 다 따로따로였다. 객관적으로 '굳이'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찾을 수 있다. '굳이' 가족으로 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가족이 되어야 하나? '굳이' 공통점이 만들어져야 하나?라는 질문에서 이 영화의 단점이 두드러진다. 이는 영화 <어느 가족>이 이러한 단점을 완벽히 가려버렸기에 유독 더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는 '집'과 '할머니'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영화 <브로커>에서도 똑같은 역할을 하길 바랬던 '봉고차'와 '상현(송강호)'은 조금은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느껴졌다.


소영이와 아기를 중심축으로 이해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감독님의 연출의 시작은 항상 '장소'에 뿌리 둔다. 그렇기에 '봉고차'는 감독님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심에서 절대 멀어질 수 없다. 또한, 감독님의 작품에서 '연장자'와 '연소자'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의미전달자이다. 즉 굳이 굳이 중심축을 옮겨도 '봉고차', '상현', '아기', 이 세 가지로 추려진다. 개인적인 사견일 뿐이지만, 이 세 가지로부터 벗어날 순 없다고 본다.


결론을 말하자면, 감독님은 '스토리의 부지기수성'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조금은 부족하시다. 보통은 소름 돋는 관찰력으로 이를 메꾸시는데 타국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유독 두드러진 것 같다.


#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관찰력


덕후의 신념으로 억지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를 찾아봤다. 즉 한 번 '쉴드'를 쳐볼까 한다. 헿. 일단 감독님은 한국의 정서나 배경을 잘 모르신다. 당연한 사실이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내가 한국인이다 보니 프랑스 상황은 어찌 알 수 없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는 느껴져도 입 다물고 있었는데, <브로커>가 나온 순간 드디어 조금은 떠들어볼 수 있게 됐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최대한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성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특색이 없거나 혹은 의미가 없는 경우로 변질된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에 의미가 없다니, 거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라고 내 덕후 세포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그래도 당당히 외쳐본다. 의미가 없다는 말은, 쓸모 있는 의미가 없단 말이라구요! 의미에 쓸모를 찾다니 어이상실이겠지만, 그게 영화판에서는 당연한 거다. 메롱.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가서 봉준호 감독님과 잠깐 비교를 해보자. 봉준호 감독님이 국내에서 찍은 영화랑 해외에서 찍은 영화를 보면, 봉준호 감독님은 상상력 자체가 워낙 뛰어나시기에 그 나라에 대해서 모른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님은 상상력 자체가 뛰어나시진 않다. 봉준호 감독님의 장점이 '상상력'이라면, 고레에다 감독님의 장점은 '관찰력'이다. 이 '관찰력'이 극대화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감독님이 살고 있는 '일본'이라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분에게는 옆동네도 멀다.


잘 모르면, 당연히 관찰력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대사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일본어는 약간 자체적인 오글거림도 동화처럼 소화하는 그런 언어라서 전혀 문제없는데, 우리말은 오글거림보단 정통 낭만파라서 그런지 귀에 어긋나는 대사들이 조금 있었다. 아아주 쪼오금. 당연히 좋았던 대사도 있었다. “버린 건, 버린 거야” 라던가, “아이가 팔리길 가장 바라는 사람이 나였나 봐”라던가.


#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


배우의 캐스팅은 좋았다. 스토리 자체가 특별히 긴장감 있지도 않아서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기에 편했다. 사실 긴장감을 주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스토리지만, 감독님이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하지 않으신 것 같긴 했다. 감정의 서사를 따라가고자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실패하셔..엇... 읍읍... 아무튼 그러다 보니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들의 존재감이 유독 중요했고, 그에 걸맞게 더 빛났다. 특히 송강호 배우님은 진짜 어나더 레에에에에벨, 연기 조오오오온나 잘하셔서 마지막쯤 딸이랑 대화하는 장면에서의 감정선은 보는 내가 다 심장 아파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이지은 배우님의 캐스팅도 정말이지.. 겉은 가시로 무장해도 또렷이 뜬 눈에서 보이는 두려움과 연약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는 사실 잘 모르겠다. 감독님과 배우 간의 케미스트리는 보이는데,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는 사실 보이지 않는다. 내 시력이 거지인가.. 내 마음이 마름모인가.. 아니면 내 취향이 사실은 무지개가 아닌 블랙인가..?


# 결론, 그럼에도 좋아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좋았던 부분도 분명했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영상미를 한국 배경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도 벅차도록 좋았고 행복했다. 감독님이 장면을 잡는 구도도 좋고, 빛이 쓰이는 방식도 좋고, 가끔은 관찰형 가끔은 방관형 가끔은 실제형으로 스스로 분화할 수 있는 연출력도 좋다. 특별할 건 없어 보여도 파고들면 내 눈에는 다 이유가 보이고, 당위성이 보이고, 대단함이 보인다. 감독님 자신도 아마 사실 잘 모르시는 부분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의미와 그림을 읽는다.

가장 좋았던 건, 동수(강동원)가 친구랑 캔으로 발야구? 같은 게임을 하던 장면에서의 빛의 조도와 그 안에서 어우러지는 색감이다.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동수(강동원)가 쫓아온 심부름꾼? 사채업자?를 기절시키고 상현(송강호)이와 함께 들어 옮기는 장면. 그리고 동수(강동원)랑 소영(이지은)이가 보육원에서 창문 밖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이다. 만약 내 상상대로면, 사채업자를 들어 옮기는 과정을 보여주기보다 사채업자에게 말을 걸었을 것 같다. 상현이랑 동수가 같이. 그리고 소영이가 동수랑 대화했던 장면에서 함께 창문 밖을 바라본다기보다 소영이는 창문을 등진 채로 있고, 동수는 창문 사이드 옆에서 소영이를 바라보고, 그 둘의 시선이 창 밖으로 향하진 않게. 그리고 서로 닿지도 않게. 시선이 향하지 않는 곳에서 우산과 아이들과 색채가 숨 쉬게. 방황하는 자아들의 만남에서 시선이 닿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어색한 안정감은 없으니만 못 하다. 의외로 가장 눈에 띄었던 장면은 송새벽 배우님의 호루라기였다. 단역으로 출연하셨던 송새벽 배우님, 짧았지만 진짜 궁극의 연기력을 보았다.


# 가재 뒷걸음이나, 게 옆 걸음이나


나에게 고레에다 감독님의 모든 작품은 사실 존재 자체로 당위성이 있다. 난 감독님의 덕후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독 더 좋아하고, 더 많이 보게 되는 작품들이 있지만, '가재 뒷걸음이나, 게 옆 걸음이나' 별반 차이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감독님의 덕후이기 때문이다. ㅎㅎㅎㅎ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고레에다 감독님은 일본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실 때 아무래도 장점이 가장 극대화되는 것 같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분에게는 옆 동네도 멀다. 그래도 사랑합니다 감독님, 간장게장 드시러 자주자주 오시구 다음 작품도 존버 피스하겠습니다 열일아좌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