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일어난 변화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간

by 제스민

'야호, 드디어 퇴원이라니'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 좋은 곳이었나?

시원하게 분사되는 샤워기, 강한 바람이 나오는 드라이기,

푹신한 침대와 베개까지.

모든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유리병에 담긴 화장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시설이 괜찮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집만 할까,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치료의 시작

퇴원하자마자 또 다른 치료가 시작되었다.

바로 한의원에서의 침치료였다.

입원 중에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던 안색이 바깥으로 나오니 창백해 보였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미리 한약과 특수 침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다.

침치료는 사실 내게 익숙한 치료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을 때, 긴장으로 어깨가 뭉치고 두통이 있을 때면 침을 맞곤 했다.

침을 맞고 나면 한결 편안해졌다.

늘 다니는 한의원의 원장님이 중풍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이라 침을 더 정확하게 놓는다고도 했다.

전에 다른 한의원에서 받았을 때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효과가 있었다.

한약도 몸에 잘 맞았다. 약을 처방받고 한 달 동안 꾸준히 복용하면 기력이 전보다 회복되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받아온 한의원의 도움을 다시 받게 되었다.


외래 진료와 심리 치료

퇴원 후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외래진료를 받았다.

입원했던 병원은 주치의마다 진료 요일과 시간이 다 달라서 맞춰 가야 했다.

외래진료 첫날, 주치의 선생님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구급차를 타고 도착해서 방문했던 입원 전 기억과 사뭇 달라서, 같은 곳이 맞나 싶었다.

진료는 간단하게 끝났고,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약을 잘 복용하면서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하셨다.

방문 간격은 차츰 늘려가자고 하시면서.

진료를 마친 후에는 심리치료를 받았다.

퇴원하기 한 달 전부터,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심리 치료는 퇴원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처음엔 어색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불편했던 심리 치료는

어느새 내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익숙한 치료가 되었다.

임상심리사 선생님은 내가 말을 잘 못해도 가만히 들어주었고, 내 이야기 속에서 핵심을 짚어내며 생각의 전환점을 제안해 주셨다.

때로는 횡설수설 떠들어도, 말을 더듬어도, 부정적인 말을 해도 괜찮았다.

심리 치료를 받고 나오면 공기청정기를 튼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나를 위한 투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원을 거닐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작은 여유를 느꼈다.
새로운 옷을 사고 외모를 가꾸는 소소한 변화가 일어났다.


문화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전시회, 영화, 연극, 그리고 부모님과의 소소한 여행..


입원 중 외출·외박할 때마다 부모님과 경치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은 것처럼,

퇴원 후에도 부모님은 주말이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셨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염치없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그저 누리라고 하셨다. 입원하느라 고생했으니 이제는 즐기라고.

정작 더 고생한 건 부모님이었는데 말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을 때, 끝까지 나를 챙기고 신경 써준 사람은 부모님뿐이었다.

늘 나를 압박하고, 자존감을 낮추고, 힘들게 하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임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며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대했던 방식을 후회하고 반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매일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꼈고, 그 이후로는 걱정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계속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권유하셨다.


그래서 평일 예배의 자리에 나아갔다.

입원 중 외박하며 금요예배에 참석했을 때, 참 은혜로웠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입원으로 인해 매번 갈 수 없음에 아쉬웠던 것도.

그 아쉬웠던 마음을 기억하며 나아가고자 했다.

예배 중간에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이유 없이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시험에 드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고자 노력했다.

가기 전에는 가기 싫다가도, 예배를 다녀오면 다녀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한 조증의 잔재

하지만 퇴원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생각지 못한 잔재, 스토킹 신고였다.

내 기억에는 스토킹 신고까지 할 정도로 심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가해자 신분이 되어 있었다.

곰곰이 떠올려보니 문자를 많이 보냈고, 입원하기 전에 근무지 근처에 한번 찾아갔던 것이 기억이 났다.

당시는 집착이 아니라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집착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기소유예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막상 결과는 벌금형을 받게 되어 부랴부랴 법적인 절차를 밟게 되었다.

변호사를 통해, 조사받는 과정에서 중간에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하여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죄를 인정하지만 질병으로 인한 우발적 행동이었음"을 최대한 호소하며, 법적 처벌을 줄이기 위한 과정을 밟아야 했다.

조증기의 나는 항상 확신에 차 있었고, 내가 하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의 확신과 선택에는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증기의 내가 벌인 행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치료를 받고 괜찮아진 나 자신뿐 아니라 부모님도 포함되었다.

이번 일로 죄 없는 부모님까지 반성문을 쓰게 되어 마음이 안 좋았다.

조증기의 자신감이 걷히고 조증이 헝클어뜨린 현실을 마주했다.


관계의 회복과 새 출발

조증 당시 인스타그램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 그대로를 쏟아냈기에,

지인들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우발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탈퇴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카톡을 지우셨다고 했다.

내게 상처만 될 것 같아서 지웠다며, 연락처만 따로 모은 자료를 주셨다.

입원 내내 전적인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셨기에 부모님의 결정에 말없이 따랐다.

부모님은 나의 정신건강이 다시 나빠지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고, 그럴 만한 것들을 모두 원천차단하고 싶어하셨다.

그만큼 나의 입원은 부모님께도 타격이 큰 사건이었다.

여러 관계가 반자발적으로 정리되었다.

조증인 모습을 못 본 지인과 만남을 가졌고, 되도록 거짓말은 하지 않고자 노력하며 근황을 얘기했다.

누군가에게는 입원까지 털어놓았고, 누군가에게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 쉬었다고만 말했다.

좋은 사람들은 변함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네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괜찮아"

그런 따뜻한 말이 고마웠다.


입원 중 알게 된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만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병원에서 볼 때보다 더 밝고 생기 있어 보였다.

좋아하는 예쁜 옷을 입고 만나 맛있는 것을 함께 먹었고,

편안한 옷을 입고 조용한 카페에서 만나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입원을 함께 한 경험으로 인해 대화는 깊고, 안정감 있었다.

여전히 병의 잔재가 있는 상태를 묵묵히 견뎌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질병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존재가 든든하게 여겨졌다.


퇴원,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삶

부모님께서는 푹 쉬고 지금을 그냥 누리라고 말씀하셨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아직 회복 중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부정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이것저것 시도하며

조금씩 조금씩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입원했을 때에는 퇴원하면 힘든 것도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퇴원하면 마냥 편하게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종종 지난 입원생활이 내게 준 이점이 떠오르곤 했다. 차라리 입원이 더 나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이 시간도 지나가고 나면 괜찮았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므로.

나쁘기만 한 것도, 좋기만 한 것도 없다.


치료의 시간은 끝났고

이제 재활의 시간이 시작될 차례가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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