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 대한 나의 생각, 이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균열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믿었던 관계에서의 배신,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질병이나 상실.
그런 일들을 마주하면 우리 내면은 평온을 잃고 한동안 길을 잃는다.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론이 말하는 수용의 다섯 단계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는 말기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관찰하여, 인간이 상실을 수용하는 다섯 단계를 정리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그리고 수용. 이 이정표는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단, 이 모델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순서대로 거쳐야 하는 규범이 아니다. 치유를 돕는 도구일 뿐, 실제 우리의 삶은 이처럼 매끄러운 계단을 오르듯 진행되지 않는다.
수용, 그 이후에 찾아오는 불청객
문제는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생각이 모두 정리되었다고 믿는 순간에 발생한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과거의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드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나는 아직 멀었나 봐"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다시 절망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마침표의 재정의: '삭제'가 아닌 '정리'
우리는 가끔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을 기억의 삭제와 동일시한다. 그 사건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야만 비로소 치유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마침표는 기억을 지우는 삭제가 아니라, 내면의 질서를 잡는 정리를 의미한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은 그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졌음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 일이 나를 휘두르는 힘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그 생각이 올라오면 일상을 집어삼키는 태풍 같았겠지만, 정리가 된 후에는 그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나 먼 곳에서 들리는 희미한 음악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되풀이 앞에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대신 "아, 내가 또 깊이 사색을 하고 있구나.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났지"라고 스스로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갈무리와 나를 지키는 예방 주사
같은 생각이 다시 올라오는 것은 그 일을 완전히 갈무리해서 내면의 서랍에 넣기 위한 뇌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생각이 되살아날 때마다 우리의 통찰은 더 정교해진다. 처음에는 거친 분노였던 것이 나중에는 텅 빈 허탈함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그땐 그랬지"라는 담담한 한 구절의 회상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러니 불쑥 찾아오는 생각에 겁먹지 말자. 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나중에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나를 굳건히 지켜줄 강력한 예방 주사가 되어줄 것이다.
다시 찾아온 해묵은 생각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보자.
"어, 또 왔니? 오랜만이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제 나를 괴롭힐 수 없어.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사느라 아주 바쁘거든."
그렇게 인사하고, 다시 오늘로 돌아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