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의 미국 적응기 (1)
이 글은 순전히 남편의 관점으로 쓴 글이니 와이프입장에서는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와이프는 한국에서 공무원이었다. 와이프는 나를 따라 미국에 왔고 처음엔 1~2년 살다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어찌어찌하다가 보니 우리는 미국에 남기로 하였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커리어를 위해 도전하고 있어 그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와이프가 미국에 온 지 2년이 좀 넘었고 처음 몇 달은 집안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 외로는 유튜브 같은 걸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와이프가 온 것은 2021년 봄이었는데 보스턴의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할 때었고 이때 마침 차를 사서 둘이서 보스턴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잘 갔었던 거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온 지 삼사 개월이 지나자 와이프를 일하지 않는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았고 나는 뭔가 배워보라고 했던 거 같다. 그쯤 해서 미국살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서 한번 남아볼까 생각도 들었었고 영주권도 알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와이프에서 처음 추천했던 것은 통계학을 배워보라는 것이었다. 문과 출신으로 수학이 약했었다는 와이프에서 통계학을 추천한 건 일자리 잡기가 수월해서였다. 비원어민으로서 기술 관련 전공을 안 하면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는 것을 여기저기서 들어봤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된 인강을 이삼주 듣더니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나는 Coursera를 알려줬는데 이것저것 보더니 UX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디자인이긴 하지만 알아보니 이 분야는 소프트웨어 붐과 함께 시장이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가 2021년 가을쯤이었나 와이프는 Coursera 강의를 공시생처럼 듣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분야가 잘 맞는지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 때문에 미국에 온 와이프가 똑똑한 머리를 썩히고 나만 바라보다가 이십 년 뒤에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11월쯤이었나 난 와이프한테 대학원을 지원해 보자고 일단 토플 점수를 내보라고 했다. 마침 코로나 때문이었나 전공 때문이었나 UX 석사과정은 대부분 GRE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었다. 와이프는 좀 급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난 어차피 지원하고 떨어지면 내년에 하면 된다고 연습 삼아해 보라 했다. 사실은 내가 봤을 땐 독려, 와이프가 봤을 땐 재촉일지도 모른다.
알아보니 많은 학교의 지원 마감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래도 갈만한 대학교 서너 개는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2월 미국 사람들은 보통 가족들을 만나며 긴 휴식을 갖는 시기인데 와이프는 토플 점수가 나오자마자 서류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국애서 보면 시험점수가 잘 나온다는데 그것 때문이었나 토플은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와 생각했던 대학들을 지원할 수 있었다.
SOP를 잘 쓰는 게 중요한 거 같았는데 나도 나름 틈틈이 코멘트를 주긴 했다. 내가 봤을 땐 글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코로나 시절 선생님으로서 경험이나 해외봉사활동에서의 리더십 내용 등을 녹여내 지루하지 않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도 안 붙을 거 같다고 투정 부렸던 것 같다.
지원 준비 시작을 11월 중순부터 했어서 추천서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 학부 교수님들에게 졸업 후 몇 년 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갑자기 연락드려서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초안을 작성에서 첨부드리긴 했다. 포트폴리오도 냈어야 했는데 Coursera에서 들으면서 만들었던 프로젝트와 봉사활동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접해보일 수 있지만 타전공자로서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끝내 2022년 1월 초까지였나 4개 대학원에 지원을 하였고, 2022년 봄 그중 3개를 합격하였다. 나도 사실 반신반의 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안될 것 같다고 말할 수 없어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준 건 맞다. 와이프가 자신 없어하던 모습을 이해하지만 내가 본 미국에서의 석사과정은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커리어 체인지등을 위해서 큰돈을 쓰면서 하기 때문에 합격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의 살인적인 학부 학비로 미국 학생들은 대학원도 자비로 다녀야 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 누구나 아는 그런 탑스쿨들은 전 세계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예외일 것 같긴 하다. 우리가 대학원을 알아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학교의 네임벨류 보단 그곳을 졸업해서 미국에서 취업할 가능성이 있나였다.
이렇게 와이프는 2022년 9월부터 남편 따라온 와이프의 꼬리표를 떼고 “유학생”으로서 지내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고른 학교는 보스턴 시내에 있고 내가 포닥을 하던 곳과 차로 이십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평일 낮에는 트래픽 때문에 갈엄두를 내진 않았고 내 출근길에 지하철역에 내려주었다. 학교 생활은 처음엔 떨려했지만 내가 항상 쫄지 말고 돈 내고 다니는 거니깐 당당하게 말하라고 말했었는데 금방 적응해서 잘 다녔던 것 같다. 워낙 인도, 중국인들 아시아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와이프가 말하길 처음 며칠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