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딱 한번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평소에 사주나 신점 등은 믿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편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친구 손에 못 이기는 척 점집에 이끌렸다. 그곳에서 만난 무섭게 생긴 아기동자는 나를 꿰뚫어 보는 듯 수많은 말을 내뱉었다. 그중에서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다.
"언니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가 1순위인 사람이야"
처음에는 ‘그럼 내가 중요하지,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 하고 넘겼지만, 이제는 그 말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이 된 배우자가 1순위가 되기도 한다. 평생의 연이 된 배우자를 따라 살던 곳을 떠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아이를 가지면 '나'는 더 쉽게 지워진다. 아이를 중심으로 일상이 돌아가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그 아이는 꽤 오랜 시간 굳건한 1순위를 지켜낸다. 그게 언뜻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의 행복은 그곳에만 있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해도 남편의 승진보다 내가 만들어 낸 아주 작은 성과가 더 짜릿했고, 남편의 실직보다 발전 없는 내 모습이 더 불안했다. 아이를 갖기도 전부터 남편에게 항상 했던 말은 "나는 애엄마로 안 끝날 거야, 돌 지나자마자 바로 내 일 시작할 거야."였다. 누가 애엄마로 끝나라고 사주를 하고, 일을 하지 말라고 뜯어말린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 애틋한 내 인생이 누군가의 엄마로 그냥 끝나버릴까 봐 스스로 무척이나 두려웠던 것 같다.
20대에는 '아나운서'라는 선명한 트랙을 따라 끝없이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모호해졌다. 이쪽으로 가도, 저쪽으로 가도 낭떠러지일 것 같은 미칠듯한 불안함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내 미래를 고민했다. 유불리가 아닌 내 마음의 소리는 무엇인지, 침묵 속에서 고요히 불안과 싸워댔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이 사이에서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 듯했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내내 표류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다행히 어딘가 뿌리를 내린 듯하다.
터널을 통과하자 괴롭기만 했던 지난 시간이 우습게도 한 겹 미화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쳤던 나를 토닥여줄 여유도 생겼다. 이것이 내가 다시 글을 쓰고자 노트북을 꺼낸 이유가 되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그 평범함 속에 건너온 시간 안에서 깨달은 것들과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마다 자신만의 행복 한 줌씩은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와 위안을 건네고 싶다. 내가 글을 통해 그렇게 살아갈 힘을 얻었듯이 말이다. 지금부터는 어떤 미완의 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