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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25. 2021

자취생의 밥

아 기숙사생이던 시절이여



  나 이래보아도 좀 어리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 청산 시기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취는 모든 모험의 시작이다. 맨날 부챗살이나 대패 하나 사다가 굽굽 구워 덮밥 해먹고 계란 톡 까서 굴소스에 볶아 먹는다.


  왜 부챗살, 대패인지 아는가? 얇아서 굽기가 쉽다. 요리 못 하는 요알못은 돼지고기를 사면 안 된다. 시뻘겋게 레어 초레어로 먹다가 식중독에 걸릴지도!


  그래도 내가 살림력이 좀 있는 부분은 대파는 사다가 동그랗게 하나 길다랗게 하나 썰어서 얼려두고 쓸 때마다 꺼내 파기름을 낸다. 청소하는 것도 좋아해서 쓰레기 처리나 음식물 쓰레기에 연연하지 않고 바로바로 버리는 편. 이런 나, 좀 자랑스러워요.


  자취의 밥은 대충 이렇게 굴러간다. 가끔 백종원 유튜브를 보고 꽂혀 순두부 찌개를 끓여도  조절에 실패해   먹고  버려버리고, 엄마가 보내준 진미채, 양념깻잎 물릴 때까지 밥에 올려먹다가 ‘이젠 반찬가게에서 사먹을게 엄마하고 우는 소리나 한다.



  

  아 과일이 제일 큰 문제다. 기숙사생일 때는 과일은 꿈도 못 꿔서 가끔 마트 들려다 음식물 쓰레기 안 나오는 체리 정도만 사먹었는데 자취는 냉장고가 있잖아요? 수박을 사모으기 시작하는 거예요. 수박 킬러거든요. 근데 이게 껍데기 하나, 씨 하나가 다 버리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샤인 머스캣으로 갈아탔죠. 근데 비싸더라구요? 그래서 값 싼 애플청포도로… 흑흑


  그리고 과일은 양이 많다는 사실을 자취하고야 알았다. 이걸, 어떻게 다 먹지?? 수박 1/3통을 샀는데 너무 많아 썰어 그릇에 담고 밀폐 용기에 담고 냉장고에 또 넣어두고 지금 먹고 이따 먹고… 흑흑




  자취밥의 마무리는 커피. 집에서는 커피 그라인더가 있어서 내려 마시거나 맥심 원두에다 설탕 타서 얼음 자글자글 넣어 마셨는데 자취는 원두 한 통 사서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부터 하고 있다. 집 앞이 카페라 자꾸 들려서 바닐라 카페라떼만 마시고. 돈은 마시는 재미에 퐁퐁 나간다.


  친구가 사놓고 간 편의점 커피,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고 밖에서 커피 사주는 사람 있으면 온 마음을 다 주고 싶어져요. 사랑해요… 들령ㅅ? 사랑한다고!



  내일은 또 뭐 먹을까? 일단 냉장고에 남은 대패부터 다 먹고 생쌀을 쿠쿠에 넣어 고슬고슬 지은 다음 생각해보련다. 냉장고 털이범, 요알못 자취생의 죄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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