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 경제주체 간 불평등

2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 4장. 수출의존과 환율 불평등

by 한재영 신피질

환율, 대기업의 이익과 국민의 희생


1997년, 나는 독일에 주재원으로 있었다. 어느 날 그룹 미래전략실의 한 간부가 찾아와 울먹이며 말했다.

“그룹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불과 반년 만에 900원대에서 1,960원까지 치솟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외환위기가 한국을 집어삼킨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조차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환율 파도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충격을 주지 않았다.



IMF의 교훈: 수출 대기업은 살아남고, 국민은 무너졌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출 비중이 커서, 환율 상승이 곧 원화 매출과 이익 증가로 이어졌다. 달러 매출이 원화로 환산되며 수십 조 원 단위의 추가 이익 효과가 발생했다.


1997년 평균 환율이 900원/달러였지만, 1년 후인 1998년에는 평균 환율이 1500원/달러였다. 불과 1년 만에 50% 이상 환율이 상승했다. 삼성전자 매출 7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으니, 매출 20조 중 약 7~9조 원 정도의 환율 상승효과로 매출이 상승했다. 이 부분은 거의 대부분 이익으로 반영된다.



현대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외 판매대금이 원화로 불어나면서 글로벌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방어할 수 있었다.


반면 내수기업과 중소기업은 달러 수익이 없었다.


빚은 두 배로 불어나고, 원자재 가격은 폭등했으며, 소비 위축까지 겹쳐 줄줄이 도산했다.


국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필품 가격이 치솟고, 30%에 달하는 노동자가 해직되었다. 외환위기는 기업의 혁신 신화가 아니라, 국민의 희생 위에서 수출 대기업이 살아남은 사건이었다.



오늘날의 환율 구조, 여전히 똑같다


시간이 흘러도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에서 1,450원까지 뛰었다. 2020년에 1180원이었던 환율이, 2025년 초에는 1400원을 넘어섰다. 한국 경제가 약화되고, 미국 강달러 영향 탓이다.

- 삼성전자는 환율 상승 덕분에 분기 영업이익이 수천억~조 단위로 늘어났다고 공식 밝히기도 했다.


- 현대차와 기아는 원화 약세 덕분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달러 매출이 원화로 환율 상승만큼 증가하면서,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이익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민과 중소기업의 고통이 있다. 달러로 원자재와 부품을 사야 하는 중소기업은 원가 부담에 시달리고, 국민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전기·가스요금, 기름값, 식료품값이 줄줄이 올라 생활이 팍팍해진다.




중소기업과 국민의 희생, 대기업만의 잔치


한국의 수출 구조는 대기업 중심이다. 중소기업은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조립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 구조에 묶여 있다.


그런데 환율이 인상될 때 대기업은 납품단가에 변동분을 반영해주지 않는다. 결국 환차손을 고스란히 중소기업이 떠안는다.


내가 최근 반도체 유통업에서 일했을 때, 국내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PC 조립업체들은 환율 인상으로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적자가 쌓였다.


매출은 대부분 원화로 발생되기에 환율 상승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했고, 원자재 수입비용만 폭증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기업들은 같은 시기에 환율 효과로 호황을 누렸다.


심지어 현대 자동차에 납품하던 1차 공급자 경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연초 납품가 산정한 후 환율이 급격하게 인상되어, 외자구매 시 원가 상승으로 비용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하지만, 구조상 현대 자동차에게 자재 납품가 인상을 요구할 수 없어, 결국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농수산 식료품, 생활필수품, 의류와 잡화 등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환율 인상은 곧장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된다.


결국 중소기업과 국민이 환율 파도의 희생양이 되고, 대기업만이 호황의 과실을 독식하는 구조적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환율은 거울이다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 구조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IMF 때도, 지금도, 원화 약세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수출 대기업에겐 호재이지만, 국민과 중소기업에겐 고통 그 자체였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위기를 극복한 것은 스스로 극복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대기업은 국민과 중소기업에 도덕적 부채를 지고 있다. 그것을 외면한다면, 한국 경제는 또다시 같은 파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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