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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산행 -경남 합천의 명산

by 신피질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겨져 있던 가야산 산행을 한다.

가야산은 경남 최고봉이다.

불교 삼보중 법보인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있어 신령한 기운이 있을 듯하다.

또 옛 가야국 영산이다. 가야란 소의 옛 말이다.


산악회 버스는 백운동 지구에 주차했다.

만물상 능선으로 올라서 용기골 계곡으로 내려오거나, 거꾸로 용기골 계곡에서 출발해서 만물상 능선으로 내려오는 길이 있는데, 후자가 쉽다.

일몰로 오후 2시까지 중간 지점인 서성재에 도착해야 정상 진입이 허락된다.


늦가을로 나무는 잎이 떨어지고 잔가지가 무성하다. 돌과 바위가 가득한 계곡에 흘러가는 물소리가 서늘하다.

가야산 산길

산죽만이 창처럼 길쭉한 푸른 잎을 활짝 벌리고 짧은 햇빛을 독점하며 산 전체를 조용히 뒤덮고 있었다.

산죽은 무릎 정도로 자라지만 뿌리가 넓게 퍼져 척박한 바위산과 기온이 낮은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발끝에서 산죽의 푸른 잎이 '힘내라'며 조용히 손짓한다.


용기골 등산로는 잘 다듬어진 돌길이다.

평평한 돌이 등산로에 잘 박혀서 맨발이 편하게 반응한다.

돌은 냉기를 머금고 낙엽은 온기를 품었다.

한참을 걸으니 머리는 차갑고 심장은 따뜻해진다.


계곡 길은 물소리가 선명하다. 물이 바위와 돌 사이를 떨어지며 다양한 소리를 낸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 땅에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 수통에서 빠져나가는 소리...

물과 바위가 만드는 멋진 교향악이다.


자연에 온전히 집중하면 시각, 청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집중하면 신비의 세계가 열린다. 계곡물에 발을 담고 가야산 정기를 느낀다.

정상 통제 2 시간 전 12시에 서성재에 도착했다.

서성재에 오르면 대가야 성곽의 흔적이 있고 가야산 정상 부위가 보인다.


가지산처럼 정상에 바위가 가득 있다.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 바위는 거칠고 잘 부서져, 발바닥에 자극이 크다.

하지만 이곳 가야산 바위는 형태를 잘 갖춘 예술 조각 같고 바위의 색조는 수묵화처럼 고요하고 단정하다.

가야산은 조각의 신이 암석과 분재 소나무로 하늘 꼭대기에 놀이 공원을 예쁘게 꾸며 놓은 듯 예술작품 같다. 등산객이 암벽 사이에 설치한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정상을 오른다.



서쪽을 바라보면 거대한 산맥이 굽이친다.

지리산의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이 아스라이 하늘벽을 치고 그 북쪽으로 덕유산 준령이 이어진다.

임진왜란 시 부산과 동래를 점령한 왜구가 곡창지대인 호남을 점령하지 못한 것은 저 높은 산맥 덕택이다.


드디어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에 맨발로 섰다. 칠불봉은 해발 1433미터로 가장 높은 곳이다.

칠불봉은 가야국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왕후 사이에 태어난 7명의 왕자가 이 봉우리에서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생불, 즉 살아있는 부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다. 칠불봉 아래에는 그들이 수행했다는 칠불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가야산에는 불보, 법보, 승보를 모두 보유한 국보 사찰인 해인사가 있고, 이곳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국난을 극복하려고 몽고침입 시, 고려백성들이 고난의 상황에서 부처님께 비는 마음으로 목판을 인쇄하였고,조선 태조때 이곳 해인사로 옮겨져 아직까지 잘 보관되어 있다.


칠불봉에서 상왕봉까지는 200M 거리다. 상왕봉은 우두봉이라고도 불려진다. 생김새가 소의 머리와 같아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상왕봉 바위에는 우물이 있다. 우비정샘이라고 불리는데, 소의 코에서 땀이 나듯 이샘도 물이 늘 고여있다. 우물 옆에 새겨진 한시에 난해한 한자가 가득이다.

조선후기 영남 문인들이 새긴 풍류시란다. 이곳 경치를 무릉도원에 비교한 내용이라고!


하늘 물이라고 하는 데, 인간이 마시기에 탁해 보이는 고인 빗물이다.

신들만이 마실 수 있는 성수인지 모르겠다.


하산길로 만물상 능선을 탔다.

남쪽 금강산이라는 이름에 맞게 각양각색의 바위 형상이 눈부시게 다채롭다.

등산객들이 자주 멈추고 감탄하며 수없이 스마트폰 셔터를 눌러 댄다.

기암괴석과 멋진 소나무 기세들을 감상하느라, 계속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된다. 평평한 바위 끝에 앉아서 가야산의 정취를 한참이나 마음에 담았다.

경치를 보느라 등산 때보다 하산 때가 시간이 많이 걸릴 정도로 곳곳이 장관이다.


만물상 능선이 끝나는 지점인 상아덤은 김수로왕 탄생신화가 있다. 최치원의 기록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신 이비가지가 상아덤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한 명이 대가야 시조인 김수로왕이라고 한다.


능선 내내 사면의 모서리가 부드럽고 거대한 바위 조각들이 세로로 길게, 때로는 옆으로, 서로 껴안다가, 등과 배를 맞대며 밀어붙이고, 겹겹이 층층이 탑을 만드는 등 온갖 모습을 취한다.


단아한 수묵화 바위가 능선 여기저기 황홀한 쇼를 연출한다. 바위 소나무는 칠불봉 부처님께 예불 올리는 분재 마냥 단아하고 정성스럽다.


하산 후 뒤를 보니 정상 바위가 일곱 부처상으로 보인다.

부처가 내 몸에 들어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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