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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능선, 문수봉을 오르며

by 신피질

오래전 북한산을 비봉능선을 오르며 쓴 짧은 글을 이곳에 올립니다. 이북오도청 인근에 주차하고, 금산사 계곡 및 비봉 능선, 그리고 문수봉을 거쳐서 구기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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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자주 가는 북한산 길은 비봉에서 시작해서 문수봉을 돌아 구기계곡으로 도는 길이다.

이북 5 도청 옆길에 주차를 하고 금산사를 거쳐서 오르는 비봉길은 조금 가파르다.


낮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간혹 작은 바위들을 타며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 보면 숨이 가빠온다. 가쁜 숨은 혈액 순환을 자극하고, 생각은 그 숨에 집중된다.


땀이 이마에 맺히는 순간 좌측 계곡 너머 금산사가 한눈에 보이고, 바위로 형성된 봉우리들이 시야를 감싼다. 산에 오른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의 세계가 펼쳐진다

도시의 아스팔트, 매연, 미래의 막연한 불안 등으로 움츠러든 영혼이 비집고 나와 자연의 시원한 숨결을 맞이한다. 힘든 오르막길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맞물리는 순간, 막혀 있던 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소나무는 바위틈에서도 강인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슬과 빗물, 햇빛을 받으며 굳건히 버틴다. 비봉 정상에 오르면 멀리 펼쳐진 북한산 봉우리와 그것을 잇는 시원한 능선이 육체의 고단함을 보답한다.


사모바위를 지나 작은 봉우리 꼭대기에서 쉬어 간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백운대, 인수봉, 노적봉의 장대한 삼각은 감탄을 자아낸다. 또 바로 앞 우뚝 선 문수봉의 위용이 시선을 압도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면 앞에서 전율을 느끼며, 내 영혼이 온통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소나무 옆 평평한 바위에 앉는다. 짙은 초록 이파리들이 햇빛을 가려주며 그늘을 만들고, 그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든다. 단단하고 청아한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명상한다. 화강암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린 소나무의 생명력, 순수한 기운이 온몸에 퍼진다.


거북 등껍질처럼 비틀린 줄기와 바늘잎에서 반사된 강한 기운이 피부와 숨결로 스며든다. 30분가량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떠 장엄한 풍경을 다시 바라본다.

맑아진 정신과 가벼워진 몸으로 문수봉 정상으로 향하는 바위길을 오른다. 바위를 타는 데는 집중력이 요구된다. 손과 발, 온몸이 조화롭게 움직이며, 순간순간 집중이 극대화된다.


문수봉 꼭대기 좌측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 발 밑엔 가파른 낭떠러지가 있고, 그 아래 문수사가 보인다. 맞은편엔 칼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고, 오른편엔 비봉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 나만의 명상터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아찔함 속에서 자연의 위엄과 마주한다.

문수봉.png


처음엔 작은 공포가 엄습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이로움이 두려움을 밀어낸다. 심장에 사랑의 감정을 강하게 의식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가 내 마음을 채운다.

저 멀리 소나무들이 정기를 뿜어내고, 새들이 공기를 타며 돌고 있다.


문수봉 바위길이 멀리 보인다. 방금 지나온 길이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만, 한 걸음 내디디면 어느새 정상이 보인다.


삶도 마찬가지다. 아득해 보인다고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결코 오르지 못한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용기만 있다면, 결국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산행은 뚜렷한 목표가 있는 여정이다. 험한 오르막, 힘겨운 바위 길, 편안한 내리막이 어우러진다.


순간순간 어려움을 넘기고, 풍경을 느끼며 몰입하는 것이 산행이다. 손과 발, 몸 전체가 집중될 때, 시간은 멈춘다. 시간조차 사라지는 집중의 경지, 그 끝에 정상은 모습을 드러낸다.


높은 산일수록 멈춤의 순간이 많다. 무엇을 하든 목표와 방향이 분명하다면, 결국 정상을 지나게 된다.

나의 방향은 어디로 인가?

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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