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을 사유하며~

by 한재영 신피질

요즘 블랙홀을 자주 생각한다. 블랙홀은 인류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송두리째 먼지로 흩어버리게 하는 인간 의식 저편에 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1927년 벨기에의 사제이자 물리학자인 르메트르가 빅뱅이라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했고, 1929년 에드원 허블이 은하의 적색편이를 관측했다. 적색편이는 우주자체가 팽창하면서 이동 중인 공간이 늘어나고, 빛의 파장이 늘어나면서 붉은색 쪽으로 스펙트럼이 이동하는 현상이다. 적색편이란 결국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주 팽창의 이론이 실증적으로 검증된 후 우주의 시작은 빅뱅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빅뱅은 과거의 사건이고, 블랙홀은 현재 존재하는 실체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 다양한 논리적 구조 및 관찰로 확증한다.


블랙홀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존이다. 그곳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조차 의미가 없다. 예를 들면, 거대한 지구, 아니 태양계조차도 그 공간에서는 의미조차 없이 사라진다. 시간과 공간이 무너져 사라진다. 지구상 모든 고체를 아무리 압축하고 압축해도 그곳에서는 무게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지구 반지름 대비 2천 배 크지만, 질량은 약 1조 3천억 배 크다.


도대체 내가 안다는 것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내가 사랑하고 슬퍼하고, 숨을 쉰다는 것이, 선과 악이라는 것이 모조리 모르는 것이 된다. 우리가 아는 종교의 신마저도 전혀 맥을 못 추는 것이다. 종교의 신이란 것도 알고 보면 지구에서나, 조금 넓게 보면 태양계에서나 힘을 쓰지, 블랙홀에서는 모조리 의미를 상실한다.



블랙홀을 상상한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회의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사라져 버리고, 도대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절망적이고 절대적인 사실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모른다. 결코 모른다. 아니 결코 알 수 없다.라는 거대한 명제에서 한 발짝도 움직 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내가 모른다는 말은 모든 것에 해당된다.


빅뱅이 과거의 사건이라면, 블랙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곳곳에 존재하는 현존하는 실체다.

하지만 이 실체는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 심지어 신적인 사유의 영역까지 끌어온다 해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태양계에서 빛의 속도로 2.6만 년 떨어진 우리 은하 블랙홀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 1분도 태양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태양계 포함 우리 은하는 블랙홀 존재 없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블랙홀이 결코 나와 상관없는 실체가 아닌 것이다.


존재는 분명한데, 이해는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문명과 과학, 이성은 멈춘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의 불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 문명 속의 한 존재에 불과한 나의 사고와 사유, 판단과 행동 역시 근본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삶의 가치를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고 믿는 것조차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


이 ‘모른다’는 태도는 무기력이나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안다는 확신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 내려놓음 속에서 나는 겸손해질 수 있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상대방과 사물, 조건과 상황에 대해 쉽게 단정하지 않고, 끝없이 열려 있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게 된다.

모른다는 것은 모든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초월한 영역까지 포함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쉽게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신뢰가 생길 수 있음을 유보하려 한다.

상대방의 말에 속단하여 중간에 끼어들지 않으려 하고, 상대의 외모나 태도를 기준으로 판단을 확정하지 않으려 한다.
작은 기부가 큰 기부가 될 수 있고, 큰 기부가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으며, 기부라는 행위 자체가 의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하려 한다.


가난과 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의미를 내가 안다고 가정하는 순간, 이미 판단은 굳어진다.
모른다고 가정할 때에야 비로소 부와 가난을 겸허하게 바라볼 수 있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블랙홀은 인간의 판단 체계 자체가 붕괴되는 실존의 은유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삶을 가볍게 대할 수 없게 되었다.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이 될 수 있고, 살고 죽는 것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내가 블랙홀을 사유하며 결정한 삶의 가치이자 철학이다.


나는 모른다.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타인을 예단하지 않으려 한다.
타인의 말과 태도에 대해 확정적인 판단이나 단호한 비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모름을 전제로 한 삶, 그것이 내가 선택한 태도다.









이전 07화호르몬 3부 — 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