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작아진 원전이 아니라 다시 묻는 원자력의 질문

by 한재영 신피질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 학습과 추론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안정적인 전력을 요구하고, 전력 품질 역시 일반 산업 설비보다 훨씬 엄격하다. 이 전력 문제 앞에서 다시 원자력이 호출되고 있다. 탄소 배출이 적고, 대규모 기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 속에서 소형모듈원자로, 이른바 SMR이 새로운 대안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SMR 논의는 기술의 실체보다 기대가 먼저 앞서 있는 측면이 크다.


SMR은 말 그대로 출력이 작은 원자로다. 대형 원전이 1,000MW 이상인 반면, SMR은 보통 50~300MW 수준이다.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해 현장에 설치한다는 개념, 안전계통을 단순화했다는 설명, 사고 시 영향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주장 등이 함께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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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SMR은 하나의 표준 기술이 아니다. 경수로, 고온가스로, 용융염로, 금속냉각로 등 서로 다른 설계가 ‘SMR’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을 뿐이다. 아직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술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80여 종의 서로 다른 설계가 전 세계에서 개발 중으로 대부분은 민간이 추진하여, 기존 원전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다. 경수로 기반은 미국의 NuScale VOYGR, 영국의 Rollys-Royce SMR 등이고, 비경수/고급냉각제 기반은 중국의 HTR-PM, 미국의 Westinghouse의 eVinci 등이다.

한국은 기존 원전을 소형화하는 SMART 방식이다.



SMR이 새로운 기술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오래되었다.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에 탑재된 원자력 추진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운용되어 왔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들 군사용 원자로는 소형·고출력·장 주기 운전이라는 점에서 SMR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군사용 원자로는 무기급에 가까운 고농축 연료를 사용하고, 군사 구역이라는 완전히 통제된 공간에서 운용된다. 민간 사회와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 같은 원자로라도 군사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고농축은 천연우라늄을 90% 정도까지 농축한 것으로 핵무기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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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 중인 SMR은 사실상 거의 없다. 러시아의 해상 원자로, 중국의 일부 실증 프로젝트가 존재하지만, 다수 국가가 기대하는 대규모 보급형 SMR은 아직 운전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설계 안전성은 대부분 시뮬레이션과 이론에 기반해 설명되고 있으며, 수십 년에 걸친 노후화, 인력 교체, 유지보수 환경까지 포함한 실증 경험은 아직 축적되지 않았다.


SMR의 안전성 논의에서 가장 많이 혼동되는 부분은 피해 규모다. 대형 원전 사고는 수만 명 단위의 피해를 상정하지만, SMR은 사고 시 수천 명 수준으로 제한된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위험은 단일 사고의 크기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사고 확률, 설치 개수, 운영 주체의 다양성, 통제 난이도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SMR은 분산 설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고 가능 지점이 늘어나고, 관리 체계가 복잡해진다. 하나의 거대한 위험이 여러 개의 작은 위험으로 흩어지는 구조다. 분산된 위험은 오히려 통제가 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SMR이 민간 기업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기존 대형 원전은 국가 단위 사업이었다. 사고 시 책임, 폐기물 관리, 장기 안전 관리가 모두 국가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SMR은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형태가 많다. 그러나 방사능 사고나 폐기물 문제는 기업의 재무 범위를 넘어선다. 민간이 운영하더라도 사고의 최종 책임은 결국 국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기술은 민간, 위험은 국가라는 구조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연료 문제는 SMR 논의에서 자주 간과된다. 기존 대형 원전은 3~5%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반면 다수의 SMR 설계는 5~20% 농축도의 HALEU, 즉 고농도 저농축 우라늄을 필요로 한다.

연료 교체 주기를 길게 하고 소형 노심에서 안정적인 출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 농축 구간은 핵확산 관리가 훨씬 민감해진다. 현재 HALEU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극히 제한적이며, 과거에는 러시아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미국조차 SMR을 추진하면서 연료 공급망 부족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농축 자체가 불가능해 연료 주권을 갖고 있지 않다.


우라늄 자원 자체는 지질학적으로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자원량이 아니라 공급 체계다. 신규 광산 개발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생산은 일부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 향후 원전과 SMR이 동시에 확대될 경우 연료 공급 병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과 지정학 문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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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와 일본의 태도는 이런 복합성을 잘 보여준다. 두 지역 모두 SMR을 연구하고 검토는 하지만, 에너지 전환의 중심축으로 삼지는 않는다. 폐기물 문제, 사회적 수용성, 책임 구조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후쿠시마 이후 원자력 자체를 기술 문제가 아닌 사회적 기억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전력 부족과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같은 기술을 두고도 국가별 인식 차이가 큰 이유다.


한국 기업 가운데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SMR 관련 기대의 중심에 서 있다. 미국의 여러 SMR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기자재 공급과 향후 수주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주가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SMR 관련 실질 매출은 제한적이며, 시장은 아직 실적보다 가능성에 반응하고 있다. 기술과 산업 사이에는 여전히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로 다시 원전이 주목받고 있지만, 원전 증설 없이도 일부 대안은 존재한다. 가스발전, 재생에너지와 ESS의 조합, 전력 풍부 지역으로의 데이터센터 분산, AI 효율 개선, 학습과 추론의 공간 분리 등이 그것이다. 다만 이들 해법은 모두 단독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복합적 구조로만 작동한다. 원전이 다시 거론되는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들 역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결국 SMR은 새로운 기술이라기보다 오래된 기술을 사회 안으로 다시 들여오려는 시도에 가깝다. 군사 공간에서는 수십 년간 사용되었지만, 민간 사회에서는 책임과 통제가 훨씬 복잡해진다. 기술의 안전성과 사회의 안전성은 동일하지 않다. 원자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력이나 크기가 아니라 책임의 설계다.


SMR은 작아진 원전이 아니다. 더 복잡해진 원자력이다. 기술은 이미 존재하지만, 그것을 감당할 제도와 사회적 합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새로운 원자로를 얼마나 빨리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원자력을 다시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AI 시대의 전력 문제는 결국 기술이 아니라 판단의 문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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