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라는 현상

업식, 예측, 그리고 거리를 만드는 삶

by 한재영 신피질

미움은 흔히 마음의 문제로 다뤄진다.

수행의 대상이거나, 극복해야 할 감정이거나, 성숙하지 못한 인격의 흔적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미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움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나이가 들고 이해가 깊어질수록 다른 형태로 반복해서 나타난다.


더구나 미움은 낯선 타인보다 가장 가까운 관계, 특히 부부나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한다. 이 현상은 도덕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뇌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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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움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미움을 하나의 작동하는 현상으로 이해하려 한다. 미움이 어디에서 생기고, 어떤 조건에서 강화되며, 왜 이해와 자비를 알고 있음에도 다시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이해가 어떻게 미움에 대한 초연함, 즉 감정과 동일시되지 않는 자유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불교의 유식학은 마음을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층위와 기능을 가진 체계로 보았다. 제8식 아뢰야식에는 과거의 경험, 반복된 감정 반응, 좌절된 욕구, 관계에서의 상처가 ‘씨앗’의 형태로 저장된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반응 경향성이다. 과거에 어떻게 느꼈고,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패턴으로 남아 미래를 준비한다. 제7식 말나식은 이 업식을 바탕으로 항상 ‘나’를 중심에 두고 세계를 해석한다. “이건 나에게 중요하다”, “이건 위협이다”, “이 사람은 내 삶에 영향을 준다”라는 판단이 자동으로 일어난다.


미움은 제6식의 생각과 언어로 드러나지만, 그 뿌리는 이 업식과 말나식의 결합에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대부분 의식 이전에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미움을 선택하기 전에 이미 미움 쪽으로 기울어 있다. 감정은 결심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판단의 그림자에 가깝다.

상대방이 미운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얼굴만 봐도 싫어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미움과 반대되는 개념에 사랑이 있다. 그러나 두 개는 곧바로 양립될 수 없다. 서로 다른 구조위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과 미움은 단순히 대비되는 감정이 아니라, 동시에 오래 유지되기 어려운 두 개의 신경 상태에 가깝다. 미움이 활성화될 때 뇌는 편도체와 교감신경계를 중심으로 위협에 대비하는 생존 모드에 들어가고, 이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결을 담당하는 전전두엽과 대상피질의 작용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반대로 사랑과 연민이 일어날 때는 옥시토신 분비와 함께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며, 뇌는 방어가 아닌 관계와 신뢰의 방향으로 조직된다. 이 때문에 사랑과 미움은 도덕적으로 선택되는 감정보다, 서로 다른 생존 전략에 해당하는 신경적 배치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미움이 잦아드는 순간 사랑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협을 감지하던 회로가 조용해지면서 생명의 본래적인 연결 상태가 다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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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 현대 신경과학이 말하는 ‘예측하는 뇌’의 관점과 겹친다. 인간의 뇌는 외부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관이 아니라,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뇌는 끊임없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관계는 어디로 갈까”를 계산한다. 이때 사용하는 핵심 자료가 바로 해마에 저장된 기억이다.


해마는 단순한 기억 저장소가 아니다. 해마는 일종의 관계 주소록이며, 동시에 생각의 습관이 굳어지는 장소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 어떤 말이 반복해서 특정 감정과 함께 저장되면, 해마는 그것을 하나의 묶음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특정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미움이 고착된 상태에서는 얼굴, 목소리, 침묵의 방식조차 과거의 고통을 현재로 불러온다.


이때 발생하는 미움은 현재의 판단이라기보다, 시간이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재현이다. 불교적 언어로 말하면 업식의 자동 작동이고, 신경과학적 언어로 말하면 예측 모델의 관성이다. 그래서 미움은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보다, “과거에 이 사람과 함께 어떤 시간을 살았는가”에 훨씬 더 크게 좌우된다.


나이 든 부부는 극단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서로의 애정이 점차 굳건한 믿음으로 가거나, 아니면 서로의 미움이 쌓여 지속적으로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다. 물론 여기에 미래 예측 기계인 생존, 즉 소득과 재산 문제가 감정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래서 결국 같이 살아온 삶의 역사가 중요하다. 오랜 시간 동안 미움과 애정의 저축 계좌가 얼마나 쌓여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과거의 저축 계좌 없이, 즉 미움의 계측 계좌가 쌓여 마이너스 통장으로 파산 직전인데, 갑자가 사랑의 대출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랑의 대출을 일으키려면 먼저 마이너스 통장부터 갚아나가야 한다.


미움은 예측이 실패할 때 강해진다. 과거의 업식과 해마의 주소록이 만들어낸 기대가 현재의 현실과 어긋날 때, 뇌는 이를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존재적 불안으로 해석한다. 이때 미움은 경보처럼 울린다. 따라서 미움의 강도는 대상의 성격보다, 그 대상이 나의 삶과 미래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때문에 미움은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일시적인 관계보다 지속적인 관계에서 훨씬 강하게 발생한다. 부부 관계에서 미움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부는 서로의 미래 예측 모델 속에 가장 깊이 들어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대가 클수록, 그리고 그 기대가 오래 어긋날수록, 미움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분위기처럼 굳어진다.


이 지점에서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도덕적 열등함이 아니라 실행되지 못한 힘의 정체 상태다.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고, 떠나고 싶었으나 떠나지 못했으며, 바꾸고 싶었으나 바꾸지 못한 시간 속에서 에너지는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안으로 말려든다. 그 에너지가 판단과 도덕의 언어를 입을 때, 우리는 그것을 미움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미움은 악이 아니라 멈춰 선 삶이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 미움은 종종 가장 신중한 사람, 가장 책임감 있는 사람,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더 오래 지속된다.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행동할 수 없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묻는다. 이렇게 구조를 이해하면 미움이 사라지는가. 답은 분명하다.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는 미움을 제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해는 미움의 위치를 이동시킨다. 미움이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의 작동 과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 지금 업식이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해마의 오래된 주소가 다시 열리고 있구나.”
“예측이 어긋났다는 신호가 감정으로 나타나는구나.”


이 인식이 생기는 순간, 미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관의 자리이며, 감정이 삶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는 최초의 틈이다.


이해가 여기까지 이르면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 미움을 직접 다루려 하지 않게 된다. 대신 미움이 자주 발생하는 조건을 바라보게 된다. 특정 시간대의 피로, 반복되는 대화의 방식, 예측 가능한 갈등의 주제, 몸의 긴장 상태. 미움은 무작위로 생기지 않는다. 늘 비슷한 환경과 심리적 리듬 위에서 강화된다.


그래서 미움을 통제한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미움이 증폭되는 구조를 조정하는 일이다. 어떤 시간에는 중요한 대화를 미루고, 어떤 상태에서는 판단을 유예하는 것만으로도 미움은 행동으로 번지지 않는다. 통제의 대상은 마음이 아니라 시간, 몸, 환경, 리듬이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이해한 설계다.


결국 미움을 해결한다는 것은 미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움이 생겨도 더 이상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 미움이 점차 중요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변화는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해의 깊이와 삶의 조건이 함께 만들어낸다.


미움은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를 대신해 말하지 않게 되면 충분하다. 그때 자유는 어떤 결심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변한 삶의 구조 속에서 이미 시작되어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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