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신 한 걸음
태어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회사에서 느끼던 답답함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일본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이 된 친구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내 세상은 달라졌다.
나는 곧장 노트북을 열고 ‘승무원 되는 법’을 검색했다. 합격생들의 스펙을 하나씩 살펴보니 특별한 조건은 없었다. 항공운항과 출신도, 화려한 학점도 필요하지 않았다. 토익 점수와 면접 합격이면 충분했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더 설레게 했다.
'당장 해볼 수 있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회사를 그만두고, 곧장 승무원 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더 이상 검색도, 머릿속 계산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실행에 옮기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품게 된 꿈을 부모님께 꺼내놓는 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긴장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늘 어른들이 정해준 길을 따라, 잘 길들여진 아이처럼 살아왔다. 그래서 당연히 부모님도 이번에는 응원해 주실 거라 믿었다.
기쁜 마음으로 일본에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버지는 당장 일본으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다급히 “한국에 들어가면 바로 집으로 가겠다”라고 달래며 겨우 말렸다. 며칠 뒤 집에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속에서,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안 된다.”
나는 1남 3녀 중 첫째였다. 아버지는 장학금 한 번 받지 못한 나를 위해 4년 치 대학 등록금을 모두 감당하셔야 했다. 이제야 내가 조금씩 집에 보탬이 되기 시작했지만, 내 밑으로는 아직 대학 문턱에도 오르지 못한 동생들이 줄줄이 남아 있었다. 그런 형편에 내가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아버지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달랐다. 억울했고, 서운했다. 회사에서 얼마나 힘겹게 버텨왔는지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은 채, 그저 반대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만 힘든 것 같니? 먹고사는 건, 다 힘들다”
말씀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가슴에 꽂혔다.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나는 아빠처럼 평생직장이라고 믿던 곳에서 배신당하며 살지 않을 거야. 지금 나에게는,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요. 꿈을 향한 설렘, 아빠는 알기나 하세요?'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삼켜버린 말은 마음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다행히 엄마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다. 나는 엄마에게 동의를 얻은 채,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아버지는 이미 14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실망이었을까, 아니면 이해였을까. 답은 끝내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한 동료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아니? 우리 딸이 승무원이라면서, 기분 좋게 한턱 쏘셨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래 묵혀온 원망이 스르르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끝내 내 선택을 모른 채 떠나셨지만, 그날 이후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은 결심이 훗날 내 인생을 얼마나 크게 바꿔 놓을지는,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