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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퇴근할 때 데리러 오는 남자

143일 차 이브닝퇴근은 그와 함께

by 소곤소곤 Mar 18. 2025



나는 3교대 간호사다. 다시 워킹맘이 된 지 2년이 아직 안 되었다. 이브닝 근무는 오후 2시 40분부터 10시까지인데. 퇴근시간 무렵이면 항상 그는 나를 기다린다.


다른 간호사들은 홀로 퇴근하는데 나만 남편이 기다린다. 피곤에 지친 나를 반겨주는 고마운 남편. 조수석에는 내가 타고, 그는 운전대를 잡는다. 사실 나는 마흔이 넘으니  모든 노화가 눈으로 왔다. 안구 건조에 난시까지. 그래서인지 야간운전은 더 조심조심하느라 속도를 못 낸다. 그리고 이브닝 퇴근 후 주차가 문제다. 나는 6년째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못하는 장기 초보운전자다. 한 번의 교통사고 후 평생을 초보운전 딱지를 떼지 않으리라 다짐할 정도니까. 주차를 하느라고 야밤에 매일 난리인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브닝 근무하느라고 힘든데 퇴근 후 주차까지 하느라 용을 쓰는 나를 너무 잘 아는 그다. 당신도 일하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그는 나를 데리러 집에서 도보로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온다. 추우나 더우나 나를 데릴러 온다. 가끔은 뛰어서 오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퇴근 후 따뜻하게 덥혀진 조수석에 앉으면 저절로 집에 도착하는 호사로움을 느낀다. 완전 왕비대접이구나.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어야지 철이 든다는데, 우리 집 남편은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지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다. 추측 건데 내가 전업주부 생활을 오래도록 하다가 워킹맘이 된 후로 그가 철이 든 거라 생각된다. 예전의 그는 퇴근 후 소파와 한 몸이었고, 피곤하다면서 집에서 시체처럼 살았었다. 여차저차해서 맞벌이로 전향한 우리 부부는 집안일과 바깥일을 나눠서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나는 바깥일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며 그에게 하는 잔소리가 1/10로 줄었다. 그는 집안일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하다가 절반의 집안일을 도맡아 하더니 처음에는 입병도 났었다. 나는 말없이 아시클로버 연고를 발라줄 뿐이었다. 내가 이브닝 근무를 할 때는 아이들의 저녁식사 준비는 오롯이 남편 몫이다. 아내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오롯이 혼자 다 해내야 한다. 내가 주말근무를 할 때도 집안일과 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미룰 수도 없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깨달았으리라. 지금껏 아내가 만만치 않은 일을 해냈구나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바깥일의 무게감과 책임감을 어깨가 무겁도록 느끼고 있다. 집안일의 만만치 않음과 해도 해도 끝이 안나는 무한반복에 놀라며 반찬투정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철없음에 다투던 부부싸움은 멀리 사라지고, 서로의 주름과 흰머리를 바라보며 나이 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의 육아완성과 노후준비로 좁혀지고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본다.


내일부터는 힘들면 안 와도 돼.
아니야. 운동도 할 겸 나오는 거야.


나는 그를 잘 안다. 고맙단 말을 못 하는 그를. 내일은 두루치기와 어묵볶음을 해야겠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 두 가지로 나도 고맙다는 말을 음식으로나마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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