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선율이 맺어준 둘의 낭만적인 이야기

[맛있는별점]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by 월급로그아웃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3줄요약

여든 여덜 걸음, 그에게 가는 길

이십 년, 그녀에게 가는 시간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만나게 된 둘의 사랑 이야기


들어가며

원작은 대만의 대표적인 로맨스/멜로 영화다. 감독 주걸륜, 주연 주걸륜 그리고 계륜미라는 걸출한 배우진으로 구성된,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운명적으로 만나지만 애처롭게 헤어지게 되고 결국 다시 만나게되는 낭만적인 영화다.


드디어 한국에 리메이크된 작품으로 개봉했다. 주연은 도경수, 원진아, 신예은. 시간대를 2020년으로 옮겨 한국의 감성에 맞게 재구성한 영화다.


원작을 당시 고등학생 입장에서 상당히 즐겁게 봤던기억에 마침 주말에 시간이 생겨 보러 가게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극장은 한산했다. 저녁 8시 50분, 관객은 대략 10명 내외 정도였다.


극장에 불이 꺼지며 이내 영화가 시작됐다.



에피타이저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이내 극장을 적신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떠오른 하얀색 글자 '말할 수 없는 비밀'

영화가 시작된다.


손목 부상으로 인해 콩쿠르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김유준은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의 한 대학교로 오게된다. 음대건물로 들어간 김유준, 건물 밖은 완연히 왁자지껄하지만 안은 이상한듯 조용하다. 그리고 이내 마주한 관객에게는 익숙한 피아노 선율,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그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내용물은 대만산, 그러나

포장지는 한국어로 된 이상한 맛


2020년, 지금으로부터 5년전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모든 것이 어색하다. 캠퍼스를 걸어다니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 수업시간에 주고받는 교수님과 학생의 대사 모두 어색하다.


우리 대다수는 캠퍼스의 낭만을 가슴 한 켠에 두고 산다. 그걸 실제로 즐기거나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자유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그것에 알맞은 감성인지는 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자, 영화나 드라마의 허구성을 인정하고나서라도 이를 보는 시청자는 최소한의 현실성을 감독에게 요구한다. 그럴듯한 대사라던가 있을 법한 모습들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시청자들에게는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주로 작품에 대한 신뢰성을 얻는 장치랄까?


영화는 그것을 망각한 채 원작에게 맞춘 이상한 대사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들로 이어져 나간다. 그것이 절정이였던 상황이 바로 '피아노 배틀'이였다.(피아노 배틀 이야기는 뒤에 조금 더 하기로 한다) 마치, 모 드라마에서 한국 학교 건물 창문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한 남자배우가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라고 독백하고 있는 요상한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건 마치 포장지는 한국어로 적혀져 있지만, 내용물은 대만산 사탕을 맛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번 맛은 뭐랄까. 시간에 쫒겨서

일단 입에 빵을 넣고 제대로 씹지도 못한채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맛이였달까


88걸음과 20년의 시차에서 만난 둘,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1시간 40여분,


그 시간은 관객이 상황 속에 몰입되기 어렵게 빠르게만 진행되는 스토리를 담았다.


영화가 끝나고 1층으로 내려오는 엘레베이터에서 나는 종종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솔직한 리뷰를 듣는다. 영화가 끝난 후 엘레베이터와 화장실은 약간 그런 공간이기도 하다.


도경수는 갑자기 걔(원진아)가 좋다고 하는거야?
글쎄


엘레베이터에 탄 한 커플이 주고 받은 대화다. 엿들었다기보다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려오는 내내 나도 그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사랑의 모드로 전환된 걸까.


영화나 드라마는 우리와 같은 시간대에 살고 있지 않다. 연출하는 이가 설정한 시간대를 시청하는 우리가 따라가고 있기에 우리가 느끼는 1분1초와 작품 속 그들의 '시간대'는 다르기 때문에 연출자는 이를 위해 늘 어떠한 장치를 설정한다. 이를테면 밤과 낮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던지 몇년이 흘렀음을 암시한다던지 그런 방법들로 시청자들을 '납득'시킨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우리에게 익숙한 '그' 피아노 선율로 만난 김유준과 유정아는 정말 빠르게 친해진다. 대략 영화에서 설정한 날짜가 가을로 보이는 10월 언저리 즈음 이였고, 매해 진행되는 음악제에 두꺼운 점퍼를 입지 않았으니 가을쯔음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최소 한달 내지 최대 두세달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일텐데,


목적지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기라도 하는 듯 김유준과 유정아는 사랑에 빠지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왜 둘이 좋아하고 있는거야?'라는 물음을 스스로하고 있게된다. 이또한 연출자가 설정해놓은 '운명적 이끌림'이라는 것이라면 할말은 없다. 영화는 늘 그렇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다면, 몇 장면이 채 되지 않게 만난 둘이지만 서로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는 남주와 여주를 보게 될 것이다.



진중하지만 거침없었던 도경수(김유준)

신비스럽게 보여야 하는 원진아(유정아)

그리고 풋풋한 대학생을 연기한 신예은(박인희)


스토리에 대한 리뷰는 이쯤하고, 연기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우선 도경수 배우, 역시 도경수다. 원작의 주걸륜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의 '김유준'을 연기했다. 진중한 목소리 톤과 큰 눈망울에 담은 상대방의 모습으로 하여금 나는 곧 그의 연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최근엔 '정년이' 조금 더 가서는 '연진이'로 이름을 알린 신예은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신예은 배우는 풋풋한 대학생의 느낌을 잘 살린 것 같다. 반듯한 과대표를 연기하며 김유준에게 일방적인 케미를 보이며 그녀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것 같다. 다만, 미칠듯한 연기를 보여줬다기보다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그 배역의 1인분을 해낸 정도였을 뿐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원진아 배우는 조금은 망설여진다. 원작의 계륜미라는 배우의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에, 도경수 보다 분명히 큰 압박을 느꼈을 것 같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간 지점과 각색된 지점에서 원진아는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다만, 원진아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그녀의 이미지에 조금더 맞춰진 것 같다. 원작의 계륜미의 느낌을 살려보려고 했지만, 원진아 배우가 연기한 유정아는 이질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 여주가 아니라 예쁜 대학생으로 보였다. 눈망울이 참 예쁘고 단발이 잘 어울리는 배우이지만, 조금은 이질적인 연기를 했어야 했지만, 무언가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김유준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성우 배우가 가장 관객과 가까운 역할이였던 것 같다. 지루한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한국 버전에서는 아들과 투닥대는 친구같은 아빠였다. 한국 버전이라고 했지만 원작의 아버지도 비슷하다.



그리고 등장한 '그' 피아노 배틀

제일 보기 싫었던 장면이 된 실망스러운 맛


피아노 배틀 장면이 드디어 나왔다. 진지하게 보려고 자세를 바로잡기도 했다. 한국판 피아노 배틀에서는 원작과 다른 곡이 연주된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당연히 무슨 곡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는건 원작과 똑같다.


다만,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진짜 이상했다. 원작의 스토리, 감성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플롯을 선택했지만, 차별점을 둬 관객으로 하여금 신선함을 일으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근데, 그냥 피아노를 잘치는 천재들의 연주 정도였다. 특별한 기법이 가미된 것도 아니였고 카메라 워킹이나 하물며 원작에서 보여준 피아노 속 장치들이 움직이는 CG 같은 것도 없이 서로 등을 마주본 채 열심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피아노 연주가 끝난 뒤 동그랗게 모여있었던 학생들의 환호성...이거 실화인가. 연출진은 정말 고민을 1도 하지 않은 채 대만 원작의 구도를 베껴 한국 사람들로만 채워넣었으니 그게 이상하지 않을리가 있나. 최악인데말야. 그 중 가장 최악이였던건 피아노 배틀 상대의 대사톤이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읽은 국어책 발음은 기억난다.



맛평가

그래서, 결론은?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가장 크게 생각이 들었던 두 가지 지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하나는 원작과 달랐던 여주의 설정이다. 원작의 왕따 문제를 제거했다. 섹슈얼적인 괴롭힘까지 포함한 이슈였으니 제거하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려니 했다. 그리고 유정아와 김유준의 시간대 차이 강조하며 서로가 어긋났었던 감정에 포커싱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후회하는 애증의 감정들을 끌어올린 것 같았다.


다만, 그것의 논리적 접근이 원작에서 여주의 개인적인 아픔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고통받는 상황에 쳐해져 도피하는 구도와 달리, 김유준과 유정아를 사랑에 미쳐 서로에게 도망한 인물로 그려놨다. 그래, 이것도 영화적 허용이라면 인정한다.


근데, 그렇다면 적어도 김유준과 유정아의 애처로운 감정에 대해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그래 이 둘은 이렇게 절절하게 사랑할 수 밖에 없었지" 라고 이해를 시켜줘야했지 않았을까. 뒷부분 씬인 음대건물이 폐쇄되고 철거되는 날 유정아를 찾아 떠나는 김유준을 위해 앞부분 씬인 서로가 사랑하는 감정을 나눈 시작점의 비중을 줄여버린 느낌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 스틸컷


왜? 원작이 이미 있는 영화고 유명한 영화라서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널리 알려졌을 테니 그런 '앞부분'은 빼고 뒷부분에 집중해도 관객이 이해할거라 생각했었나.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 가면서 나는 얼른 집에 가서 주걸륜/계륜미 원작을 보고 싶을 뿐이였다. 더이상 영화에 흥미가 생겨나지 않았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하나는, 씬 하나하나에는 스토리와 연기가 적절하게 배합되서 순간마다 이입이 되지만, 그 씬들을 이어붙여 만든 결과물인 영화는 짧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도리어 관객들에게 이해를 요구한다. 전개가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데 적당한 이해가 쉽나?


각종 OTT들이 난무해 드라마 시리즈에 익숙해지고 숏츠 콘텐츠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영화는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며 '논리적 전개를 지나가는 대사에 던져놓고' 지나가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10분 내외 유튜브, 1분 숏츠에 절여진 우리들에게, 극장에 오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1시간 30분 동안 앉아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한 영화계의 절충안인 셈이다.


그게 결국 관객은 스토리에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연출적 재미는 느끼지 않으려하고 배우들의 연기, 혹은 외모나 그들의 이름값에만 극장으로 움직이게 된 것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여담이지만, 저녁 8시 50분 영화였다. 45분쯤 입장했지만 이상하게 광고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9시가되어서야 영화가 '바로' 시작했다. 8시 56분 언저리쯤 되어서 들어온 직원은 "광고 없이 9시에 영화가 바로 시작됩니다" 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 상태라 조금은 놀랐다. 영화 시작 전 xx타이어랑 x데 광고 보는건 국룰인데 주말 저녁 영화에 광고가 없다니, 이게 영화보다 더 신선했다.


어찌됐든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여든 여덜 걸음, 그에게 가는 길

이십 년, 그녀에게 가는 시간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만나게 된 둘

그들의 사랑 이야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25년)이다.


5점 만점에 3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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