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풍경 “익숙한 낯섦”
그야말로 경계선
제목이 가진 함축성에 티나를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출입국 사무소, 항만, 문명과 야생, 인종차별, 아름다움과 추함 다양한 경계선에 있는 티나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자신의 일반적 통념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불편한 지점에 있는 가를 상기하게 한다. 20세기 후반까지 우리는 인간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이른바 인본주의적 사고에 입각해 대부분의 것들을 판단해 왔다. 21세기에 들어 그 편협한 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영화는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실존적 질문을 통해 현대에 우리를 보게 한다.
낯선 판타지
영화의 배경은 스웨덴으로 그려지고 있다. 소재 역시 북유럽 민담에 나온 숲에 사는 트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끓어가고 있고, 번개에 반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토르를 숭앙하는 원시적 존재임을 부각한다. 해리포터 같은 동화적 세계를 그린 판타지가 아닌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장르적인 신선함을 준다.
롤랜드와 보레 그리고 티나
사나운 개를 애견대회에 데려가는 남자 롤랜드, 그는 티나에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생하는 존재다. 개를 키우듯 티나를 대하려 한다. 반면에 보레는 주위에 어떤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자유롭게 행동하고 티나에게 본능이 이끄는 삶을 살라고, 자신은 인간이 아닌 트롤이며 당신 역시 그렇다고 티나에게 말한다. 이들의 관계를 통해 티 나는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내면적으로 성장한다.
성장 영화
티나의 삶은 무료했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가끔 찾아뵙는 일, 출근한 일터에선 동료들과 여전히 어울리지 못한다는 현실, 퇴근하면 집에서 기다리는 남자친구가 기르는 맹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까지 견디기 힘들다. 인간들이 먹는 음식 역시 입에 맞지 않지만 살아야 하기에 억지로 먹는다. 그러다 만난 자신과 비슷한 사람 보레를 통해 그녀는 달라진다. 그들은 같은 상처를 몸에 갖고 살아가며 벌레의 맛을 알았고, 그들 만의 사랑을 나누는 방식을 통해 진짜 자신을 알아간다. 당신은 누구냐 보레에게 묻던 티나는 숲 속에서 말한다. “ 예전엔 요정을 믿었지만 이젠 아냐 “ 숲에서 야생과 교감하는 자신이 요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보레는 자신이 이동하는 사람이라 소개했고 함께 떠나자 제안을 하지만 티나는 주저한다. 떠돌아다닌 자와 머무는 자의 대비를 통해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사람조차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티나는 그렇게 성장한다.
인간이 행하는 가장 잔혹한 범죄
극이 후반으로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로맨스에서 사회고발물로 서서히 전개되어 가는 부분이 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잡은 사람 중에 아동프로노를 유포하는 사람이 잡히고 그들의 일당을 잡기 위해 티나는 수사에 참여한다.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티나는 보레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보레는 자신의 종족이 당한 고통을 인간들에게 똑같이 갚아주겠다고 티나에게 말한다. 티나는 자신의 부모를 실험하고 죽인 인간들이 미웠지만 그런 식의 명분 없는 보복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혼란 해진다. 은유로서 전해지는 폭력과 보복의 모습은 서방에서 가해지던 중동국가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과 그 보복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랑의 형태
영화 속 트롤 역시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사랑을 나눈다. 육체적 교감을 통해 생명을 잉태하고 살아가는 어찌 보면 보통의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난자를 생산하는 쪽이 남성이다. 아이를 양산하는 쪽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성역할의 역전을 통해 고착화된 관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랑은 스스로 형태를 가질 수 없다. 누군가 다듬고 보듬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망설임과 확신의 조응
오프닝 시퀀스에서 티 나는 항구에서 벌레를 잡아보지만 이내 놓아준다. 본능대로라면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야 하지만 자신이 인간이라 믿고 있던 그녀의 마음의 경계선인 것이다. 이 시퀀스는 엔딩 시퀀스로 가 닿는다. 포레가 보낸 것으로 짐작되는 아이를 안고 숲으로 가 벌레를 잡아 입에 넣어준다. 항구에 망설이던 티 나는 그곳에 정박한 배처럼 나가려는 것인지, 머무르려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을 누군지 몰랐다면, 숲 속에서 아이에게 벌레를 먹이는 티나는 추한 외모를 지닌 인간이 아닌 한 명의 트롤로서 자신의 삶을 확신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레바가 받은 아이를 감독인 아바시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란 태생의 유럽 감독이 견뎌낸 생의 무게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곳에나 있으나 지금뿐인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