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풍경 “광기의 발견“
한 남자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긴다. 한 손에는 붐박스를, 어깨엔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약간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무대로 향한다. 그러고는 “안녕하세요. 카세트테이프 하나 틀게요. “ 하며 신나게 연주되는 밴드의 대표곡 <psycho killer> 관객들을 일제히 열광하고,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잊지 못할 위대한 공연의 포문을 연 것은 밴드의 프런트 맨 데이비드 번이었다.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1983년 12월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은 ‘토킹 헤즈’라는 혁명적인 밴드의 공연을 올렸고 그 실황은 조너선 드미 감독에 의해 촬영된다. 그 뒤로 하나씩 등장하는 멤버들, 베이스의 티나 웨이머스, 드럼에 크리스 프란츠와 모던 러버스의 기타리스트 제리 해리슨 이들의 비트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펑크(funk)와 디스코(disco) 혼재돼 있었지만 그 바탕엔 아프리카 민속 음악과 재즈를 결합해 그들만의 광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해체한 것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시대였다. 1970년대 뉴욕은 황폐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통제에 억눌려 있었다. 저항과 반전의 상징이던 히피들은 기성세대가 되어 젊음을 억압했다. 그때 나타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뉴욕이라는 토대를 언더그라운드의 땅으로 만든다. 그들의 뉴웨이브 흐름을 타고 탄생한 것이 ‘토킹 헤즈’다.
그들은 이민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타고난 반골 기질을 지녔다. 시대의 불안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프로비트 위에 자신들의 색을 녹여낸다. 기존 형식의 파괴, 불협 화음을 무기로 첫 앨범 <taking heads: 77>을 발매하고 이후 브라이언 이노를 만나 세 장의 앨범을 더 내며 80년대를 맞이한다. 당시 피치포크의 말을 인용하면 “그들은 이미 미래에 있었다.”
조너선 드미가 그들의 공연을 처음 접한 건 1979년이었다. 정규 5집 <Speaking In Tongues>를 발표하고 LA공연을 본 드미는 놀랍도록 성장한 밴드의 포퍼먼스에 감격한다. 그는 곧바로 토킹 헤즈에게 실황 영화 제작을 제안한다. 드미 감독의 팬인 밴드 멤버들은 흔쾌히 수락하고, 데이비드 번은 준비에 착수한다.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기획하고, 선곡과 세트 리스트에 맞춰 스토리 보드를 작성했다. 원시적인 리듬 거기서 발현된 흐느적거리는 춤사위,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한정된 무대 그리고 외침에 가까운 야성적 노래 그것이 상식을 벗어던진 <스탑 메이킹 센스>의 스케치였다. 데이비드 번이 짜놓은 무대 동선에 조명 연출이 더해져 영화적인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번은 무대를 비워두고 곡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밴드 멤버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악기, 조명, 세트가 나타나며 서사를 만드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드미는 번이 만든 영화적 이미지를 프레이밍을 통해 재구성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들은 일반적인 실황들보다 정적이지만 내적으론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시작은 흰 여백에서 위로 타이틀이 떠오른다. 그 후 줌아웃하면 검은 틀이 보이고 멀어진 카메라는 문 안으로 들어온 빛과 그림자로 형상을 드러낸다.
데이비드 번의 얼굴이 등장한다. 인트로 무빙은 바닥에서 위로, 스크린 안에 들어갔다가 앞으로 빠지고 다시 상승하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인물과 카메라의 동선이 하나로 이루어지며 진행되는 일반적인 방향성을 탈피해 관객이 공연 자체가 아닌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한다. 익숙한 화면들을 벗어나 익숙한 것들을 배신하고, 상식을 깨면서 보이는 이미지들은 비어있는 무대로 스태프들이 무대 장치를 옮기고, 악기를 전하는 모습이다.
카메라는 멀리서 고정한 상태로 전체를 조망한다. 그게 대수냐는 듯 카메라는 더 단단히 고정된다.
영화는 <What A Day That Was>가 흐르는 장면에서 멤버들의 그림자로 무대 배경을 장식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림자의 크기가 노래에 맞춰 변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이때 드미는 전체 프레임을 보여주지 않고 조명으로 분위기가 달라진 멤버들의 얼굴을 비춘다. 조명에 익숙해질 때쯤 카메라는 다시 객석 뒤로 빠지며 멤버들의 그림자로 무대 장식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조명의 활용, 카메라의 무빙이 일반 실황 영화들과 결을 달리한다. 무대의 효과와 멤버들의 움직임을 극적으로 연출하는 동선이 아닌 때로는 비워두고 때로는 관조함으로 무대에서 일어나는 음악과 포퍼먼스의 에너지가 극대화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촬영 감독인 크로넌웨스가 <스탑 메이킹 센스>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미덕은 미니멀리즘이다. 스킬로 만들어낸 장면들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를 담고 개입이 아닌 관조로 지켜볼 때 대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다. <heaven>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천국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말처럼 영화에서 카메라는 묵묵히 기록한다. 그들의 무대에선 모두가 주인공이다. 누구 하나 소홀히 비추지 않는다. 팍팍한 세상에 그들이 꿈꾸던 이상은 편견 없이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카메라는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들 최고의 무대가 빌드업되는 과정을 느리게 담았다. 그 공연은 가장 영화적인 무대였고 이제 기억 속 추억의 밴드지만 그 음악만큼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