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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13 도강록 갑술일 05]

실학파 사상의 핵심인 '이용후생'

by 백승호

1. 한 번 이 책문을 들어서면 바로 청나라 땅이다. 고향 들녘의 소식은 이때부터는 끊어지는 것이다. 울적한 마음에 동쪽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천천히 책문 안으로 들어갔다. 길 오른편에 풀로 지붕을 얹은 세 칸 관청 건물이 있다. 문상어사와 봉성장군으로부터 아역衙譯에 이르기까지 자기 직급에 따라 배치된 의자에 앉아 우리 일행의 예를 받을 차비를 하고 있다. 수역首譯 이하 하인들도 팔짱을 끼고 근엄한 체하며 주욱 서 있다.

一入此門, 則中土也。鄕園消息 從此絶矣。悵然東面而立良久。 轉身緩步入柵 路右有草廳三間, 自御史將軍下至衙譯, 分班列椅而坐, 首譯以下拱手前立。


2. 사신의 가마가 그 앞에 이르면 마두가 갑자기 가마꾼들에게 가마를 멈추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면 언뜻 가마를 멈추고 멍에를 벗기는 척하다가 재빨리 달려서 빠르게 지나간다. 부사와 서장관이 탄 가마에서도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지나간다. 이처럼 서로 도와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이 우스워 배꼽을 잡는다. 비장과 역관은 모두 말에서 내려서 걸어 지나갔는데, 어의 변계함ト季涵 한 사람만 말을 탄 채로 청나라 관리들 앞을 그냥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使臣至此, 馬頭叱隷, 「停轎」 乍脫驂若將卸駕者, 因卽疾驅而過。 副三房亦如之, 有若相救者, 令人捧腹。 裨將譯官, 皆下馬步過, 獨卞季涵騎馬突過


3. 그때 초막 청사의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되놈 하나가 갑자기 조선말로 큰 소리로 심하게 욕을 해댄다.

“이런 무례한 놈을 봤나! 여기 어르신들이 앉아 계시는데, 외국의 하급 수행원 주제에 어찌 감히 이렇게 당돌한 짓을 하느냐? 저런 놈은 사신께 얼른 고해 볼기짝을 내리쳐야 마땅하겠다.”

목소리는 비록 거세게 포효하는 듯했지만, 혀는 뻣뻣하게 굳어 목이 쉬어 소리가 맑게 나오지 않았다. 마치 젖먹이가 옹알거리듯 말했고, 술에 취한 자가 주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조선 사신을 수발하는 청나라 역관인 호행통관護行通官 쌍림雙林라는 사람이라 한다. 우리 수역首譯인 홍명복이 얼른 대답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의 어의御醫 태의관太醫官입니다. 초행길이라 실정을 잘 몰랐소. 게다가 태의관은 나라님의 명을 받들어 정사 대인을 보호하는 처지요. 정사 대인께서도 감히 함부로 하지는 못하지요. 여러 어른께서는 황제께서 우리 조선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마음을 잘 살펴서 잘못을 심하게 따지지 마시고, 대국의 도량으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면 좋겠소.”

그러자 그들은 모두 머리를 끄덕이면서 빙그레 웃으면서 "그래, 그래." 말했다.

다만 쌍림은 아직도 눈을 부릅뜨고 목청을 높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모양이다. 수역이 나를 보고 눈짓으로 그만 가자고 한다. 길을 가다가 변계함을 만났는데 그가 내게 말했다.

“허 참 큰 욕을 봤네.”

내가 맞장구쳤다.

“볼기 맞고 혼쭐 날 뻔했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크게 한바탕 웃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어가면서 여기저기 구경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감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末坐一胡, 忽以東話高聲大罵曰, 「無禮無禮。 幾位大人坐此, 外國從官, 焉敢唐突。 遄告使臣, 打臀可也。」 聲雖嘶哮, 舌强喉澁, 如乳孩弄嬌, 醉客使癡。 此卽護行通官雙林云。 首譯對曰 「這是弊邦太醫官。 初行未諳事體。 且太醫, 奉國命, 隨護大大人, 大大人亦不敢擅勘。 諸老爺仰體皇上字小之念, 免其深究, 則益見大國寬恕之量。」 諸人皆點頭微笑曰 「是也是也。」 獨雙林視猛聲高, 怒氣未解。 首譯目余使去, 道逢卞君。 卞君曰 「大辱逢之。」 余曰 「臀字可慮。」 相與大笑, 遂聯袂行翫, 不覺讚歎。


4. 책문 안의 인가는 20~30 호밖에 되지 않았지만, 집채는 모두 으리으리하면서도 차분했고 높으면서 널찍널찍했다. 그늘진 버드나무에 술집 깃발인 푸른 주기酒旗 하나가 내걸려 있었다. 변 군과 함께 들어갔는데 집안에는 조선 사람들이 그득했다. 맨발 차림에 대머리인 자가 의자에 걸터앉아서 술집 사람을 큰 소리로 부르다가 우리를 보고는 모두 얼른 피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화가 난 주인이 변 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리에 어두운 벼슬아치가 남의 장사에 잘도 훼방을 놓는군."

대종戴宗이 주인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형님, 역정 낼 것 없소. 두 어르신은 한두 잔만 자시고 곧 일어나실 것이요. 저들이 어찌 이렇게 불편한 자리 옆에 앉아 있을 수 있겠소. 그냥 잠시 서로 피해 준 것일 뿐이요. 곧 돌아와서 이미 먹은 것은 술값을 낼 것이고, 아직 덜 마신 것은 온갖 포부를 늘어놓으면서 즐겁게 마실 테니, 형님은 마음 놓고 우선 넉 냥 술이나 따라서 오시오."

주인은 온 얼굴에 웃음을 가득 지으면서 말했다.

“아우님은 예전에도 보지 않았소? 저 망나니들은 혼란한 틈 속에서 다들 공짜로 처먹고는 생트집 부리는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술값은 어디에서 받을 수 있겠소.

"대종이 말했다.

"형님, 염려 마시오. 두 어르신이 드시고 곧 일어나시면, 이 동생이 이놈들을 모조리 다시 주점으로 몰고 와서 술을 사셔 마시게 할 테니."

주인장이 말했다.

"좋소, 두 분이 함께 넉 냥으로 하실 것인지 아니며 각자 넉 냥으로 드실 것인지?."

대종이 말했다.

"따로따로 넉 냥씩 따라 주시오."

곁에 있던 변 군이 욕을 하면서 말했다.

"넉 냥 술을 누가 다 마신다는 말이냐?"

대종이 웃으면서 설명했다.

"넉 냥이란 술값이 아니라 술의 무게를 말하는 겁니다."

柵內人家, 不過二三十戶, 莫不雄深軒鬯。 柳陰中挑出一竿靑帘, 相携而入, 東人已彌滿其中矣。 赤脚突鬢, 騎椅呼呶, 見余皆奔避出去。 主人大怒指着, 卞君道「不解事的官人, 好妨人賣買。」 戴宗撫其背曰, 「哥哥, 不必饒舌。 兩位老爺, 略飮一兩杯, 便當起身, 這等�魀, 那敢橫椅。 蹔相回避, 卽當復來。 已飮的, 計還酒錢, 未飮的暢襟快飮, 哥哥放心。 先斟四兩酒。」 主人堆着笑臉道, 「賢弟, 往歲, 不曾瞧瞧麽。 這等�魀於鬧攘裡, 都白喫一道烟, 走了罷那地覔酒錢。」 戴宗曰 「哥哥勿慮。 兩位老爺飮後卽起, 弟當盡驅這廝回店賣買。」 店主曰 「是也。 兩位都斟四兩麽。 各斟四兩麽。」 戴宗道 「每位四兩。」 卞君罵曰 「四兩酒誰盡飮之。」 戴宗笑曰, 「四兩非酒錢也, 乃酒重也。」


5. 탁자 위에 쭉 벌여 놓은 술잔은 한 냥 들이부터 열 냥 들이까지 제각기 크기가 다른 그릇이 있었다. 모두 놋쇠를 만들 때 넣는 아연인 유납鍮鑞으로 만든 것이라 은과 비슷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넉 냥 술을 시키면 바로 넉 냥 들이 잔에 부어주었다. 술을 사는 사람은 술의 양이 많은지 적은 지 다시 헤아려 볼 필요가 없다. 술을 파는 방법이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편리했다. 술은 모두 백소주인데 맛은 그리 썩 좋지 않다. 술은 마시자마자 바로 취했고, 돌아서자마자 금방 깬다.

가게에 물건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둘러보니 모든 물건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다. 한 가지 일이라도 구차스레 대충 해 놓은 법이 없다. 어느 물건 하나도 아무 데나 어지럽게 내버려 두는 모습이 없다. 심지어 소 외양간이나 돼지우리일지라도 모두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해 두었다. 땔감 쌓아놓은 장작더미나 똥거름 더미까지도 섬세하고 곱게 정리되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其卓上列置斟器, 自一兩至十兩。 各有其器, 皆以鍮鑞造觶, 出色似銀。 喚四兩酒, 則以四兩觶斟來。 沽酒者更不較量多少, 其簡便若此。 酒皆白燒露, 味不甚佳, 立醉旋醒。 周視鋪置, 皆整飭端方, 無一事苟且彌縫之法, 無一物委頓雜亂之形。 雖牛欄豚柵, 莫不疎直有度, 柴堆糞庤, 亦皆精麗如畵。


6. 아아, 이렇게 정리정돈 한 뒤에야 비로소 만물을 이롭게 잘 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을 이롭게 써야 백성의 삶도 두터워질 것이고, 백성의 삶이 두터워진 뒤에야 백성의 덕성도 바르게 될 것이다. 만물을 이롭게 쓰지도 못하면서 백성의 삶이 두터워지는 것은 아주 드물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고 부족하면 어찌 백성들이 바른 덕을 지닐 수 있겠는가?

정사의 행차는 이미 숙소로 잡은 악鄂 씨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 악씨는 키가 일곱 척이다. 성격이 호방하면서도 건장했고, 매섭고 사나워 보인다. 그의 모친은 연세가 칠순은 가까이 되어 보였다. 머리에 꽃을 가득 꽂았고 눈썹과 눈이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웠을 자태를 짐작할 수 있고, 자손들도 많다고들 한다.

嗟乎, 如此然後始可謂之利用矣。 利用然後可以厚生, 厚生然後正其德矣。 不能利其用而能厚其生, 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正使已入鄂姓家, 主人身長七尺, 豪健鷙悍, 其母年近七旬, 滿頭揷花, 眉眼韶雅, 聞其子孫滿前云。


[해설]

연암이 말하는 이용후생과 정덕의 의미

1. 공자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이상 사회, 즉 대동사회를 지향했다. 이는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공자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인의’, 곧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덕이라 보았다. 요컨대, 공자의 인은 “잘 살게 하는 것”, 즉 모든 사람의 삶을 살리는 데 있다. 하늘과 땅이 생명을 살리듯, 사람의 덕도 타인을 잘 살게 하는 능력에 있다.


2. 맹자는 이러한 공자의 인을 계승해 왕도정치여민해락이라는 실천적 개념으로 확장했다. 왕도정치는 인의에 바탕을 둔 덕치(德治)로, 백성을 살리는 정치다. 이를 위해 맹자는 평화와 민생 안정을 중시하며, 조세·경제·교육 등 정책 전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무항산이면 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이라 하여,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이 인간의 도덕적 삶의 전제임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의 기본소득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일정한 생계 기반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도덕적 판단과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맹자의 여민해락(與民偕樂) 사상은 정치적·경제적으로도 깊은 함의를 지닌다. 이는 ‘함께 즐기는 것’, 즉 공동체적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독락(獨樂)과 대조된다. 기업이 이윤을 독점하며 지적재산권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는 독락의 예다. 그러나 지식을 공유하여 인류 전체의 건강과 안녕에 기여하는 백신 특허 면제 정책은 해락(偕樂)의 정신에 가깝다. 여민해락은 단지 이상적 구호가 아니라, 공유와 협력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증진시키는 현실적 가치다.

정치적으로도 여민해락은 민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며, 정치의 정당성은 국민의 여론과 지지에 달려 있다. 정치가는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다수와 함께 가는 정치, 즉 여민해락의 정치를 해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여민해락은 공유경제로 구현될 수 있다. 대량생산과 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때로는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를 초래한다. 그러나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대안을 낳았다. 물론 법적 책임과 윤리적 문제는 존재하지만, 공유의 장점을 극대화하면 지속가능한 경제로 나아갈 수 있다.


3. 『서경』 「하서」에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民惟邦本 本固邦寧), 세종대왕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것이 백성의 하늘이다”(民惟邦本 食爲民天)라 하였다. 이는 정치가 여민해락의 정신으로 이루어질 때, 백성의 지지와 국가의 안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서경』 「대우모」(大禹謨) ‘정덕이용후생’을 강조한다.

우가 말했다. “황제여! 유념하십시오. 덕만이 오직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으며,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불 물 쇠 나무 흙 곡식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덕을 바르게 하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텁게 하는 것을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禹曰: 於! 帝念哉! 德惟善政, 政在養民. 水火金木土穀, 惟修 正德利用厚生惟和. )라고 했다. 『서경』 정덕正德이 이용利用과 후생厚生보다 앞에 나온다. 하지만 연암은 이용후생을 먼저 하고, 정덕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연암의 열린 사고가 잘 드러난다. 백성의 먹고사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는 허례허식과 북벌론이라는 명분론에 치우친 가짜 지식인이 아니라 본질과 실질을 중시하는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다.


4. 백성이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그 위에 도덕과 윤리가 세워질 수 있다는 연암의 이용후생론의 핵심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오히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해락보다 독락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양극화는 독락의 사회를 가속화하며, 상위층은 자원을 독점하고 하위층은 배제되는 구조를 낳는다. 그러나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하위계층을 보살피고 공적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공동체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이는 헌법 제119조에도 잘 드러나 있다. ①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지만, ②항에서는 소득 분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를 위한 국가의 조정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연암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자유시장경제 속에서도 사회권을 보호하고, 후생을 함께 도모해야 진정한 정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용후생과 정덕의 조화는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기본 방향이다. 연암이 꿈꾸던 사회, 그리고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는 바로 모두가 잘 사는 사회, 함께 누리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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