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임자(適任者)

by 이종열

500년 전, 뜨거운 쇳물 속에서

연꽃 잎맥으로 태어난 활자와

그 틈을 메우던 고단한 죽선 하나

가치를 모르는 눈에는 땔감이었고

뜻을 모르는 손에는 먼지였으나

유물은 스스로 제 주인을 골라 길을 나섰다

전란의 불길도

세월의 풍화도

이 문장을 읽어낼 안목 앞에서는 멈추었다

그대, 아니면 누가

이 침묵의 증거를 깨우리요

시기하는 자들의 복통은 땅에 묻고

그대는 장인의 지문을 읽는 선지자가 되어

조선의 심장을 오늘로 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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