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을 나가기 싫은 마음이 꿈지럭대다 자기네들끼리 증식을 하더니 급기야 나를 집어삼킨다.
따알~~
엄마 꼭 학교 가야 해?
으음.. 안 와도 되긴 하는데
내가 좀 서운하겠지?
으... 섭섭할 거란마음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이야.
나의 제일 약한 곳을 후벼 판다. 어후 가시내.
아들 넌 보나 마나 꼭 와야 한다고 하겠지...
그래도 물어보자.
아드을~~
엄마 꼭 수업 가야 해?
응?
오지 마.
쿨하게 넘긴다. 이게 웬 일?
내가 낳았지만 속은 알 수가 없으니 진짜 마음을 알 도리가 없지만 분명, '학교에서 오라는데 쫌 오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을 텐데 으...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오히려 더 마음이 쓰인다.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 건 차치하고 참관 수업 시간이 문제였다.
아들과 딸의 예정된 참관 수업 시간이 둘 다 3교시다. 10시 40분에서 11시 20분. 고작 40분을 보겠다고 화장하고, 옷 입고, 구두 꺼내 신고, 운전을 해서,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가서 수업을 듣는다고오?
아...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다. 뺀질뺀질 무늬만 엄마인 나는 안 갈 이유만 5만 8천 개를 지어내는 중이다.
거기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나는 가수다...가 아니라 나는 길치다. 큰 딸이 6학년인데 6년을 다닌 학교를 못 찾아간다는 게 아니라 학교 내부를 몰라 헤맬 거라는 거다.
학교 증축 공사로 인해 건물이 본관, 신관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딸아이는 본관 5층, 아들은 신관 5층에 반이 있다. 그러니까 2층에 연결된 통로로 두 건물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둘 다 5층인 게 문제였다.
딸아이가 있는 본관 건물 5층을 올라갔다가 아들아이 보러 신관에 가려면 우선 2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5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다리가 아프다. 운동화가 아니라 힐을 신을 거라서 벌써 다리가 저릿해져 오는 것 같다.
게다가 아까도 언급했지만 초등 수업은 1교시가 고작 40분 밖에 안 된다. 한 아이당 20분만 봐야 한다. 중간에 나의 이동시간을 빼면 한 아이당 18분?
대충 이런 사정을 말했더니 아들이 누나한테 다 몰아주겠단다. 자기한텐 오지 말란다.
얘가 언제 이렇게 의젓해졌지. 다행이다. 딸한테 올인하러 가자.
다음 날.
나는 정장까진 아니어도 얌전한 옷을 꺼내 입고, 안 하던 화장인 마스카라도 하고, 아이라이너도 하고, 머리도 말고, 힐도 꺼내 신었다. 아... 벌써 힘들다. 가지 말까.
혹시나 내가 맘이 바뀌어 학교에 안 올까 불안해하던 눈빛의 딸아이가 생각나 힘을 내 본다. 그래. 난 엄마니까. 아자아자. 끙차.
아들한테 먼저 갈 마음을 먹고 힘들게 5층을 걸어 올라왔는데 엉? 왜 딸아이가 보일까. 아... 여기가 본관이구나.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헤멜 줄 나는 미리 알았다. 길치인 나를 나는 너무 잘 알아서 헤맬 걸 미리 알고 이미 일찍 서둘러 도착했으니 상관없다.
멀리서 날 발견한 딸아이는 아침에 등교 전까지 엄마 얼굴을 봐놓고는, 날 보자마자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가 제 아비를 만난 것 마냥 반가워하며 뛰듯 걸어와 날 안아준다.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이라면 어젯밤에 최종적으로 확인했던 "엄마 꼭 학교에 가야 해?" 마지막 질문은 하지 말걸 후회가 된다.
딸아이의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여러 유혹을 잘 물리치고 아주 잘 왔다 싶다. 막둥이도 그럼, 날 보면 무척 반가워할 텐데 싶은 마음에 좀 더 일찍 기쁨을 주고 싶어 동생 반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딸에게 물었다. 친절한 딸내미의 설명을 듣고 "이따 봐." 손을 흔들며 2층으로 내려와서는 옆 건물 5층으로 올라갔다. 4학년 아들 반이 보인다. 금세 아들의 뒷모습을 찾아냈는데 살짝 보이는 옆얼굴이 좀 시무룩해 보인다. 친구와 무슨 일 있나 싶은데 나와 눈이 마주친 아들. 그러더니 환히 웃으며 내게 달려와 말을 꺼낸다.
엄마한테 배신당한 줄 알았어!
엥? 무슨 배신?
이놈 보소. 안 와도 된다고 쿨하게 말할 땐 언제고 하나 둘 친구 엄마, 아빠들이 보이니 내심 자기만 엄마가 안 오는가 싶어 조마조마했나 보다.
곧 수업이 시작되었고 아들의 담임선생님께서 동화를 읽어주신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동화가 끝나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주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 우리 딸아이는 PPT를 이용한 발표까지 한다는데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다가 딸아이가 열심히 준비한 발표를 놓칠 것만 같다. 아들에게 조용히 입모양으로 "엄마, 누나한테 간다~" 하고 알려주고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왔다. 혹시나 딸아이의 발표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2층으로 걸어 내려왔다. 그리곤 다시 옆 건물로 건너가 5층으로 오른다.
드디어 딸아이 반. 숨이 가쁘다. 4학년과 6학년은 고작 2년 차이지만 초등학생의 2년 차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가 느껴진다. 한 학생의 발표가 곧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딸아이를 호명한다. 와... 까딱했으면 우리 딸 발표를 못 들을 뻔했네. 마이크까지 들고 볼이 발그레 상기된 표정으로, 준비한 발표를 잘 해내는 걸 열심히 듣고 나니 부지런히 걸어 올라온 보람이 있다. 아, 이런... 아들의 발표도 궁금해진다. 결심했다. 다시 아들 반으로 가기로. 다시 2층으로 내려가 또 5층으로 올라갔다. 다리가 후달린다.
와... 내가 이리 모성애가 강했던가. 그럴 리가 없는데.
헉헉 거리며 반에 도착하니 아직 학생들은 발표할 내용을 제자리에 앉아서 작성 중이다. 휴우, 다행히 놓치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등한시했으면 아직도 가쁜 숨이 고르지가 않다. 다둥이 학부모님들은 매년 이 힘든 걸 해왔다는 건가. 정말 존경합니다. 부모님들!
하나하나 손들고 발표하는데 선생님께서 번호를 호명하지 않으니 아들은 초반에 손을 열심히 들다가 어느새 손을 들지 않는다. 에이... 선생님~ 번호 1번부터 끝 번호까지 한 명씩 모두 다 발표를 시키셨어야죠... 발표도 안 하는 거면 괜히 헉헉대며 왔네... 허무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집에 갈 시간.
평소 안 신던 힐을 신고
평소 안 하던 운동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계단 5층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더니
다리가 호달호달 후들후들 부들부들 떨린다.
으... 참관수업 두 번만 했다간
이 어미 골로 가긋다. 욘석들아.
불이야 불.
발에 불난다. 요놈들아.
이 어미의 참관수업 날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말거라.
참! 중간에 한 학생이 손을 높이 들더니 선생님께 큰 소리로 불쑥 이야기를 꺼낸 게 떠오른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안 왔어요."
목소리가 공허했다. 담임선생님도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학교에 오신 부모님들께 "부모님, 사랑해요."라고 우리 해볼까요? 하는 이야기에 반사적으로 손을 든 아이가 한 말에 나를 포함해서 교실 뒤에 주욱 서 있던 학부모님 모두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버렸다.
참관수업을 줌(온라인)으로 하면 안 되는 걸까?
나처럼 마음만 먹으면(물론 마음먹기 많이 힘들었지만) 학교에 갈 수 있는 엄마들은 상관없지만, 회사를 가야 한다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는 엄마, 아빠들은 어쩌나. 못 가서 미안한 마음과 안 오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우리 아이들 서운한 마음도 좀 헤아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