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안전한 세상이기를...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려고 마음먹으니 신발이 마땅한 게 없다. 더운 걸 딱 싫어하여 이른 여름부터도 늘 샌들을 신었어서 오래 걸어야 할 오늘 같은 날 마땅한 운동화가 없는 걸 알고는 신발장을 뒤적거리다가 딸아이 운동화를 발견했다. 발볼이 넓은 딸아이가 얼마 전에는 간간이 내 운동화를 겸해 신고도 다니더니 이제는 내 발 사이즈를 넘어 무려 250을 신게 되는 날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원래 235 사이즈와 240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런 내 신발을 이제 딸아이가 신기에는 오히려 작아져 무리인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다행히 남편이 딸아이 신으라고 최근 원플러스 원인 운동화 두 켤레를 사다 놓았었고 마땅한 신을 거리가 없던 나는 딸아이의 남아 있는 여유 신발을 꺼내 한 번 신어 보다가 살짝 낙낙한 느낌이지만 오늘은 이것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요새 일하는 것에 치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매우 줄어들었었다. 지난주 아이들과 인천 소래포구도 다녀온 남편. 아무래도 아이들과 자신이 집에 있으면 시끌시끌하니 내가 조용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준 거였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렇게 내 시간을 만들어 준 남편에게 고마움도 잠시, 열심히 일을 하는 중 띵동 띵동 카톡이 울리고 아들 딸의 사진들이 전송되어 왔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사진, 조형물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서 있는 사진, 각종 사진들을 보내온 남편의 배려로 나는 거기엔 없지만 마치 함께 한 기분이 느껴졌다. 곧이어 같이 가도 참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 어쩌랴 열심히 내 할 일에 집중을 했었다.
그러기를 이 삼 주 지나 남편이 엊그제 조심스레 시간을 낼 수 있느냐 물어왔었다. 몇 주를 주말마다 아이들하고만 함께 하다 보니 아내가 없는 가족 나들이가 못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마침 나도 딱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상황이긴 하다. 누굴 위해 나는 이렇게 돈 버는 데 열심인 걸까. 예전 TV에서 보았던 드라마 대사도 떠올랐다. 왜 아빠는 늘 우리랑 같이 못하고 회사만 가? 하는 아이들의 볼멘소리. 그땐 당연히 나도 그랬었다. 아빠가 너무했네. 아이들은 품 안의 자식인데 뭐 그리 돈이 중요하다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매번 무시하는 거야? 하고 말이다.
그런데 요새 내가 그런 아빠(?)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출근 퇴근이 있는 업이라면 명확히 쉬어야 할 때가 구분이 될 텐데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재택이란 장점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오히려 재택의 단점들이 나를 옭아맨다. 일에 매달릴수록 늘어나는 통장잔고가 눈에 보이는데 욕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인 이상 그걸 무시하고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졸린 나를 채찍질하기도 하고, 켜지 않는 TV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했으며, 잠시 일과 관련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다가 흘러간 시간을 보고 '헉, 이러면 돈이 얼만데~!'라는 생각으로 모두 돈과 연관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따라나서기로 한 것이다. 참 오랜만의 나들이다. 딸아이가 찰싹 붙어 나의 팔짱을 끼고는 엄마랑 나들이 정말 오랜만이다~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본 아들도 질세라 서로 내 손을 잡고 걸으려는 아이들을 보며 참 미안해지고 참 흐뭇해지는 시간이다. 욘석들, 몇 주 동안 내가 없는 나들이었지만 엄마인 나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구나. 엄마가 없던 빈자리를 느꼈으며 함께 하는 이 시간을 행복해 하긴 하는구나. 오늘도 일을 할까, 나들이에 합류를 할까 하고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까지 잠시나마 갈등한 내가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결정을 잘 내렸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 같이 놀러 갔던 기억이나 같이 놀던 친구들 이름을 한 번씩 물어보면 기억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만큼 불필요하다 느끼는 정보들은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건지, 이럴 거면 어릴 적 괜히 힘들게 데리고 놀러 갔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오늘도 그럼 놀러 간 걸 기억 못 하려나.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가? 하다가 뭐 어떤가 싶다. 나의 기억 속에 남으니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몸짓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 내 기억 속에 남으니 그걸로 족하다 싶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또 조마조마하다. 행여 발이 미끄덩하고 삐끗하여 물에 빠질까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즐거워하니 되었다. 자신의 몸 자신이 잘 추스르겠지 하며. 문득 튼튼한 징검다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 스스로 건너야 하지만 발로 디뎠을 때 튼튼하여 안정감을 주는...
그나저나 어릴 적엔 내가 먼저 앞서서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는 날이 와버렸네.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저 위에 서 있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순수함과 해맑음이 참 오래가면 좋겠다. 살면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커 나가면 참 좋겠다.
하고 서랍의 글을 꺼내어 발행 후 마치려고 하였는데
어젯밤 이태원 핼러윈 사태를 보고 내가 내 눈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친구가 보내온 기사에 눈을 고정하면서 그마저도 핼러윈의 연장선상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켜 믿기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지긋지긋한 3년 동안의 창살 없는 감금생활 같던 코로나가 지나고 실외에선 마스크도 잘 안 쓰고 다니니 얼마나 해방감이 느껴졌을 것이며 핼러윈이라는 특성상 축제 분위기로 또 얼마나 달뜬 기분들이었을까 싶은 생각이다.
마녀 복장, 뱀파이어 복장 등을 하고 얼굴에 분장을 스윽스윽 재미나게 한 후
엄마~ 나 이태원 다녀올게~
했던 자녀였다면...
그 이후는 너무 안타까워 글을 잇지 못하겠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라 간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그저 운에만 맡겨야 하는 것인지 정말 혼란스럽다.
이 사고는 처음부터 막을 수 없는 사고였을까.
왜 우리는 항상 사고가 발생한 후 그제야 다음번에는 같은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한다며 뒤늦은 다짐을 하는가.
이틀 전 개통한 딸아이 핸드폰.
여태껏 핸드폰은 절대 안 된다고 강경하게 밀어붙였었다. 어른들도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다가 분수에도 빠지고 맨홀에도 빠지고 하는 등 사고가 빈번한데 어린 너희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핸드폰 관련한 범죄들 (이를테면 온라인상에서 만난 친구를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단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여러 명이 한 아이를 폭행했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범죄 등)을 보고 있자면 핸드폰이란 것을 갖고 있으면 범죄에 더 노출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최근에 딸아이가 친구와 약속을 하고 만나서 맛있는 걸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었다. 소박하면서도 초등 5학년이면 이제 친구가 세상 좋을 나이지 하는 수긍이 가는 바람이었다. 한데 핸드폰 없이 집 밖을 홀로 보내기란 마음이 영 내키지가 않아 최대한 늦게 핸드폰을 개통해 주기로 한걸 깨고야 말았다.
방금 아이는 친구를 만난다고 머리를 감고 옷 중에 예쁜 옷을 골라 입고 용돈을 챙겨 밖을 나섰다.
"다녀올게요~~~"
외치며...
마음이 좀 이상하다. 매번 가족끼리의 외출을 하다 오늘이 처음 딸아이 단독 외출인 것이니.
더군다니 어제 그 핼러윈의 영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위험한 데는 가지 말고..."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점심 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올 건데 뭐가 위험해~ 엄마는~~ ^^"
마음 편케 아이를 키우고 싶다.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