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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ul 27. 2024

만보 어플이 팔 운동을 시키네

이게 머선 일?

자고로 만보기는 허리춤에 차고 열심히 걸어 걸음수를 재는 것이렷다.


하지만 나의 만보기는 걸음수가 아니라 팔 흔듦 수를 센다.


그렇다. 나는 농땡이 중이다.



자타공인 집순이는 하루에 1천보도 겨우 걷는 터라 1만보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어 하루에 5천보만 걷자 마음먹었다. 휴대폰 어플을 열어 캐시워크를 다운로드하고 걸음수 올라가는 재미로 운동도 하고 건강도 챙기자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선 장마가 한몫 단단히 했고 나의 귀차니즘은 두 몫을 옹골차게 해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은 이리 슬라이드, 저리 슬라이드, 좀처럼 걸음수는 늘지 않는다.



후... 오늘 또 5천보는 언제 다 채우나.

잔말 말고 열심히 흔들어나 보세.



처음부터 이렇게 팔 운동을 했던 건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면 그래도 좀 걸을까 싶어 5명 모집의 팀원으로 "모두의 챌린지"라는 곳에 과감히 들어갔다가 이틀간 인증을 안 했다는 이유로 세 군데에서 강퇴당했다. 아무도 보는 이 없건만 강퇴라는 단어에서 오는 뻘쭘함은 상당했다. 이젠 좀 제대로 해 봐야지, 마음 굳게 먹고 다른 곳에 들어가 다시 한 자리를 꿋꿋이 차지했다. 더러 인증을 안 하는 사람들도 생기니 보통은 회원들끼리 돌아가면서 하루씩 빠뜨리기 일쑤던데 이곳은 희한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은 절대 이 5천보 인증을 빼먹지를 않는 거다. 나도 이를 악물고 일주일간 5천보를 꼭꼭 걸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 걷지 않을 핑계가 자꾸 생겼고 아파트 계단이라도 오르내리자 했지만 내겐 너무 과한 운동이라 꾸준하긴 틀렸구나 하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냥 내가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내 포기로 인해 다른 회원에게 피해를 주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내가 목표걸음수를 모두 채워야만(다른 회원들은 언제나 모두 일찌감치 인증을 마쳤기에) 모든 회원에게 보너스 포인트가 돌아가는데 내가 인증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 보너스 포인트를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보너스 포인트라는 것은 어플에서 제공하는 것이기에 큰 금액일 수 없고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매우 소소하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보너스 포인트가 큰 금액이어서라기보다는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는 느낌을 방해하는 느낌이 든다. 인증과 함께 오늘 하루도 미션을 클리어했다 뭐 그런 느낌?


그리고 또 하나, 멤버들이 나를 봤을 때 내가 좀 아슬아슬해 보인다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든다면 나를 강퇴시킬 만도 한데 또 그러지 않고 방장과 나머지 회원들은 나를 믿어준다. 그러니 나도 더욱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착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휴대폰 어플 만보기의 걸음수를 자동으로 올려주는 "흔들어주는 기계(?)"를 보고 혹하기도 했지만 그것까지는 구입하지 말자 했다. 다리 운동이 아니라 팔운동이어서 그렇지 어쨌든 운동은 운동이니까.


그러기를 벌써 석 달 하고도 열흘이 훌쩍 넘었다. 내가 속한 팀의 네 명의 회원은 장대비가 내려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돼도 절대 이 인증을 빼먹지 않는다. 아마도 이 기세라면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허리케인이 있는 날에도 5천보 인증은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걷는 걸까. 나는 이렇게 팔이 아픈데.



허리케인도 아랑곳 않는 멤버들의 걷기 운동은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밖에 나가 걷기 여의치 않을 땐 집안일을 하는 중에라도 다만 몇 걸음만이라도 오르라고 휴대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항상 열심히 넣고 다녀보지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방향을 트는 것은 안 쳐 주는 건지 아예 밖을 좀 나가라는 말인지 걸음수는 오를 생각이 없고 완벽히 제자리걸음이다.   


마음먹고 나가서 걷는 게 버거운 나는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열심히 팔을 흔드는데.

만보기 어플 때문에 이렇게 팔이 아픈 게 맞는 건가.

그냥 내가 알아서 이곳을 퇴장할까 싶다가도 혹시 때로는 정직하게 걸어서 5천보를 채우는 날은 매우 뿌듯할 것 같기도 해서 내 발로 이곳을 나가기가 싫다.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나를 제외하고 다른 멤버들은 모두 5천보를 항상 인증하기에 나만 잘하면 되는 이 좋은 곳을 탈퇴하고 싶지가 않은 마음이 든다.




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한결같이 5천보를 꼭 채우는 사람들.

나도 그들이 믿어주는 만큼 항~~ 시 5천보 인증을 빼먹지 않으려 한다.

팔을 너무 흔들어 조금 뻐근하긴 하지만.



오늘도 밤 12시가 되기 전 겨우 5천보를 채웠다. 휴우, 다행이다.








엇, 가만! 혹시 나 말고 다른 멤버들도 죄다 팔 운동 중인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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