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찾기 프로젝트
학교가 드넓다. 점심시간에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다 돌면 축구, 농구, 배구 경기를 하는 학생들을 한 번씩 마주할 수 있다. 어느덧 두 달을 걸었는데 어느샌가 배구 토스 실력이 늘어난 학생들을 신기하게 보게 된다. 교실에서 어깨가 무거워 보이던 학생들도 점심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한쪽에서는 보드를 타는 학생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도 한다. 여기가 자율고였지 그때쯤 상기하게 된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학교도 좋았고 가족과도 화목했다. 누구보다도 엄마 아빠는 나를 믿어줬고 어떤 것이든 도전해 보라 말했다. 아빠는 좋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공부를 하라고 하거나,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저 사회, 수학 등 모르는 걸 항상 알려줬고, 아빠랑 뉴스를 보면서 세상을 알아간 것 같다. 그러나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입시에 쫓긴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나와 비슷하게 우리 학생들도 등급 앞에서는 예민해지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우리가 소도 아닌데 왜 9등급으로 매기냐는 말이 마음에 짐처럼 내려앉았다.
학생 때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건지, 학생들을 잘 대해주고 싶기 때문인지 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학생들이 지치지는 않을까, 성적표를 받고 실망하지는 않을까, 생활기록부를 잘 적어줘야 하는데 등의 생각을 많이 한다. 아마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하는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수업 내용에 대해 설문하기도 하고, 부탁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최대한 가능한 방법을 찾기도 한다. 이 호기심 많은 학생의 질문을 받으며 수업을 다섯 시간 정도 진행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다익스트라 알고리즘 설명해 주시면 안 되나요?” “선생님 수업 계속 듣고 싶어요” “파이썬으로 로그는 어떻게 구해요?” “와 이걸 어떻게 구현한 거예요. 파이썬 너무 신기해요” “정보 제일 좋아요” 등의 과분한 표현을 듣고 있으면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학생들의 살가운 표현이 가끔 낯설다. 그리고 밤을 새워서라도 생활기록부라도 잘 적어줘야지 생각을 하곤 한다. 초심을 잊지 말아야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보 교사나 정보 영재 교육원 강사가 꿈이었다. (기자가 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학보사를 해본 걸로 만족한다) 특히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아서 컴교를 희망하게 되었다. 희망하는 학과에 진학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신문사, 정보 교과 수업 대회, 우즈벡 교육봉사, 몇몇 대외활동 등 하고 싶은 건 많이 해본 것 같다. 24학점에 일반대학 계절학기까지 다니다가 슬럼프가 온 시기도 있었지만, 그 덕에 현재의 24 시수도 기시감이 들곤 하는 것 같다.
낯선 곳에 온 지 꽤 되었는제 주위 선생님들 덕분에 전주에 잘 적응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여기서 다녔으면 선생님들의 팬이 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잘 대해주신다. 감사하게도 전주 맛집을 열 곳이나 데려가셨다. 선생님들의 많은 지식과 경력에 내 부족함을 체감하기도 하고 아직 업무들에는 익숙하지 못하지만 이것저것 여쭤보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요즘 초심을 잃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변화하는 정보 교과에 끝없이 적응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곤 한다. 지나 보니까 꾸준히 노력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자극을 받다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속해있는 환경이 중요하고, 자신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많은 걸 배워가려고 한다.
내가 교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의 행동에 비판적일 수는 있어도 사람을 싫어해 본 적은 없다. 학생들의 좋은 면을 찾고자 하는 생각이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마음을 꾸준히 가지고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고 대하고 싶다. 내가 필요했던 한 마디들을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