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반짝
- YONG이 프라하에서 깨달은 것들
안녕하세요. 여러분.
2023 겨울편 첫 번째 편지로 인사드리게 된 YONG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셨나요?
한국은 많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 9월 20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요.
이 편지를 여러분들께 쓰고있는 지금까지 유럽의 진주, 프라하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4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저는 이 생소한 도시에서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MONDAY LETTERS에게 메세지 보내기
꼭 “혼자서” 잘 해내야 할까요?
제가 처음 프라하에 올 때 다짐한 건 딱 하나였습니다. “혼자서도 잘 하자.”
사실 제 인생의 모토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모든 일을 싹싹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잘 해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왜인지 모르게 그 편이 ‘어른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혼자서 많은 것을 잘 해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라하로 떠나는 마음도 똑같았죠. 혼자서도, 나를 아무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말을 쓰는 도시에서 앞으로의 시간을 잘 헤쳐나가야지. 그게 가장 첫 번째 목표였어요.
하지만 그게 꼭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더라구요. 큰 부침을 겪었습니다. 낭만만 가득한 유럽일 줄 알았는데, 결국 사람 사는 동네 다 똑같더라구요. 알고 있었지만, 더 뼈저리게 느낀 사실 - 타지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쉬운 일만은 아니였습니다. 특히 심리적 부침을 많이 겪었어요.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도 많았습니다.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이, 유독 많은 한인 관광객들이, 나만 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은 수업들이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죠. 제가 위안을 얻었던 노래 가사처럼 “아무도 나의 슬픔에 관심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때도 있었어요.
특히 11월과 12월 초 제 나름대로 고난의 시간을 많이 겪었는데요. 글쎄요, 조금 부끄럽지만, 하루는 제가 기말 대체 과제를 놓쳤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해당 과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프라하 구 시가지 스타벅스에서 몇 시간을 자책했어요. 하지만 자책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죠. 교수님께 구구절절 메일을 보냈습니다. - 최종 과제를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어떠한 기회라도 주시면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어서 잠시 수업을 못 따라간 순간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저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온 교수님의 답장의 첫 문장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There is no need to apologize.” 그리고 메일 중간의 한마디, “I remember you”. 글쎄요. 실제로 교수님이 저를 기억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수업에 잘 나가지 않았던 동양인 남학생을 정말 교수님이 기억하셨을까요? 저는 확신이 없습니다.하지만 교수님의 메일에서 적어도 저를 믿고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사과할 필요가 없고, 수업에 성실히 임해주었던 너를 기억하고 있다. 이런 메일을 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면 당연히 학점을 주겠다. 프라하에서의 남은 날들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저랑 교수님은 별 사이도 아니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교수님이 저를 믿고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이 다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부를 거듭한 끝에 1월 초에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마무리해서 제출했습니다. 23일 지각 제출이었어요. 하지만 교수님은 너무 훌륭하게 과제를 수행했고, 특히 특정 코딩 방식이 마음에 든다며 칭찬해주셨습니다. 학점을 이미 주었으니 확인해보라는 말씀과 함께요. 그제서야 알게 된 건데, 교수님은 이미 제가 양해를 구하는 메일을 보냈을 때 저에게 학점을 수여해주셨더라구요.
저도 인정합니다.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저는 프라하에서 혼자서 잘해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다시 떠오르는 생각은, 꼭 모든 걸 혼자서 잘 해내야 할까요?
세상에 외딴 섬처럼 혼자서 떨어져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 역시도 이 자리에 앉아있기까지 참 많은 선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내 친구들, 내 선생님들, 내 동료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물건들,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 영화들, 게임들, 픽션 속의 캐릭터까지도. 제가 여기, ‘유럽의 진주’에 앉아있을 수 있던 건 나를 생각해주고 아껴준 수 많은 마음 덕분입니다.
가끔은 자만했어요.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러운 마음 뿐입니다.
혼자서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다음부턴 안 그러면 되는 겁니다. 남들에게는 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왜냐면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왜 저에게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혼자서 잘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 마음을 다지며 많은 것들을 해내온 것도 사실이에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하지만 그 생각에 매몰되서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겁니다. 혼자서 못하면, 같이하면 됩니다.
불성실한 학생의 사정을 헤아려주는 교수님의 선의, 내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위로해주는 친구들의 마음, 그리고 늘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의 마음. 혼자서도 당연히 잘 해내는 저이지만, 이런 것들과 함께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생깁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12월 21일, 제가 지내는 프라하 카렐대학교 Faculty of Arts (이하 예술학부) 에서는 총기 사건이 발생했고 최소 20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 아래의 글은 최대한 덤덤한 마음으로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고가 일어난 건물은 카렐대학교 예술학부 건물입니다. 프라하의 명물인 프라하 성과 카렐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제가 프라하에서 소속된 학부의 건물입니다. 저는 예술학부 건물의 내부를 눈감고도 그려볼 수 있는데요. 범인이 4층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해당 범인이 카렐대학교 사람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4층에서 듣는 수업이 있는데, 4층에 올라가는 계단은 정말 비밀처럼 숨겨져 있으니까요. 그 건물을 자주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전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해당 건물에서 <Data Processing>과 <Czech for Beginner>라는 수업을 듣습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난 날은 목요일이었고… 다행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행히 해당 건물에 있지는 않았어요. 저는 예술학부에서 1-2분 떨어진 스타벅스에서 친구와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타벅스는 그 주 월요일에 오픈했었고, 내부는 아주 깔끔했고 풍선 장식이 곳곳에 걸려있었습니다. 제 차이티 라떼의 우유가 “Whole Milk”가 맞냐고 재차 확인해주던 직원은 아주 친절했습니다.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순간 스타벅스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창문 밖을 힐끔 힐끔 보거나, 직원들이 2층에 올라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습니다. 소란스럽네~ 싶었는데, 같이 있던 친구가 “너 예술학부 근처라며, 괜찮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처음에 주변에 행사같은 게 있어서 번잡하지 않냐는 뜻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였습니다. “예술학부 건물에서 Shooting이 일어났는데 괜찮냐”는 뜻이더라고요. 갑자기 정신이 팍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지, 여기 있는 게 안전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스타벅스 안에서 일단 대기했고, 곧 직원의 지시에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은 아주 혼란스러웠고, 경찰들이 도처에 깔려있었으며, 저는 최대한 빠르게 그 주변을 탈출했습니다. 평소의 프라하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였어요. 아주 먼 길을 돌아 돌아 먼 곳에서 트램을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도로에는 구급차와 사이렌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차들은 경찰에게 검문을 당했습니다. 트램은 줄지어 오느라 평소의 몇 배의 시간을 들여 기숙사에 도착했습니다.
재빨리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 좋지 못한 표정의 사람들, 소식을 접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웃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세상에 안개처럼 가득한 사이렌 소리.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작년 이태원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저는 신촌에 살고 있었는데요, 마침 서울에 놀러온 군대 후임이 할로윈이니까 이태원 가고싶다고 막 조르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완고히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으니 다음에 가자, 나는 사람 많은거 싫다고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가서 접한건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그 날 제가 조금만 덜 피곤해서, 이태원에 갔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프라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총격 사건이 하루나 이틀 더 일찍 일어났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정확히 제가 수업을 듣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제가 그 날 갖고싶던 예술학부 후드티를 사러 건물에 잠시 들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살고 죽는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걸까요. 죽고싶을 만큼 힘들다고 가끔씩 얘기하면서도 이런 일을 겪으며 다짐하는 것은 그래도 저는 너무나도 살고 싶습니다.
제가 죽으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슬퍼할테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도 제 생각을 하며 울테고,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저를 곧 잊을테고, 그리고 그 어떤 이유보다도 저는 더럽고 치사하고 세상에 슬픈 일이 많고 가끔은 외롭고 비참해도 그래도 저는 정말이지...
더 살고 싶고 하고싶은 게 많고 괴로운 것보다 더 많이 행복하고 싶고 실제로 그럴거고 웃고싶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고 내 마음에 있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셀 수도 없이 하고싶고 해야하는 것들,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이유보다도 저는 그냥 살고싶어요
정말 내일 죽을 수도 있겠죠.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의 세상은 정말 모든 게 달라보입니다.
앞으로 살면서 오늘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오늘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내 일을 열심히 하고 가능한만큼 즐겁게 놀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전하고 그래야지. 말 그대로,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저에게 소중한 여러분들도 죽지 마세요. 저는 밥먹다가도 슬퍼할꺼고 씻다가도 마음 아파할거고, 제가 지옥가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미워할겁니다. 여러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아돌아오라고 매일 매일 소리칠꺼고 속으로 욕하고 다시 욕할겁니다. 그러니까 죽지 말고 저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갑시다.
사건으로 떠난 친구들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프라하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는 1월 25일 한국에 돌아갑니다 !
얼른 제가 좋아하는 냉면을 먹고싶네요.
프라하는 한인들이 많고 한국인 관광객도 많아서
어지간한 한국 음식들은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냉면만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가자마자 제일 먼저 먹을 생각입니다.
그럼 다음주, MIN의 <분당, 반짝> 편도 기대해주시기를 바라며,
저는 넷째 주 수원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어 고마워요!
사랑을 담아,
YONG
MONDAY LETTERS에게 메세지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