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산만한 몽상가만이 할 수 있는 일

책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리

by 최선

우리는 지금 집중과 효율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간 관리 앱과 몰입의 기술, 생산성 향상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은 하루하루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정말 그것이 우리 삶을 깊이 있게 만들고 있을까?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저자 머리나 밴줄렌은 산만함, 게으름, 몽상 같은 단어들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창조적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집중만으로 창조적 사고에 닿을 수 없었던 이유는, 창조란 몰입의 끝에서가 아니라, 방황과 산만함이라는 여백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산만함을 일의 방해물로만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산만함이 단순한 방해가 아니라, 인간 정신이 본래 가진 확장성의 증거라고 말한다. 집중이 뇌를 좁히고 한 가지 목표만 향해 달려가게 한다면, 산만함은 우리의 사고를 이리저리 유영하게 한다. 니체가 호숫가를 산책하며 '영원회귀'를 떠올렸던 것처럼, 프루스트가 방황 끝에 기억의 기적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잃고, 멈추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길어 올렸다. 집중과 몰입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사유의 공간을 그들은 산책과 게으름, 산만함 속에서 찾았다.


저자는 이러한 산만함에서 태어나는 사유를 진화적 자산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본래부터 존재와 부재,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영국 인지과학자 콜린 체리가 말한 '칵테일파티 효과'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는 시끄러운 파티 안에서도 우리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소리를 골라 듣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산만함 속에서도 의미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처럼 어쩌면 집중과 산만함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왕복하는 두 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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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산만함은 이와 다르다. 디지털 기기에 의해 강제된 산만함은 깊이 없는 자극으로만 가득 차 있다. SNS 피드, 끝없는 알림 속에서 우리는 집중도, 사유도 아닌 단순한 소비에 머무른다. 그렇기에 밴줄렌은 산만함에도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유익한 산만함은 곁눈질처럼 일상의 틈새에서 무심코 피어나는 호기심이다. 우리는 종종 창밖의 바람결에 마음을 빼앗기고, 우연히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사물의 표면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몰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간다운 사유를 한다.


밴줄렌은 니체, 데카르트,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등의 사례를 통해 이런 산만함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데카르트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게으름과 몽상 속에서 드러난다"고 말했다. 우리가 집착하던 목적에서 벗어나 방황할 때 비로소 새로운 통찰이 떠오르는 것이다. 즉 이 산만함에서는 지금 당장 결과를 내놓으라고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림과 지연을 통해 더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즉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미래의 만족을 향한 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이 집중의 삶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산만함을 통해 존재와 부재,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유연하게 확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익한 산만함은 집중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집중이 과잉될 때 사라지는 감각과 유연성을 되찾게 한다. 지나친 몰입은 우리를 분석의 기계로 만들지만, 산만함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조건적으로 게으름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유익한 산만함은 스마트폰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처럼 아무런 감각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작고도 사소한 자극들에 기꺼이 마음을 열고, 무의미해 보이는 활동에도 자신의 감각을 참여시키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세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감각하는 법을 배운다.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확장하고, 삶을 풍요롭게 재구성한다. 그리고 더 이상 생산성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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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집중에 지친 사람들에게 건네는 쉼표 같은 책이다. 몰입이라는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우리의 사고를 다시 넓고 느슨한 길 위에 세운다. 진짜 창조는 어쩌면 우리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아무 목적 없이 길을 걸어도 좋다. 그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유야말로, 우리 삶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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