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숨어든 고요의 화폭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도서]

by 최선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각기 다른 날씨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날은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에 떨고, 어떤 날은 스며드는 우울의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허나영 작가의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는 이 모호하고 형체 없는 감정들을 '날씨'라는 감각적인 언어로 치환하며 시작된다.


이 책은 박제된 지식을 전달하는 딱딱한 미술사 책을 넘어서, 오히려 폭풍우를 피해 잠시 몸을 들인 작은 오두막처럼, 혹은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엿보는 것처럼 다정하고 내밀하다. 저자는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화면에서 불안의 무의식을 읽어내고, 에드워드 호퍼의 텅 빈 도시 풍경에서 고독의 함축을 발견한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이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우리에게, 저자는 '멈춤'과 '수용'이라는 한 뼘의 여유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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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의 <요람>과 우리


저자가 베르트 모리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요람>을 마주하며 던지는 시선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화면 속 엄마인 에드마가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정적인 구도는 언뜻 평화로운 모성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에드마의 눈동자에서 행복 그 이상의 복잡한 층위를 읽어낸다. 독박 육아와 가사 노동이라는 현실 속에서 아기가 잠든 찰나의 고요는, 역설적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여성의 고독이 선명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순간 에드마가 과거의 꿈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동시에 떠올렸을 것이라 짐작한다. 동생이자 동료 화가였던 베르트 모리조 역시 언니의 그 복잡한 감정을 포착했을 것이며, 자신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예술적 자아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품은 채 붓을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한계와 열등감은 꿈과 열정이 가득했던 베르트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거대한 굴레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요람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평온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정적인 화면이기에 더욱 고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림 속 엄마인 에드마의 눈을 보고 있자니 그저 사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행복함 외에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다가 아기가 잠든 사이의 짧은 고요한 시간. 그제야 아이 엄마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 하지만 짧은 고요의 순간에 이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떠오른 듯, 에드마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83p)


이 대목은 과거 내가 가졌던 비판적 의문과 맞닿아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당시 남성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두고 '정숙하고 고요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표상'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베르트가 언니의 권태로운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린 이 작품이 과연 그런 '이상적인 모성'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자신의 꿈을 유예하고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여성의 현실을 포착한 화가의 시선은 남성 평론가들의 지극히 단편적인 해석 앞에서 씁쓸하게 마모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나 기존의 평가에서는 베르트를 마네와의 관계에만 치중하여 수동적인 존재로 박제하려 했다면, 저자는 이 지점에서 베르트가 가졌던 화가로서의 독립적인 고뇌와 언니를 향한 연민의 시선을 따뜻하게 복원해낸다.


저자는 베르트 모리조의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사회적 시선이나 의무에 맞추어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딸을 키우며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세상을 당장 완전무결하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엄마인 나부터 자신을 존중한다면 다음 세대인 딸 역시 조금은 더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베르트 모리조가 자신의 딸 줄리의 성장 과정을 꾸준히 화폭에 담아낸 행위 역시, 단순히 모성애의 기록을 넘어 딸만큼은 자신과 달리 온전한 주체로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화가로서의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는 예술이 개인의 창작을 넘어 세대 간의 공감과 연대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 나를 그 자체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지키고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세상을 완전무결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나부터 자신을 존중한다면 딸도, 나도, 조금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베르트 모리조는 딸 줄리의 모습을 화폭에 여러 번 담아냈다. (...) 자신이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어갔던 것처럼 딸 줄리도 동등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내가 딸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86p)


결국 저자가 소개하는 수많은 예술가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낸 끈기'이다. 모네가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자신이 보는 색채를 믿었던 것처럼, 베르트 모리조가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타인의 평가보다 내면의 감각을 신뢰할 용기가 필요하다. 자존감이란 결국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스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싹트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내가 보는 색을 믿는 일, 남들의 속도가 아닌 나의 호흡으로 나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술은 단순히 캔버스 위에 고착된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숭고한 태도이자 용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람 부는 날, 우리가 그림 속으로 숨어야 하는 이유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메시지는 명확하다. '숨는다'는 것은 도망치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분리하여 온전한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라는 점이다. 마음의 날씨가 소란하고 불안의 바람이 잦아들지 않을 때, 우리는 잠시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림이라는 창 뒤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경유해 나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이 견고한 예술과 삶의 결합은 우리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제 우리는 70여 년 전, 혹은 수백 년 전의 예술가들이 그린 풍경 속을 거닐며 그들이 남긴 마음과 신념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스치는 바람은 어떤 색깔인가. 그리고 당신의 달력은 당신에게 무엇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을 덮으며 창밖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길 권한다. 여전히 세상은 소란스럽고 내일의 기상도 역시 장담할 수 없지만, 나를 환대해주는 그림들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어떤 날씨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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