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그림 속 보이지 않는 이야기

책 <더 기묘한 미술관> 리뷰

by 최선

그림을 볼 때 보통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네다섯 줄의 짧은 작품 캡션뿐이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에 아쉬움을 가져본 경험이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친절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 작품과 작가가 가진 빛과 어둠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친절하게 들려주는 책 <더 기묘한 미술관>이다. <더 기묘한 미술관>은 미술관에 가기도 어려웠던 2021년에 출간된 <기묘한 미술관>의 후속작이다. <기묘한 미술관>은 출간 즉시 종합 베스트셀러, 예술 분야 최고의 책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전작에서는 대중적인 작품을 다뤘다면, 이번 <더 기묘한 미술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와 작품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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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총 다섯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다. 1관은 세상과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작품을 다룬 '운명의 방', 2관은 어둠과 그늘로써 밝고 아름다운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모은 '어둠의 방', 3관은 시대를 앞서나간 화가와 파격적인 작품으로 가득 찬 '매혹의 방', 4관은 현실과 예술, 삶과 죽음 등 그 경계에 선 작품을 소개한 '선택의 방', 마지막 5관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선정한 '기억의 방'이다.


작가가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 같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작품 한 점은 생길 것이다. 역시 사람은 아름다움에 끌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극에 자연스럽게 마음을 뺏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에게 이번 미술관에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은 이를 증명하는 듯한 펠릭스 누스바움의 <죽음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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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난 모양인지, 성경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이 드디어 찾아온 것인지 모든 것이 파괴되고 인간이 일궈낸 문명은 쓰레기 더미가 되어있다. 그 위에서 뼈만 남은 해골이 트럼펫을 불며 죽음의 승리를 세상에 알리고 있는 작품 <죽음의 승리>다.


이 그림의 특별한 점은 그림에 화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중앙에 위치한 오르간에 팔을 딛고 서 있지만 곧 죽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림의 우측 하단에는 쓰레기 더미 속에 ‘1944년 4월 18일, felix nussbaum(펠릭스 누스바움)’이란 서명이 보인다.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어떠한 교훈도 남기지 않은 채, 작가의 유언이 되고 만다.


누스바움은 1904년 독일 북서부 마을에서 태어나, 1923년 베를린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며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인 ‘베를린 분리파’에 참여하며 베를린 미술계에 인정받기도 한다. 또 1932년에는 ‘베를린 아카데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로마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가 로마로 떠난 직후,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와 대공황을 거치며 상황이 급변하게 되고, 급기야 나치가 득세하며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누스바움은 1935년 관광비자로 벨기에에 도착한다. 하지만 결국 1940년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공하여 누스바움은 남프랑스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그때 <죽음의 승리>를 그리게 된다. 이제서야 그가 어째서 교훈 없는 죽음의 승리를 그렸는지 이해가 간다.


그리고 두 달 뒤, 누스바움 부부는 아우슈비츠행 열차에 태워져 도착 일주일 만에 가스실에서 살육당했다. 그가 탔던 열차가 아우슈비츠로 가는 마지막 열차였다. 죽음은 비록 누스바움에게서 승리했지만, 시간이 흘러 그의 작품은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죽음의 승리>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남았다.


이처럼 <더 기묘한 미술관>의 모든 작품에는 저마다의 미스터리가 존재하고, 끝없이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단순히 작품의 의미, 작품 속 어떤 소품의 의미, 미술사적 가치를 설명하는 것보다 작품과 작가의 삶을 읽다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설 한 편을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은 어떤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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