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AI와 만났을 때 ③』
[ 이 글은 <얼룩소>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해상 운송은 세계 경제의 중추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소비자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 스타트업 <Shone>
세계 경제는 전 세계 무역의 약 90%를 실어나르는 해운 산업에 크게 의존한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해운 산업이 온실가스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전세계 배출의 3% 가량을 차지하는데다 수질 및 소음 공해 그리고 (나중에 설명할) 해양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30년까지 운송 작업당 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최소 40%, 2050년까지 최소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민망한 목표다.)
국제해사기구는 이번 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회의에서 탄소 부과금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예정이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과 브라질 등은 국제 해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공급망 비용을 증가시킨다며 지나친 목표 및 부과금 등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스타트업들은 지속가능한 해상 운송 즉 Green Shipping을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맥킨지가 주목한 <ZeroNorth>가 대표적이다.
ZeroNorth/출처
#. 직원 6명, 코드 몇 개로 시작한 회사
“It started with six people and a little bit of code.”
<ZeroNorth> 대표 펠레 소만손은 IKEA의 최고 데이터 및 분석 책임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수 년 전 그의 관심을 끈 건 '바다'다. 2020년 6월 코펜하겐에서 시작한 이 스타트업은 6명으로 시작했지만 2023년 6월 현재 전 세계 6곳에 약 2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이 작년 한해 고객 선박(약 4000척)에서 줄인 이산화탄소량만 44만 톤 이상이다. 올해 3년 차인 이 기업은 2년 연속 연300%성장을 달성했다.
이들은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걸까?
<ZeroNorth> 대표적인 목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탄소 저감, 에너지 효율, 선원의 안전.
이들은 초기에 선박의 '속도 최적화'에 초점을 둔 제품 하나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씨 예보에 따라 선박 경로를 계획하는 경로 서비스(a full weather-routing service)를 개발했다. 시장 반응은 좋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배고팠다.
이후 1년동안 개발한 것이 'AI 지원 연료 모델'이다. 이 모델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주어진 속도, 주어진 RPM, 주어진 흘수(draft, 수중에 떠 있는 물체가 수면에 의해 구분되는 면에서 그 물체의 가장 깊은 점까지의 수심), 주어진 날씨 등을 분석해 선박의 연료 소비를 정확하게 예측한다. 또한 선체, 프로펠러, 보일러, 보조 엔진 등 다양한 선박 구성 요소의 효율성을 측정해 최적화된 조치를 제안한다.
요약하면,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주어질 날씨나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속도, 경로, 에너지 소비 등을 알려주는 기술이다. 기존에 선박들이 경로 혹은 날씨, 에너지 소비 등 필요에 따라 각각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했다면 이들의 솔루션은 전체를 파악해 보다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플랫폼 모델이다.
펠레 소만손은 해운업계가 유독 새로운 디지털 기기 등을 도입하는 데 보수적이라고 평가받지만 결국은 한정된 자산 속에서 탈탄소 운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기대한다. "해운은 변화해야 하고 지금 당장 변화해야 하는데 아직 그럴 수 있는 도구가 없다. 해운만큼 혁신이 무르익고 기술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업을 찾기는 어렵다. 역사상 드문 기회라고 생각했다."
#. 분류 과정부터 목적지 파악... 최적 경로
인공지능은 해운 과정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앞서 언급한 에너지 효율, 최적 경로, 보수 작업 등은 물론 패키지를 분류하고 배송을 위해 라벨을 붙이는 과정까지 개입된다. AI 지원 소프트웨어가 패키지를 스캔하며 목적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렇게 되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어 최종 분류 시간 및 최종 배송 시간까지 단축된다.
AI는 해상 폐기물 투기와 같은 불법 활동을 감지하고 모니터링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 '외래종' 걸러 생태계 보호
'외래종이 등장하면서 토종 동식물이 위협받는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바다의 경우 사람이 인위적으로 풀어놓은 경우도 있지만 상당 부분 배 하단에 들러붙어서 같이 이동하거나, 평형수(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바닷물) 안에 갇혀 있다가 다른 지역에 도착해 방류되는 과정에서 외래종들이 '탈출' 하게 되는 경우다.
문제는 평형수에 갇혀 같이 이동해온 외래종들이 과거에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비극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온난화 현상으로 (특히 북극해 지역) 자리 잡고 사는 물고기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추워서 금방 죽었지만 이제는 북극해 바닷물이 따듯해지면서 살만해졌다는 것. 이는 곧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복잡한 해양 데이터를 한곳에서 수집, 분석 및 모니터링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업체인 <Sinay>는 탄소 저감, 연료 효율성, 대체 연료 전환, 원격유지 보수, 선박의 오염 제거 등 각종 분야에 디지털 기술 및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평형수 처리 기술과 관련, "운송 중 선박의 안정화를 위해 한 곳에서 취수한 물을 방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외래 침입종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라며 파괴적인 생태적 결과로부터 지역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바다의 테슬라..."No 선원, NO탄소"
해운 부과금으로 각국이 멱살잡고 싸우는 사이, 이미 지난해 전기로 이동하는 무인 자율운항에 조용히 성공한 기업이 있다. '바다 위의 테슬라'로 표현되는 무인/자율/ 전기 컨테이너선이다. 사람도 없고 탄소 배출도 없다.
2021년 11월 시범 운항(호텐-오슬로 구간)에 성공했던 노르웨이 대기업 야라 인터내셔널(YARA)은 2022년 2월 세계 최초로 자율 주행하는 전기 화물선(야라 버클랜드)이 미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길이 80m, 중량 약 3,200톤에 달하는 이 선박에는 센서와 컴퓨터가 탑재되어 있어 자율적으로 혹은 원격 제어를 통해 운항이 가능하다.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연간 1000톤의 이산화탄소 감축이 가능하며, 이는 디젤 트럭 운송 4만 건의 대체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야라>는 향후 몇 년 내에 이 선박의 상업적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 사족
지난 6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부과금' 주장부터 현재 런던에서 진행되고 있는 IMO의 회의까지 해운 산업의 탄소 배출은 커다란 이슈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3일 IMO에 보낸 메시지에서 "해운업도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고 목놓아 외쳤다.
외신들은 현장 실무자들이 '역사적인 실패'를 예감하고 있다며, 벌써부터 걱정이다.
* 마크롱 대통령 '부과금' 관련 기사:
https://alook.so/posts/lat1o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