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며 생긴 마음의 온도
<2025년 여름에 작성한 글입니다>
날씨가 조금 누그러졌다. 햇볕도, 공기도 한풀 꺾였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오늘은 좀 살겠다"며 웃는다. 하지만 나는 쉽게 웃지 못한다.
나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날씨에 누구보다 예민하다. 무더운 날일수록 장사가 잘된다. 가게 문을 연 건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사람들은 "곧 여름이 올 거야", "장사 잘 될 거야"라고 말했지만, 가게는 조용했다.
처음엔 내 탓인가 싶었다. 아직 가게가 알려지지 않아서일까? 홍보가 부족한 걸까? 그런데 날씨에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확실히 달라진다는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1도, 2도 기온이 올라가는 날이면 매출이 달라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날씨 예보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이번 주는 얼마나 더울까?"
"언제 폭염 특보가 내려질까?"
일기예보가 곧 장사 예보다. 매일같이 인터넷 날씨 예보를 보며, 마치 시험 성적을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온 그래프를 살핀다. 그리고 그 기온 곡선이 올라갈수록, 가게에도 활기가 깃든다.
며칠 전 무더운 오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얼굴의 아이와 아빠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는 숨을 헐떡이며 "이거! 이거!" 하며 아이스크림을 골랐고, 아빠는 "오늘 많이 뛰었구나, 골라봐. 아빠가 다 사줄게"라며 말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그 둘은 아이스크림을 가득 들고 행복한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덥고 지치는 날이었지만, 그날의 가게 안은 달콤한 기쁨으로 가득 찼다.
또 어떤 날엔, 냉동고 앞에서 한참을 찬 바람만 쐬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건 잠깐, "하, 시원하다…" 한마디 내뱉으며 냉동고 앞에서 서 있던 그 손님. 그저 냉기가 나오는 문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작은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미소 지으며 떠났다.
온 가족이 함께 와서 떠 먹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집어 드는 풍경도 이제 익숙해졌다. 아이들은 들떠 있고, 부모님은 조금 피곤한 얼굴이지만 "우리 집 오늘은 아이스크림 파티야~" 하며 웃는다.
그 아이스크림 한 통 안에는, 더위를 이겨내고 싶은 온 가족의 작은 소망이 담겨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 오직 얼음 같은 고드름 아이스크림만 찾는 손님도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와 얼음 아이스크림을 찾고, 손에 쥐고 나갈 땐 마치 보물을 얻은 듯한 표정이 된다. 이렇게 다양한 여름의 얼굴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작은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내 여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아이스크림아이스크림은 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이효진
하지만 무더위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 휴일, 놀러 나갔던 아이가 집에 돌아오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 아파… 몸도 이상해…"
햇볕 아래서 신나게 뛰어놀았던 아이는 탈진에 가까운 상태였다. 나는 순간 너무 미안했다. 시원한 물 한 병도 챙겨주지 못했구나. 다행히 이온 음료 한 병에 정신을 차렸지만, 무더위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날 이후로는 아이가 뛰러 나갈 때마다 챙길 게 많아졌다. 모자, 물병, 이온 음료. 무더위는 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또 무더위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지금이 아이스크림 가게의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더워야 한다. 사람들이 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야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배달기사님, 공사장 인부, 택배기사님들까지. 하지만 또 이 더위가 반가운 이들도 있다. 나처럼, 팥빙수 사장님처럼, 해수욕장 매점처럼. 한여름 무더위는 누군가에게 위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참 아이러니하다. 아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며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매출이 오를 걸 기대한다. 삶은 늘 이렇게 복잡한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나는 오늘도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더운 날씨를 기대하면서, 그 더위에 누군가가 다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