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반짝이겠죠?
지난 2019년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우리는 오랫동안 빚의 무게 속에서 버텨왔다. 갚고, 또 갚아도 남는 건 한숨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빚은 내지 말자. 그 약속 하나로 몇 해를 견뎠다. 그 약속을 지키느라 남편은 작년까지만 해도 새벽 알바를 했다. 낮에는 직장, 새벽엔 알바. 잠이 부족하니 점점 예민해지고 체력도 버티질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몸이 무너져갔다.
"이젠 좀 천천히 가자. 몸이 먼저야."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기에 남편은 새벽 알바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출해야 하는 돈은 남아 있었고, 뭐든 일을 찾아서 해야만 했다. 평일 대신 주말에 간간이 배달 일을 하며 버텨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올해 3월, 작은 장사를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건 바로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나는 솔직히 말렸다.
"요즘 지나가다 보면 임대 가게들이 넘쳐나. 지난번에도 실패했잖아. 아직 빚도 남아 있고. 굳이 장사를 또 시작해야 해?"
하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뭔가를 해야 해."
"근데, 또 실패하면?"
"무인 가게는 인건비가 안 들어. 위험 부담이 적어. 기회일 수도 있어."
우린 그렇게 불경기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작했다. 임대료가 싸고, 인테리어 공사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 부담이 적었다.
"이번엔 다를 거야."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정말 많은 노력들을 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자 매출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름 비수기를 돌파해보겠다고 휴게실에서 먹을 사발면들을 준비해 두었지만, 아직까지는 반응이 잠잠하다.
임대료 등 고정적으로 나가야 할 돈들은 정해졌는데, 매출은 줄고 남는 게 없다. 이제는 대출이자 내기도 벅찼다. 그래도 남편은 휴일마다 일을 나가며 버텼다. 여름엔 매출이 늘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가게를 정리하러 나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금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소식이 들렸다.
"금목걸이 팔았어요. 금반지도 팔았어요."
SNS에는 그런 글들이 넘쳐났다. 나도 모르게 서랍을 열었다. 결혼 전에 자주 하고 다녔던 금목걸이와 귀걸이. 뚫었던 귀는 막혀 있고 목걸이도 걸고 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팔아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팔면 얼마쯤 나올까…"
조심스레 가방에 넣고 지난 10월 17일, 금은방으로 향했다. 사장님은 저울 위에 올리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59만 9천 원 정도 나옵니다."
"생각보다 적네요?"
"요즘은 그래도 많이 오르긴 했어요."
사장님이 덧붙였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남들은 금 팔아서 백만 원 넘게 받았다던데…'
팔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그냥 돌아섰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그리 급하지 않아. 금값은 더 오를 테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남편이 말했다.
"이번 달은 돈이 좀 급하게 필요해. 지금 가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과일을 사다 팔아야 할 것 같아. 뭐라도 해야지. 그냥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다시 빚을 지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 이제 금을 팔 때가 됐구나.' 며칠 전 망설였던 금목걸이와 귀걸이를 챙겨 다시 금은방으로 갔다. 10월 21일의 일이다. 그런데 가격을 듣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어, 금값이 내렸네요?"
"네, 월요일부터 조금씩 빠지고 있어요."
그때 팔 걸... 그때가 최고가였는데.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때 나는 문득 물었다.
"요즘 돌반지는 얼마쯤 해요?"
"종류마다 다른데요, 85만 원부터요."
"아, 아니요. 파는 가격이요."
"파시려는 거예요? 그럼 76만 원 정도 해요."
순간, 아이의 돌반지가 떠올랐다. 결혼 초 시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신 금반지였다. 그때는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다. '현금으로 주시지, 돌반지가 뭐야?' 주변에서도 웃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돌반지를 해? 촌스럽게~ 현금이 최고지!" 그 말에 나도 그냥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 '촌스러운 선물'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서랍을 열고 작은 상자 안의 반지를 조심스레 꺼냈다. '이걸 팔면 해결할 수 있겠지.' 그렇게 금은방으로 다시 향했다. 사장님이 반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용띠 아이네요? 귀하죠."
"네, 맞아요."
열세 살, 중1인 우리 아이의 흑룡띠 돌반지였다. 그 시절, 흑룡띠 아이들은 복덩이라 난리였고, 나 역시 그 복을 품었다. 돌반지를 저울 위에 올렸다. 나는 사장님께 말했다.
"잠시만요. 사진 좀 찍을게요."
"사진이요? 이미 팔 건데요? 빠이빠이 인사하고 보내주세요."
사장님이 웃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금은 떠나 보내지만 마음은 사진 속에 담길 테니까. 찰칵하고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이랑 며칠 전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서다. 반지를 팔 생각을 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이거 팔면 우리 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엄마, 괜찮아요. 금은 없어져도 우리가 있잖아요."
그 한 마디에 위로가 되었다. 그래, 괜찮다. 금은 사라져도 마음은 여전히 반짝인다. 진짜 금은 반지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이었다.
평소에 잘 꺼내보지도 않던 돌반지. 금은방에 보내고 난 뒤부터는 그때 찍어두었던 사진을 자주 바라보게 되었다. 어제도, 오늘도 사진 속 반짝이는 돌반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그건 아쉬움의 눈빛이 아니었다. 고마움의 인사였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10월 28일 결국 결혼 반지까지 팔았다. "이건 제일 값이 나가겠지" 했는데 뜻밖에도 아니었다. "좀 더 일찍 팔 걸 그랬나…" 순간 아쉬웠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이걸로 한 달은 버틸 수 있잖아.'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러 다시 무인가게로 향했다. 지금은 매출이 적자지만, 언제가 이 가게가 우리 가족에게 반짝임을 선물해 주길. 목걸이, 귀걸이, 반지… 금은방에 보내고 돌아온 손은 비었지만, 그 손으로 오늘도 가게 매장의 먼지를 털고, 테이블을 닦고, 반짝 반짝 정리된 진열대를 바라본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 반지도 팔았어."
"괜찮아. 다시 반짝일 날이 올 거야."
금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금속의 빛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과 마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버틸 수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