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n 29. 2024

공감이 안 되는 건 편견 때문일까요?

30.

병원에서의 나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지만, 길 위에서의 나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자유로운 여행자다. 최근에 세계 지도를 사서 방 벽에 붙여 놓고 가본 나라를 색칠해 봤다. 아프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이 ‘여행 많이 다녀오길 잘했다’였는데, 웬걸 지도에 색칠하지 않아 흰색으로 남아 있는 곳이 정말 많다. 지도를 알록달록하게 꾸미기 위해 창고에 있는 캐리어를 꺼낸다. 생사는 운명에 맡기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의 세상을 만나러 간다. ☞ 본 책, 189쪽


우연히 공공도서관에서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 온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얼핏 책 속을 뒤적여 보니 동유럽을 여행한 수필로 보였습니다. 태어나 50여 년이 넘게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사실 딴 세상 이야기, 혹은 딴 세상 사람들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행복하지 않아’라는 책 뒤표지의 문구가 눈에 띄어 대출한 책이었습니다.


일면식이 없는 건 당연한 얘기겠고, 저자의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사람입니다. 이력을 보니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된 어떤 여자분이었습니다. 남녀차별을 조장하는 목적은 전혀 없습니다만, 그래도 스포츠와는 친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은 여자분이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되었다고 하니 어지간히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뭐,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희귀암에 걸렸다는 얘기도 측은함을 가지고 읽게 한 대목이긴 했습니다. 다만 초반부 몇 십 쪽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아니면 그만 읽을까, 하는 고민에 사로잡힙니다.


사실상 그녀의 책이 읽다가 집어던질 만한 그런 책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꾸안꾸라고 하나요? 꾸민 듯 안 꾸민 듯하는 그녀의 문체도 비교적 마음에 들었고, 아무래도 사선까지 갔다 온 사람이라 그런지 삶을 보는 자세나 시선 등도 일반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 웬만하면 끝까지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좋아하는 일인 스포츠 전문 기자를 3년 만에 그만두고 한 일이 바로 한 달간의 동유럽 여행이라는 데에서 자꾸만 마음속에서 태클이 걸리고 있습니다.


전 결혼 전에는 해외여행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습니다. 결혼하면서 이참에 해외를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더니, 때마침 오사마 빈 라덴이 전 세계적으로 테러를 자행하거나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라 어른들의 반대로 결국엔 해외여행을 접어야 했던 저였습니다. 결혼 후 애가 생기기 전까지의 3년 동안 저는 마음만 먹으면 그깟 해외쯤은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금도 여의치 않더군요. 성격이 너무 고지식한 탓도 있겠습니다만, 주변에서 밥 먹듯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한 달 벌어 한 달 생활하는 데 급급한 우리는 전혀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가 제게 그랬습니다. 돈 모아서 해외여행 간다고 생각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갈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일단 빚이라도 내서 갔다 온 뒤에 열심히 갚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우유부단함이 결국엔 결혼한 뒤로도 23년이나 이어져 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까지 제주도 외에는 바다 건너 비행기를 타고 가본 적도 없고요.


그래서일까요? 해외여행에 대한 저의 나름의 편견 혹은 선입견 때문인지 이 정갈한 수필 한 권을 도무지 읽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씩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람은 직장도 그만두고 무슨 능력이 있어서 해외여행을 갔지? 그것도 한 달씩이나? 게다가 더 많은 곳에 가보기 위해서 창고에 있던 캐리어를 꺼낸다고?’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딴지를 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팍팍하게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과연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자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고 싶어 몇 십 쪽 읽다가 ‘에필로그’를 미리 보고 말았지만, 과연 제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지는 자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삶의 방식이 있고, 참으로 다양한 인간 면면이 있다지만, 글쎄요, 제 상식에선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몰입이 어렵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